조과선사와 백락천

당대(唐代)에 우두종(牛頭宗)의 8대손에 해당하는 도림(道林)스님(741-824)이라는 덕망 높은 스님이 항주의 진망산에 계셨습니다. 이 스님께서는 항상 산중의 나무가지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어서 마치 새의 둥지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조과(鳥窠)선사 또는 작소(鵲巢)선사라고들 했습니다.

어느날 조과선사가 장송의 긴 가지 위에서 좌선하고 있을 때 그 당시의 군수였던 백락천(白樂天)이가 진망산에 큰스님이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그 암자에 당도한 백낙천은 까마득한 소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도림스님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스님, 스님, 너무 위험합니다. 빨리 내려오십시오.”

선사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당신이 더욱 위험하오”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있던 백락천이 어이 없어하면서, “나는 위험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안전한 땅을 밟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위험하단 말입니까?”하고 대꾸했습니다.

선사는 그가 학문과 벼슬에 자만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이 기회에 교만한 마음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곧바로 쏘아 부쳤습니다.

“티끌 같은 세상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소?”

백락천은 자기의 마음을 훤하게 꿰뚫어 보는 듯한 눈매와 자기가 자사라는 벼슬에 있음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다하는 조과선사의 기개에 눌려 애초에 선사를 시험하려했던 불손한 태도를 바꿔 공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스님, 무엇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시되, “모든 악한 일을 행하지 말고(諸惡莫作), 모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이니라(衆善奉行).”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락천은 이와 같은 대답에,

“그거야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하고 신통치 않다는 듯이 말을 했습니다.

선사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했습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네.”

이 말을 들은 백락천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이 선문답 속에서 도림선사의 철저한 실천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교의 본질은 머리로써 이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행하는데 있습니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인격화되지 않으면 아만과 번뇌만이 더할 뿐 진리의 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불법의 정신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생활화하고 인격화하여 지금 여기에서 일상생활의 일을 통해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당대의 문장가며 정치인인 백락천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것도 도림선사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정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해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12월 제49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어느 날 조주스님에게 한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조주스님은 말했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庭前柏樹子).”

그 스님은 따지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스님, 잣나무 따위의 대상을 들어 설명하지 마십시오.”

조주스님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습니다.

“대상을 들어 설명한 바 없노라.”

“그러면 다시 여쭙겠습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조주스님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당시 조주스님께서 주석하던 관음원에는 잣나무가 있어서 그 절을 ‘잣나무숲절’이라는 뜻으로 ‘백림사(柏林寺)’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래서 조주스님은 질문한 그 스님에게 잣나무를 들어 진리의 길을 암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이와같은 답을 들은 그 스님은 경계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 것을 조주스님에게 주문한 것입니다. 조주스님은 경계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스님은 다시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고, 조주는 또 똑같은 답을 했습니다.

진리의 실상은 논리로 따져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임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분별심을 버리고 일상생활을 이끄는 근원적인 마음인 평상심을 가져야 만이 진정한 불법을 체달한다는 뜻입니다.

‘정전백수자’의 공안은 당대의 조주(趙州)선사의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백암록』과 『무문관』등 대부분의 화두집에 나오는 유명한 공안으로 백수자(柏樹子)의 ‘자(子)’는 어조사로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인해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1월 제50호

재산이 없어도 줄 수 있는 7가지

어떤 이가 석가모니를 찾아가 호소를 하였답니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이유입니까?”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빈 털털이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느니라. 아무리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누구나 다 있는 것이다.”

첫째는 화안시 _ 和顔施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이요

둘째는 언시 _ 言施

말로써 얼마든지 베풀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 부드러운 말 등이다.

셋째는 심시 _ 心施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다.

넷째는 안시 _ 眼施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 베푸는 것이요.

다섯째는 신시 _ 身施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남의 짐을 들어준다거나 일을 돕는 것이요.

여섯째는 좌시 _ 座施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것이고,

일곱째는 찰시 _ 察施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다.

출처: ‘좋은 글’ 중에서

종산 황태준 글. 월간 반야 2011년 6월 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