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조주스님에게 한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
조주스님은 말했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庭前柏樹子).”
그 스님은 따지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스님, 잣나무 따위의 대상을 들어 설명하지 마십시오.”
조주스님은 태연자약하게 대답했습니다.
“대상을 들어 설명한 바 없노라.”
“그러면 다시 여쭙겠습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조주스님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당시 조주스님께서 주석하던 관음원에는 잣나무가 있어서 그 절을 ‘잣나무숲절’이라는 뜻으로 ‘백림사(柏林寺)’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래서 조주스님은 질문한 그 스님에게 잣나무를 들어 진리의 길을 암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이와같은 답을 들은 그 스님은 경계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 것을 조주스님에게 주문한 것입니다. 조주스님은 경계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스님은 다시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었고, 조주는 또 똑같은 답을 했습니다.
진리의 실상은 논리로 따져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임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분별심을 버리고 일상생활을 이끄는 근원적인 마음인 평상심을 가져야 만이 진정한 불법을 체달한다는 뜻입니다.
‘정전백수자’의 공안은 당대의 조주(趙州)선사의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백암록』과 『무문관』등 대부분의 화두집에 나오는 유명한 공안으로 백수자(柏樹子)의 ‘자(子)’는 어조사로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인해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1월 제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