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38)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極大同小(극대동소)하야 불견변표(不見邊表)라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끝과 겉을 보지 못한다

‘크다’ 또는 ‘작다’라고 하는 것은 주관과 객관이 서로 떨어진 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주객(主客)이 하나로 합해져 떨어진 거리가 없을 때에는 경계가 끊어지고 안팎의 양면이 동시에 없어지는 것이다. 즉 절대 무이(無二)이므로 하나이지만 하나라고 하는 것도 없는 것이다.

신심명(37)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極小同大(극소동대)하야 忘絶境界(망절경계)하고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 여계가 모두 끊어지고

미진(微塵) 속에 시방의 온 허공이 들어가는 도리가 있다는 것으로 작은 것과 큰 것이 같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가는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간다는 것은, 공간을 초월한 세계에서는 대소大小가 원융무애하다는 것을 뜻한다. 상대적인 한계가 없어 작은 것과 큰 것의 규모가 정해지지 않는다. 마치 높은 산꼭대기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 먼 거리까지의 경치가 조그마한 눈동자 속에 모두 들어오는 것과 같다.

화엄학에서는 이것을 무자성(無自性)의 이치로 설명하는데,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어느 것도 자성이 없는 이치에서 보면 평등하다는 것이다. 경계가 끊어졌다는 것은 절대평등인 불이(不二)의 세계에는 피차의 차별이 보여지지 않음으로 하는 말이다.

신심명(36)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이 바로 눈앞이로다

無在不在(무재부재)하야 十方目前(시방목전)이로다.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이 바로 눈앞이로다.

공간적 상황의 있고 없음을 부정하여 일체가 융합된 것을 나타낸 것으로, 시방은 먼 곳을 말하고 눈앞은 가까운 것을 말한다. 이 구절 역시 쌍차쌍조(雙遮雙照)를 통한 절대 원융의 경지를 말했다. 법성게의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과 같은 뜻이다.

중봉中峰은 이렇게 송(頌)했다.

不離何處是何物(불리하처시하물) 어느 곳도 떠나지 않는 것이 무슨 물건인가

逼塞四維含十方(핍새사유함시방) 눈앞에 던져도 덮고 가린 것이 없으니

抛向目前無蓋覆(포향목전무개부) 사방을 꽉 막고 온 허공을 머금었네

直敎處着眼睛枯(직교처착안정고) 엿보려고 하다간 눈동자가 흐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