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달밤의 개구리 소리에

춘천월야일성와 春天月夜一聲蛙 봄날 달밤의 개구리 소리에

당파건곤공일가 撞破乾坤共一家 하늘과 땅을 쳐부수니 한 집안이 되었네.

정임마시수회득 正恁麽時誰會得 이때의 소식을 누가 알리오?

영두통각유현사 嶺頭痛脚有玄沙 산마루에 발 다친 현사가 있었구나.

중국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선사는 간화선을 완성시킨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의 사대부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간화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 편지들을 모아 수록한 책이 서장(書狀)이라는 책인데 이는 대혜어록 가운데 들어 있는 편지모음집이다. 서장에는 42명이나 되는 당시 사대부들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무구(無垢)거사 장구성(張九成)은 시랑(侍郞)을 역임한 사람인데 대혜의 법을 이었다. 위의 시는 그가 선을 참구하다 어느 봄날 달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은 뒤 지었다는 시이다. 하늘과 땅을 쳐부수었다는 것은 현상의 차별을 넘어 진여의 세계를 체험 했다는 말이다. 남에게 말해 줄 수 없는 깨달음의 소식이 감격스럽기만 하여 선열에 가득 차 있는데 홀연히 현사사비(玄沙師備836~908)가 산고개를 넘다 발가락이 돌부리에 채여 아픈 통증을 느끼며 내려다 보다 피가 나는 것을 보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는 오도기연(悟道機緣)이 생각나고, 자기의 오도기연과 상통됨을 확인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9년 5월 제 102호

스님은 중생의 정화조

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화두는 단연코 월드컵이요 축구다. 이 2002년 한국 일본 월드컵의 개막전이 벌어질 서울의 ‘상암구장’이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쓰레기 매립장인 ‘난지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 상암구장이 있는 월드컵 공원에 육칠십 년대 근20년 간 우리나라를 통치해 온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기념관의 건립 여부, 기념관의 건립 장소, 국고 지원 여부 등 숱한 논쟁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재임시 업적의 공과를 두고도 계속하여 시비는 일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절대 권력을 앞세워 국가적 공공사업이나 공익을 위해서 도로를 닦고, 공장을 건설하고, 댐을 막고, 항만을 건설하는 등의 과정에서 누구도 감히 나서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질 못했는데, 80년대 이후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부터는 각종 사업장마다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저항의 목소리와 행동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 성장에 따른 삶의 질의 향상과 국민의 의식의 변화에다 각계각층의 집단이기주의가 이에 편승하여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혐오시설에 대한 ‘님비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큰 고민으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의 하나다. 하수 처리장ㆍ분뇨처리장ㆍ쓰레기 매립장ㆍ소각장ㆍ장례식장ㆍ화장장ㆍ병원 영안실은 물론 심지어 장애인 복지시설마저도 자기 동네 이웃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시설은 없어도 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시설의 원인제공자는 사람이고 그 지역에 깃들여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생활하수나 공장하수도 그렇고, 각종 쓰레기는 물론, 분뇨나 사람의 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주변 가까운 일가친지 가운데 선천적인 또는 후천적인 장애인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 앞으로 자기 자신도 장애인이 안 된다는 보장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설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무엇인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자. 우리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이러한 시설이 따지고 보면 반대로 우리의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시설이 아닌가. 오폐수나 분뇨를 깨끗이 정화하여 강이나 바다로 흘려보내고, 쓰레기를 땅 속에 묻어 세월이 흐르면 흙으로 변하게 하고, 가연성의 쓰레기는 태워 없애고, 사람의 시신도 깨끗이 소독하여 냉동 보관하였다가 화장하는 것보다 더 위생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까. 혐오(嫌惡)시설이 아니라 정화(淨化)시설인 셈이다. 겉보기가 중요하다면 난지도 쓰레기 더미 위의 상암축구경기장을 본받아 아름답고 깨끗하게 조성하면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좀더 완벽하게 정화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더 많은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얼마전 초파일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들었던 어느 보살님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세속의 오욕에 물든 중생들이 산사를 찾아 스님께서 손수 가꾸어 놓으신 도량의 향기를 맡고, 부처님의 미소를 접하면서 스님의 법문을 듣노라면 어느새 세간사는 말끔히 잊어버리게 된단다. 세파에 찌든 중생의 정신세계를 깨끗이 정화해 주시는 스님이야말로 중생의 정화조라고.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2년 6월 (제19호)

복사꽃 연분홍 간밤 비에 젖어 있고

桃紅復含宿雨 도홍부함숙우 복사꽃 연분홍 간밤 비에 젖어 있고

柳綠更帶春煙 유록갱대춘연 푸른 버들가지에 봄 안개 어리네.

花落家童未掃 화락가동미소 꽃잎은 시나브로 떨어지고 있는데

鶯啼山客猶眠 앵제산객유면 꾀꼬리 울음 속에 나그네는 졸고 있네.

춘경을 담고 있는 한 폭의 동양화다. 비온 뒷날 날이 개자 복사꽃 붉은 꽃잎 아직 물기를 머금고 버들가지 사이로 봄 안개가 어린다. 마당에는 떨어진 꽃잎이 쓸지 않은채로 남아 있고, 꾀꼬리 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는데 누군가 봄에 취해 졸고 있는 것일까?

이 시의 작자 왕유(王維 699~759)는 당나라 전성기의 대시인이요 화가였던 사람이다. 이백 두보와 더불어 당시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인물로 불교에 심취하여 많은 시를 썼기 때문에 시불(詩佛)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그의 많은 시에는 선미(禪味)가 베여있다. 또한 자연시의 제1인자로 꼽히었으며 그의 시를 좋아했던 대종(代宗)으로부터 “천하의 문종(文宗)”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그림에도 뛰어나 장안의 절 자은사에 그린 벽화 백묘화(白描畵)와 금벽청록(金碧靑綠)의 산수화가 절찬을 받기도 하였다. 벼슬이 상서우승(尙書右丞) 때 죽었으므로 왕우승이라고도 불리며 <왕우승문집> 10권이 있다. 당시의 고승들과 교유가 넓었으며 특히 하택신회(荷澤神會)선사를 의지해 참선을 하기도 했다. 불교 경전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초서에도 능했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4년 4월. 제4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