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화두는 단연코 월드컵이요 축구다. 이 2002년 한국 일본 월드컵의 개막전이 벌어질 서울의 ‘상암구장’이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쓰레기 매립장인 ‘난지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 상암구장이 있는 월드컵 공원에 육칠십 년대 근20년 간 우리나라를 통치해 온 고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이 들어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기념관의 건립 여부, 기념관의 건립 장소, 국고 지원 여부 등 숱한 논쟁이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재임시 업적의 공과를 두고도 계속하여 시비는 일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절대 권력을 앞세워 국가적 공공사업이나 공익을 위해서 도로를 닦고, 공장을 건설하고, 댐을 막고, 항만을 건설하는 등의 과정에서 누구도 감히 나서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질 못했는데, 80년대 이후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부터는 각종 사업장마다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저항의 목소리와 행동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경제 성장에 따른 삶의 질의 향상과 국민의 의식의 변화에다 각계각층의 집단이기주의가 이에 편승하여 나타나는데 그 중의 하나가 혐오시설에 대한 ‘님비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큰 고민으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의 하나다. 하수 처리장ㆍ분뇨처리장ㆍ쓰레기 매립장ㆍ소각장ㆍ장례식장ㆍ화장장ㆍ병원 영안실은 물론 심지어 장애인 복지시설마저도 자기 동네 이웃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시설은 없어도 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시설의 원인제공자는 사람이고 그 지역에 깃들여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생활하수나 공장하수도 그렇고, 각종 쓰레기는 물론, 분뇨나 사람의 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주변 가까운 일가친지 가운데 선천적인 또는 후천적인 장애인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 앞으로 자기 자신도 장애인이 안 된다는 보장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시설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무엇인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자. 우리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이러한 시설이 따지고 보면 반대로 우리의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시설이 아닌가. 오폐수나 분뇨를 깨끗이 정화하여 강이나 바다로 흘려보내고, 쓰레기를 땅 속에 묻어 세월이 흐르면 흙으로 변하게 하고, 가연성의 쓰레기는 태워 없애고, 사람의 시신도 깨끗이 소독하여 냉동 보관하였다가 화장하는 것보다 더 위생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까. 혐오(嫌惡)시설이 아니라 정화(淨化)시설인 셈이다. 겉보기가 중요하다면 난지도 쓰레기 더미 위의 상암축구경기장을 본받아 아름답고 깨끗하게 조성하면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좀더 완벽하게 정화될 수 있도록 모두가 지혜를 모으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더 많은 투자에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얼마전 초파일 법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들었던 어느 보살님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세속의 오욕에 물든 중생들이 산사를 찾아 스님께서 손수 가꾸어 놓으신 도량의 향기를 맡고, 부처님의 미소를 접하면서 스님의 법문을 듣노라면 어느새 세간사는 말끔히 잊어버리게 된단다. 세파에 찌든 중생의 정신세계를 깨끗이 정화해 주시는 스님이야말로 중생의 정화조라고.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2년 6월 (제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