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말하여도 입은 타지 않는다

옛날 희랍의 궤변론자들 사이에 토끼가 거북이를 앞에 세워두고 뒤쫓아 갈 때 토끼는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지 못한다는 주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다. 가령 거북이가 토끼 보다 100m 앞에 서서 둘이 경주를 한다면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토끼가 100m의 거리를 따라 가는 동안 거북이도 얼마를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 때문이라 한다. 이리하여 토끼가 거북이가 있던 지점에 다가가면 거북이 역시 얼마라도 앞으로 나가게 되기 때문에 토끼를 거북이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시간을 무시하고 공간적 거리만 가지고 따지는 억지로 이를 배리(背理)의 모순(矛盾)이라 하였다. 이치를 등져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인데 때로는 그럴듯하게 들려 순간적으로 사람을 현혹시켜 버리는 것이다. 말의 논리라는 것은 때로는 배리의 모순에 걸리는 수가 있다. 실상은 엉터리 그릇된 견해인데 말로 꾸며 놓고 볼 때는 그럴 듯하다는 것이다.

정보사회에 들어와 온갖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여 별의별 선전과 광고가 다 쏟아져 나오는데 교묘한 논리를 세워 사람을 현혹시키는 말들이 너무나 많이 횡행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주장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잘 표현해 남에게 먹혀들어 가게 할까 이것이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고 더 나아가 정치하는 사람들의 노림인 것 같다. 속마음과 겉이 다르면서도 일단 말로서 그럴듯하게 해 놓자는 판이다. 현대의 처세술은 모두 말을 앞세워 과장되게 꾸며 놓는 빈말잔치가 되는 수가 허다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은 어짊(仁)이 없다고 하였고 또 눌언(訥言)이 행실에 있어서는 민첩하다(訥言敏於行) 하였다. 불교의 선가에서는 말 이전에 마음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여 바른 사람이 그릇된 말을 하여도 마음이 바르기 때문에 바른 법이 될 수 있지만 마음이 그릇된 사람은 비록 말은 옳게 하더라도 마음이 그릇되었기 때문에 바른 법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사실 진리는 말에 있지 않다. 말을 떠나 있는 실상을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마치 음식의 맛을 아무리 말로 설명하여도 맛은 말에 있지 않은 것과 같은 논리다. 선어록에는 “불을 말하여도 입은 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처럼 말로 표현되는 ‘불’이란 명사에는 뜨거운 것이 없는 것이다.

매스컴이 발달한 현대 사회는 말의 조작에 의한 혼란과 유혹이 부쩍 늘어나는 것 같다. 어떤 말을 듣고도 우선 그게 사실일까, 믿을 수 있는 말인가에 대한 의구심부터 생긴다. 심지어 신문의 기사나 공영방송에 나온 말들도 곡해되거나 과장된 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말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 사실과 다르게 오도되거나 과장된 것일거라는 지레 짐작을 미리 해버리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게 생긴다. 이른바 불신시대를 조장하는 것은 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말이 거짓되고 사실과 달라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 불신(不信)이다. 한자 ‘믿을 신(信)’자를 획을 나누어 풀이하면 ‘사람인(人)’ 변에 ‘말씀언(言)’인데 이는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불(不)’자는 부정을 뜻하니 불신이라는 말은 곧 사람의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믿을 수 없는 말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믿을 수 있어야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언어의 생명력이 죽어가는 사회가 바로 불신사회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도 믿지 못하는 자신 없는 말들을 너무 쉽게 내뱉는다는 것이다. 선거때만 되면 각 후보자들의 공약이 남발하고 일단 말부터 그럴듯하게 해 놓자는 자신을 호도하는 엄청난 말들이 쏟아진다. 마치 길가에 버려지는 휴지처럼 믿을 수 없는 무책임한 말들이 버려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경오염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의 왕양명은 일찍이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장하여 말과 실천이 일치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공리공론의 실천 없는 이론은 사변적인 수사에 불과해 지성의 본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말로써 남을 현혹시키지 말고 행으로써 감동을 주어야 한다. 내가 남에게 불신의 의혹을 받는다는 것은 내 삶의 비극이다. 때로는 말에 앞서 생각의 절제가 필요하다. 순간의 감정도 실수의 방지를 위한 여과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업이 잘못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자애지심이 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한다고 양명학에서는 말한다.

말이 잘못된 것을 실언이라고 하지만 말을 잃어버린 것도 실언이라는 낱말의 뜻이다. 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할 말이 없다는 뜻으로 바꿔지는데 불교에서는 수행자를 경책할 때 말없이 도심을 키우라는 말이 있다. 침묵의 공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 도심을 닦는다는 뜻이다. 묵언 속에 들어가면 말의 실수는 없는 것이다.

山堂靜夜坐無言 산속의 고요한 밤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 고요하고 고요해 본래 그대로이네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바람 불어 숲을 흔드는가?

一聲寒雁唳長天 기러기 까욱 울며 하늘을 날아간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1월 제86호

내게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문여하사서벽산 問余何事栖碧山 내게 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소이부답심자한 笑而不答心自閑 빙그레 웃을 뿐 대답 못해도 마음 더욱 넉넉하네

도화류수묘연거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가니

별유천지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인간세상 벗어난 또 다른 세계라네

너무나 잘 알려진 이태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다. 산거(山居)생활의 탈속한 맛이 진하게 느껴지고 있다. 왜 산에 사느냐는 말에 빙그레 웃을 뿐, 모든 것에서 초월된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기만 하다는 두 번째 구는 정말 뉘앙스가 미묘하여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사실 세상사라는 것이 별 것 아닐 수도 있다. 죽느니 사느니 하는 범부들의 문제가 속세를 초월해 버릴 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무릉도원의 선경(仙境)을 읊은 시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상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의 순수한 정서를 소담하게 나타내었다고도 하겠다. 세상의 근심걱정을 이고 살 때는 선(禪)을 맛볼 수 없다. 잠시라도 근심을 풀고 자기의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래 마음이란 번뇌 망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마음이다.

예로부터 산은 시끄러운 세상을 피하는 인간의 휴양처로 인식되기도 했다. 또한 사색과 명상을 할 수 있는 수행의 곳이었다 특히 불교에서는 입산출가니 입산수도니 하는 말을 써 오면서 도를 닦으러 산에 들어간다 하였다. 산중에 산다는 것은 세상의 시끄러움을 벗어났다는 뜻과 함께 수도에 종사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연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도 산이다. 숲이 있고 골짜기가 있고 봉우리가 있고 기슭이 있다. 산은 인간과 자연이 동화되는 곳이어서 명상이나 선(禪)수행을 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2년 5월 (제18호)

2016년 01월 19일 불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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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개신교인’ 주장 60대, 법당서 불상 부수며 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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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지관대종사 열반 4주기 추모다례재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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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 2016-01-19, 11:18:14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