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 아니면 누구와 지음(知音) 되랴”

방한암(方漢岩) 큰 스님은 조선조 말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22세 때 우연히 금강산 구경길에 나섰다가 장안사(長安寺) 행름노사를 만나 삭발 출가하였다. 24세 때에 당대 최고의 선지식 경허대선사를 청암사에서 만나 『금강경』을 배우던 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구절에서 큰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개안(開眼)의 기회를 얻었다. 그 후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를 거쳐 평안도 맹산군 도리산에… “한암 아니면 누구와 지음(知音) 되랴” 계속 읽기

“돈 한가지면 다 해결되느니라”

1888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영호 박한영(映湖 朴漢永) 스님은 1870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나 19세에 전주 위봉사에서 출가, 26세 때에는 설유 처명스님의 법을 이어 영호(映湖)라는 법호를 얻고 석전(石顚)이라는 시호(詩號)를 얻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우리불교를 일본불교에 합종하려는 친일승려들에 맞서 조선불교를 끝까지 지켰고,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 대원불교강원(大圓佛敎講院)을 세워 청담, 운허, 조정현 등 걸출한 승려들을 배출했으며 서정주, 신석정, 조지훈, 김달진, 김어수… “돈 한가지면 다 해결되느니라” 계속 읽기

‘너나 잘해라

1888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난 효봉 스님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나와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판사가 되었고 평양 복심법원에 근무하다가 ‘사형선고’ 내린 것에 회의를 품고 홀연 가출, 부귀영화를 미련 없이 내던지고 엿장수로 변신하여 3년여를 떠돌다가 나이 38세에 금강산 신계사 보문암에서 석두화상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였다. 평생토록 무(無)자 화두를 들고 참구했던 효봉스님에게는 ‘엿장수 중’, ‘판사 중’, ‘절구통 수좌’, ‘너나잘해라 스님’등… ‘너나 잘해라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