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 스님

서울 칠보사에는 내가 좋아하는 석주 큰 스님이 계신다.
80세가 넘은 노장이시지만 위엄이 있으시되 위압적이지 않으시며, 누구든 만나면 늘 편안하게 대해 주신다.
스님은 항상 방문을 열어 놓고 사신다. 마음이 열러 있어 타인을 의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교도소에서 출소한 누군가가 나도 모르게 스님을 찾아가 돈 십 만 원을 주십사 부탁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소식을 나중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큰 스님,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가 당황해서 묻자 스님은 아이처럼 밝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십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1백만 원 줬지요.”
무슨 일에 쓸 것인지 묻지도 않은 채,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달라니까 줬다는 큰스님의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석주 스님은 소유한다는 것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으실 뿐더러 아예 개념조차 없으신 분이다. 아이처럼 맑고 무구한 분이기에 내가 이처럼 그분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주부 시청자가 많은 TV 프로그램인 ‘아침마당’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프로에 나가 고통 받는 사형수 어머니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얘기했다. 자신이 행복하면서도 행복을 모른 채 혹은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이 땅의 많은 주부들에게 이러한 사형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려 줌으로써 진정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싶어 서였다.
그런데 절에 돌아오자 석주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꼭 세배를 드리러 가곤 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세배를 잊은 터나 내심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삼중 스님, 고마워요. 참 고마워요.”하는 석주 스님의 밝은 음성이 들려왔다.
“아, 큰스님! 그간 찾아 뵙지도 못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고마우시다니요? 뭐가…. 고맙다는 말씀이신지요?”
“TV에서 스님을 봤어요. 우리 불교계에도 이렇게 좋은 일이 많이 하시는 스님이 계시다니, 정말로 기쁩니다. 앞으로도 더 수고하고 조금 더 고생해 주세요.”
언젠가는 사형수 교화에 쓰라고 내게 돈을 보내 주신 적도 있다. 이렇듯 큰스님은 항상 드러나지 않게 나를 도와주시며 칭찬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다.
전화를 받고 나서 내 마음은 하늘로 날아 오를 듯이 기뻤다. 이렇듯 노스님의 칭찬을 받고보니 어린애처럼 마냥 좋았고 새로운 용기가 솟구쳤다.
남을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마음. 이 역시 큰스님다운 넓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나는 그분의 그 마음이 너무 좋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는 남에 대한 칭찬과 격려에 몹시 인색해졌다. 남이 잘 되거나 조금 좋은 일이 있으면 우선 시기하는 마음이 앞선다. 눈을 부라리며 흠을 찾아내려 애쓴다. 이는 나보다 상대방이 잘 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시기심 때문이다.
나는 혼자의 힘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할 때 의식적으로 매스컴의 힘을 빌리는 때가 있다. 그리고 매스컴을 때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어려운 일을 쉽게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다 보니 내 마음 한편으론 짙은 회의가 밀려오기도 하고, 과연 내가 이렇게 남 앞에 나 자신을 드러내면서 일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무력감에 곧잘 빠질 때가 있다.
매스컴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격려는커녕 뒤에서 수군대거나 비웃는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많기에 남 모르는 회의가 더욱 증폭될 때가 많다. 종교계라 해서 물론 예외는 아니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을 전폭적으로 밀어 주고 도와 달라는 말은 아니다. 또 내가 하는 일이 모두 남에게 칭찬받을 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뒤에서 욕을 하거나 미워하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내게 칭찬을 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큰스님이 더욱 고맙고 감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분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칭찬이 나는 신문 지상에서 몇 배의 찬사를 받은 것보다 더 좋았고 행복했다.
얼마 전, 스님이 계시는 칠보사의 신도 분들이 모여 큰스님을 모시고 바깥 바람도 쐴 겸 불교 유적지를 둘러보자고 일을 계획했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보신 적이 없으신 큰스님께 중국 구화산에 함께 가시자고 간청을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은 일언지하에 냉정하게 거절하셨다.
“큰스님, 저희가 그저 놀러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얼마를 더 사실지도 모르는데, 저희도 한번쯤 스님을 모시고 성지순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나 스님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셨다.
“우리가 그처럼 외국에 만대로 나가서 돈을 펑펑 쓰고 다닐 정도로 부자 나라입니까? 벌지는 못할망정 함부로 쓸 수야 없지요. 나 한 사람이라도 외국에 안 나가면 그만큼 외화가 절약되고 우리나라가 빚을 덜 지게 되는 게 아닙니까.”
이 한마디 말씀에 신도들 모두 할말을 잊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큰스님 주위에는 신도가 많을 뿐더러 그 중에는 돈이 많은 재벌도 있다. 호사스런 여행은 아니더라도 한번쯤 해외에 나가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스님은 외채 2위국인 우리나라에서 단 한푼의 돈이라도 헛되이 남의 나라에 가져다 뿌려서야 되겠느냐는 말씀이셨다.
나는 가까운 일본만 해도 60여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고, 동남아에도 여러 차례 나가서 둘러본 적이 있다. 그러나 스님처럼 나라를 걱정해 외국에 나가지 말자고 생각해 본 일은 없는 것 같다.
나와 스님을 비교하니 진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그분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그분을 더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쉬운 일일수록 제대로 실천하는 일이 어려운 법이다.
나는 큰스님이 더욱 오래도록 우리 교계에 살아 계셨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를 바르게 이끌어 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석주 스님을 생각할 때면 항상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나중에 저런 훌륭한 노장이 될 수 있을까, 저분처럼 따뜻하고 자비로운 노장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길은 아직 내게 멀고멀게만 느껴진다.
三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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