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만난 것은 지난 여름. 동화사에 볼일이 있어서 동대구역에 내렸을 때였다. 막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저, 누구시더라?”
“학교에서 뵈었습니다.”
학교란 말은 교도소 재소자들에게만 통하는 ‘감방’을 의미하는 은어다.
나는 잠시 주춤했다.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그가 말을 이었다.
“삼중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저, 동화사에 가는 중인데….”
“그럼 스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미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완강하게 내 팔을 잡아 끌었다. 그의 한쪽 팔을 보니 문신과 흉터 자국이 선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는 택시 영업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스님, 요금이 얼마인지 아시지요?”
“글쎄요….”
역에서 동화사까지는 먼 거리라. 택시들은 대부분 미터기를 꺽지 않고 협정된 요금으로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던지 그는,
“삼중 스님께는 제가 1만8천원만 받겠습니다. 조금 싸게 해드리는 겁니다.”라고 말하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나는 솔직히 말해 약간 긴장이 됐다.
30년 가까지 교도소에 드나들면서 많은 이들이 그 곳에 들어온 사정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지켜 보아 온 사람이다. 교도소가 사회와 격리된 장소라곤 하나 그 곳도 사람이 사는 곳 이긴 매한가지다. 그 곳도 염연하게 질서가 있고 온정이 있다.
또 죄를 지어 교도소에 들어왔다고는 하나 참혹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간적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한 사람도 많다. 사회에서 큰 죄를 지었지만 그 안에서 좋은 말씀을 듣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깊이 반성하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막상 복역을 마치고 나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방황하게 되는 이들이 허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떠나고,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 줄 가정조차 이미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있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교도소안에서 다졌던 결심과 희망은 어느새 잿빛이 되고 살아갈 의욕마저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일자리를 기대하며 나를 찾아오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러한 그들의 가슴 속에 자리 한 실의와 실망, 또 현실에 대한 분노는 그 얼마나 클 것인가. 나로선 힘이 다하는 한 그들을 돕고 싶지만 이는 마음뿐, 아쉽게도 별다른 도움조차 주지 못하는 때가 많다.
때론 내 자신이 이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적잖게 마음을 다친 적이 있기도 하다. 이들의 어려운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연민의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 내 마음이 그처럼 활짝 열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란 사랑에 웃기도 하지만 그러한 사랑 때문에 그만큼 괴로워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운전석 앞을 보니 엄마와 아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내가 유심히 쳐다보자,
“스님, 제 아내와 딸입니다. 예쁘지요?”
하고 그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진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요, 폭력 전과로 15년 동안 일곱 번씩이나 학교에 들락거린 사람이랍니다. 허나 이젠 마음 고쳐 먹고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저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새 힘이 솟구친답니다.”
나는 잠시 사람을 믿지 못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가졌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런 내 마음을 그가 눈치챈다면 얼마나 언짢고 실망을 할까 생각하니 갑자기 그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운전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약 2년 됐습니다”
“대단하십니다. 그래,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됐습니까?”
“취직을 하려고 해도 전과자를 누가 받아 주기나 해야지요. 스님도 아시다피시 이 사회란 것이 한 번 전과자가 되면 괜히 경계를 하고 사람을 자꾸 의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예 취직은 포기하고 이 길로 들어섰지요. 아무튼 남의 눈치 안 봐 좋고, 수고한 만틈 정직하게 보수가 돌아오니 좋고…. 그래서 이 일을 하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그저 임시방편으로 하게 되었는데 하다보니 일이 좋아지더군요.”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저보다는 못난 남편을 믿고 기다려준 제 아내가 더 고생하고 살았지요. 교도소를 마치 제집처럼 드나들었으니까요>.”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새롭게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지요. 그러나 막상 사회에 복귀하면 또다시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악순환을 보며 늘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스님,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건 이 사회가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마음을 다지고 결심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먹고살아야 하는데, 일자리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또 지를 짓게 되고 마는 거지요. 저 역시 수없이 체험한 일입니다.”
“그럼 먹고 살만은 합니까? 이 일이 보통 힘든 게 아닌데….”
“한 달에 3백은 족히 법니다.”
순간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3백만 원이라! 이는 일반 개인 택시도 벌수 없는 큰 액수가 아닌가. 영업용 회사택시의 경우 한 달 월급 5,6십만 원에다 약간의 수당이 더 붙어 1백만 원 가량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여느 기사의 세 배가 되는 액수인 것이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 이 대한민국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택시 기사일 거요! 그 비결이 뭡니까. 나도 좀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가 흰 이를 드러내면서 활짝 웃었다.
“스님, 비결이 분명 잇지요. 가르쳐 드릴까요?”
하더니, 잠시 있다가 말을 이었다.
“택시 기사는 첫째, 잠이 없어야 합니다. 졸다가 까딱하면 사고 나기 십상이니까요. 둘째, 체력이 좋아야 합니다. 운전이라는 게 겉보긴 쉬워도 계속 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드는 노동이 아닙니까. 잘 먹기도 해야 하지만 저는 선천적으로 기본적인 체력이 있어서 그래도 낫습니다.
“그럼 세 번째는 뭡니까?”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점은 운전을 좋아해야 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된 이 일을 견디기 어렵지요.”
나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운전이지만 이 일은 끈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지요. 전 남들 쉴 때도 쉬지 않고 운전을 하지요. 일주일에 단 두 시간 밖에 쉬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지나치리만큼 열심히 일하시는 겁니까? 적당히 쉬면서 해도 될 텐데.”
“빚을 갚아야지요. 15년간 감옥에 들락거린 저 때문에 몸도 마음도 무척 고생했던 제 아내를 위해서 입니다.”
나는 놀라웠다. 그 동안 자신을 위해 기다려 준 아내에게 빚을 갚고 또한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처럼 열심히 뛰는 사람이 있다니! 그가 새삼스럽게 우러러 보였다.
“대단히 훌륭하십니다. 이처럼 성실하게 사시니 말입니다.”
“전 오히려 스님에게 고맙고 또 늘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삽니다. 제 차를 타는 손님은 저를 도와주시는 분이니 그분들에게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지요. 스님 말씀대로 저도 이 일에서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암요, 부디 성공하셔야지요.”
사회에 나와서 잘 적응해 열심히 사는 그의 모습이 퍽 미덥게 여겨졌다.
내가 교도소에서 강연을 할 때 재소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사회에 나가 성공하려는 마음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무언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그 다음엔 성공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지녀야 또다시 죄를 짓지 않고 교도소로 되돌아오는 일이 없다고 강조해서 얘기한다.
그러나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소외된 이들이 예전처럼 다시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을 결코 쉽지 않을 일이다.
“그간 어려운 고비가 무척 많았겠습니다. 안 보았지만 충분히 상상이 갑니다. 그래도 이처럼 잘 극복하고 사시니, 내 마음이 퍽 기쁩니다.”
“스님, 언젠가 ‘일체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마음 한번 바꾸고 나니 사는 게 참말 즐겁습니다. 진작에 이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요!”
“그래서 저는 매일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폭력으로 얼룩진 거짓 인생이었지만 앞으로 사는 것은 진짜 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예전의 저처럼 폭력이나 휘두르고 십게 살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손임으로 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전 반드시 충고를 해줍니다. 저처럼 함부로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말라구요.”
“한 번 죄를 짓기는 쉬워도 거기서 빠져 나오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요.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압니다.”
그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들 앞에서 죄를 행하였을지라도, 뒤에 그치고 침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세상을 밝히니, 달에서 구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동대구역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람, 달리는 차 안에서 나눈 잠시의 대화였지만 나는 그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마치 구름이 흩어지고 나면 나타나는 밝은 달처럼 나의 마음을 감동하게 했고, 주위의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
오늘도 변함 없이 대구 시내 거리에서 손님을 태우고 어디론가 열심히 달리고 있을 씩씩하고 건강한 그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