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그 나라 문화 수준과 의식을 반영한다고 한다. 유행이란 것도 그 시대 경제의 흐름과도 밀접한 상과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그 나라의 경제가 호황인 편이고, 반면 여자 치마 길이가 길어질수록 경제가 악화일로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중인 내가 유달리 패션에 관심이 있고 미니스커트에 호기심이 가서 이러한 얘기를 꺼내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실은 택시 기사 아내들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내가 아는 어느 택시 기사분의 아내는 남편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지폐의 종류로 요즘 경제의 호·불호을 판단한다고 한다. 즉 그날 번 돈을 집계하여 만 원짜리가 있으면 경기가 좋다. 그리고 천 원짜리가 많이 나오면 경기가 좋지 않구나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에겐 그 말이 퍽 재미있게 들렸다.
글쎄, 그것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 분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일리가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개의 사람들은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으면 천 원짜리 한 장도 아껴 쓰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을 하기가 힘든 세상이라고들 한다. 바쁘다보니 아내와 자식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는 탓도 있을 것이리라.
그러나 듣고 보면 남편 노릇만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집 안에 있는 아내들 또한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남편이 오랫동안 회사택시를 몰다 8년 전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하게 됐다는 윤씨는 기사를 남편으로 둔 덕에 심한 정서불안과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남편이 돌아와야 할 시각인데도 조금 늦거나 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 운전을 하다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과 초조감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만성적인 정서불안이 병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늘 사고의 위험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는 직업이 바로 택시 기사이기 때문이다.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고, 이로 인해 기사분들은 대부분 스트레스성 질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하체 부분이 특히 약해지는 것은 허리 윗부분만 주로 움직이는 데서 오는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들 역시 그러한 남편 걱정이 병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취미나 레저 생활을 하지 그래요?
라고 속도 모르는 남들의 충고를 듣기도 하지만 시간과 돈, 둘 다 여유가 없다보니 그런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게 되어 버렸다. 시간이 나면 바닷가도 가고 싶고 산에도 가고 싶지만 일단 생활이란 것이 앞을 가로막고 있고 고생하며 운전하는 남편이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손님들을 상대하고 지쳐서 들어오는 남편은 언제나 후줄근하게 땀으로 젖어 있다. 어떤 때는 와이셔츠 단추가 한두 개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십중팔구 손님과 실랑이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 일부러 못 본 척 돌아서지만, 고생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마음 속으로 아파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먼 거리를 갔다가 손님에게 요금도 못 받고 허탕만 치고 들어서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속이 상하지만 남편이 더욱 힘들어 보여 바가지 한번 제대로 긁을 수가 없었단다.
기사의 아내들은 해결사가 돼야 한다.
라고 윤씨는 웃으며 말한다. 자잘한 사고를 가끔 겪다보니 이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척척 혼자서 해결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한번은 남편이 뺑소니 운전자로 몰려 크게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비가 오는 날, 하필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을 치고 차가 미끄러지면서 서자,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가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즉시 다친 사람을 병원 데리고 가서 치료해 주었지만 결국 뺑소니로 몰리게 된 것이다.
어쩌다 실수로 사람을 치는 불행한 사고를 냈지만 분명 뺑소니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운전면허 정지였다. 그리고 경찰에 구속되면 개인택시 면허가 취소되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동분서주 마음을 태운 끝에 결국 피해자와 합의하여 무죄판결이 났지만 그러기까지는 7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남편도 그렇겠지만 기다리는 아내 역시 애간장이 타들어갈 만큼 힘들게 인내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뒤론 남편이 늦게 들어오기라도 하면 또 무슨 사고가 난 것이 아닐까 싶어 불안해지고 근심이 되곤 한다는 것이다.
“퇴직금이 없고 보너스가 없는 직업이다 보니 항상 절약하고 부지런해야지요. 하루하루 벌어서 자식들 대학 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지요. 예전에는 토요일, 일요일도 벌이가 꽤 괜찮았는데 요즘은 차들이 밀려서 도로가 막히는 통에 평일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으니…. 아예 쉬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예요. 길이 자주 막히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러다 보니 위장병이 생기는 게 아닙니까? 택시 기사들치고 신경성 위장병이 없는 사람이 드물 겁니다. 말리고 싶지만 굳이 나가는 저이를 말릴 수도 없고….”
윤 씨는 택시 기사 아내로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그래도 개인택시는 나은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해 회사택시는 마음대로 쉴 수 있는 자유가 없을 뿐더러 꼬박 12시간을 근무해야 하니 그 고된 일의 강도는 개인택시보다 한층 더한 것이다.
게다가 하루 입금액이 정해져 있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그 액수만큼을 반드시 채워 넣어야 한다. 불법이지만 합승을 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열악한 근무 조건 탓이리라. 그러나 월급 외에 수당을 모두 더해도 70만 원선인 택시 기사의 월급을 가지고는 네댓 명의 식구가 한 달 먹고 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주로 택시를 이용하는 나는 간혹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기사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좀 더 친절하고, 좀더 부드럽고, 좀더 손님을 편안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하고 내심 불만스럽다가도 이내 마음을 바꾸고 이해하려 한다. 기사분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나고 찡그린 얼굴보다는 부드러운 얼굴이 아무래도 나는 좋다. 그리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열심히 사는 성실한 기사분들을 만날 때가 더욱 마음 뿌듯해진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분면 그 아내들의 숨어 있는 아픔과 노력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참을성 있게 남편을 기다리고, 밥을 챙겨 주고, 누구보다 알뜰하고 부지런하게 가정을 이끌어가는 아내들이 있기에 택시 기사들은 시름도 고됨도 잊고 열심히 핸들을 잡는 것이리라.
아내는 남편의 영원한 누님이다. 어진 아내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예쁜 아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자기 아내는 회상의 벗이다.
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진 아내를 만나면 행복하고, 나쁜 아내를 만나면 불행해진다. 어떤 아내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과 불행이 좌우되기도 한다.
부정한 아내 때문에 살인을 하고, 탐욕에 눈이 먼 아내 때문에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결국 사형수가 된 이들을 나는 여럿 보아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방탕한 아내를 만나면 재물을 모으기 어렵고, 정직하지 못한 아내를 만나면 의심이 늘게 되는 것이니, 평생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갈 아내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옥아경>에는 일곱 종류의 아내가 나온다.
첫째는 살인자 같은 아내이다.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거나 공경하기는커녕 다른 남자에게 정신이 팔려서 남편이 죽기만을 바라는 아내이다.
둘째는 도적 같은 아내이다.
남편이 애써 노력해서 얻은 재물을 모두 자신의 허영을 충족시키는데 소비하고 탕진해 버리는 아내이다.
셋째는 지배자 같은 아내이다.
일을 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며 많이 먹고 성질을 부려 남편을 억압하며 괴롭게 하는 아내이다.
넷째는 어머니 같은 아내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듯 남편을 사랑하여 지키며 남편의 재산을 소중히 하는 아내이다.
다섯째는 누이 같은 아내이다.
남편을 성실히 섬기고 남매 같은 사랑으로 겸손하게 남편을 섬기는 아내이다.
여섯째는 친구 같은 아내이다.
남편에게 친구처럼 다정하고 정다웁게대하며 남편을 보면 항상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기뻐하는 아내이다.
일곱째는 종 같은 아내이다.
마치 종이 상전을 섬기듯 남편을 존경하고 다르면 남편이 어떠한 행동을 해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며 잘 참고 섬기는 아내이다.
대부분 택시 기사들의 아내는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 같은 아내, 친구 같은 아내들일 것이다.
한 가정에 있어 아내의 역할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비로운 여인을 아내로 맞은 가정은 평화로울 것이며, 고달픈 남편을 위로하는 아내를 얻은 가정은 푸근하고 안락할 것이 분명하다.
긴 장마비가 그친 뒤에 보면 이 지상은 더욱 싱싱하고 푸르른 초록의 빛깔로 가득 찬다. 그래서 6월의 장마비는 초록비라 했다. 이 달디단 초록비처럼 아내들이 남편을 사랑하고 평화롭게 가정을 가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