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시 기사가 흑인 손님 두 명을 태우고 워커힐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반대편에서 오는 동료 기사를 만났다. 길에서 마주치자 저쪽에서 오던 택시 기사가 아는 체하며 소리쳤다.
“어이,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러자 이쪽의 택시 기사도 덩달아 반가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워커힐로 연탄 두 장 싣고 가네!”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 흑인 손님 빙긋이 웃으며, “연탄 두 장 값이 얼마요? 한 장에 1백5십 원이니…, 그러면 3백 원이면 되겠구만!”하며 동전 세 개를 던진 뒤 문을 쾅 닫고 내리는 것이 아닌가.
유창한 한국말에 기사는 기가 질려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는 우스갯 이야기 한토막이다.
개인택시 기사 김치국 씨는 자칭 자칭 그야말로 노 스피크 잉글리쉬
이다.
어느 날 의정부 송산리로 손님을 태우고 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마침 우연히 그곳에서 서울로 나오는 한 흑인 병사를 만나게 되었다. 빈 차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김씨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 흑인 손님은 서투른 한국말로 이문동에 가자고 했다.
그쪽은 한국말에, 이쪽은 영어에 둘 다 외국말에 약하기는 마찬가지. 서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질 않으니 둘 다 꿀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 수밖에.
이문동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는 요금을 내지 않고, 대신 손짓과 몸짓을 써가며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영어는 도통 모르겠으나, 눈치를 보아하니 어느 여자한테 전화를 걸어 달라고 서정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전화를 걸 일이지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러나 어떡하든 요금은 받아야지, 하는 생각에 메모에 적힌 대로 전화 다이얼을 돌렸지만 그가 찾는 사람은 없었다.
“당신이 찾는 여자가 없다고 하네?”
보디 랭귀지로 이렇게 말하자 그는 그렇다면 다시 용산
으로 가잔다. 갔더니, 또 부대 근처 미장원 손 끝으로 가리키며 여자를 찾아 달라는 시늉을 한다.
“나 참, 살다가 별일을 다 보겠네. 이봐요, 그러지 말고 요금을 내놓으란 말이오. 난 바빠서 이제 그만 빠이빠이 하고 일을 해야 된다 말이오.”
그러나 그 흑인 손님은 계속해 알지도 못하는 여자를 찾아내라고 도리어 성화를 부리는 거였다. 길에서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보이며 자기가 가진 재산이라곤 이것밖에 없다며 내놓은 것은 고작 몇 센트짜리 동전뿐. 요금 2만 원에 비하면 턱도 없는 액수였다.
마침 그 곁을 지나던 군부대 한국 사람이 중재에 나섰다. 결국 오늘은 저 흑인 손님의 사인만 받고 내일 다시 그의 부대로 찾아가 택시 요금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다시 똑같은 내용을 그 흑인 손님에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쪽도 고개를 끄덕이는 폼이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는 내용인 듯했다. 안심하고 김 씨는 돌아왔다.
다음날, 약속대로 그 이방인의 사인을 들고 의정부 송산리 군부대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 사람 여기 없어요. 본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라서 이미 동두천으로 갔는데요.”라는 부대 사람의 말에 온몸의 기운이 쑥 빠져나갔다. 동두천은 외국인 군부대 사람들이 출입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단숨에 달려왔는데, 내가 동두천 아니라 지옥이라고 한들 못 갈소냐.
김씨는 은근히 약이 올랐고, 요금 2만 원을 꼭 받고야 말겠다는 오기마저 생겼다.
또다시 동두천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어디가 어딘지 통 종잡을 수 없이 넓고 막막하기만 한, 피부색과 유전자가 다른 낯선 인종들의 천국이었다.
사인인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그를 찾기란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다.
그러기를 한참, 그가 애쓴 보람이 있었는지 창구 직원이 그의 이름을 보더니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사람, 조금 전에 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 거지요?”
결국 돈은커녕 애쓴 보람도 없이 허탕만 치고 돌아나오는 그이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한다. 많지도 않은 액수의 돈으로 남을 골탕먹이면서까지 떼어먹고 자기 나라고 가버리면 그만이라는 고약한 심보에 그는 어이가 없어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때로 낯선 이방인을 손님으로 태울 적마다 그는 자신을 골탕먹였던 그 흑인이 기억난다. 물론 결코 좋지 않은 감정으로…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와 유사한 사람을 태우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돈 2만 원을 떼먹고 달아난 그의 가볍고 무심한 행동이, 결국 자신은 물론 동료 전체에 나쁜 인상을 심어 주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개인택시 운전을 하는 박주용 씨는 이와는 다른 일을 경험했다.
한남동을 지날 때인데, 앞쪽에서 흑인 병사 한명이 손을 들고 택시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서 차를 세운 순간, 험상궂은 인상에 그는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손님을 못 본 체 그냥 갈 수는 없는법. “타십시오.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정중하게 물었다.
차 안에서 그가 백미러로 다시 쳐다보니 손님의 얼굴은 험상궂게 생긴 것뿐만 아니라 온통 칼자국으로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양 볼에 선명하게 그어진 세 개씩의 굵은 칼자국은 그의 지나온 이력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들은 도처에서 위험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가 이 녀석이 뒤에서 나를 해치는 것은 아닐까? 혹시 흉기는 없는 걸까?
긴장감이 드는 순간 갑자기 목 뒤가 뻣뻣해지기 시작했다.
박씨는 백미러로 그 낯선 이방인을 경계의 눈빛으로 주시하기 시작했다.다급한 상황이 연출되면 그가 어떻게 조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그러나 다행히도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방심하기에 아직 이르지 않은가! 요금을 주면서 그가 내릴 때까지도 그의 긴장감은 계속됐다.
이제 됐구나 안심하는 순간, 그의 입에서, “쌩큐, 쌩큐. 고맙습니다.”하면서 서투른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의외였다. 기사가 흠칫 놀라는 모양을 보더니 그는 요금에다 팁까지 더 얹어 주고는 “나 한국 택시 타기 너무 힘듭니다. 아무도 안 서요. 그래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하고 진실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가금 얼굴이나 외양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택시를 탄 어느 외국인이 오해받은 것은 단지 험상궂은 외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만 보더라도 사람의 외모가 험악하다 하여 마음까지 험악한 것이 아님은 분명한 사실이다.
낯선 이방인이 우리나라에서 택시 타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를 여러 번 했을까 생각하니, 나중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 그 기사는 덧붙여 말했다.
택시를 타보면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
라는 말이 있다.
택시 기사는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한국 사람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택시 안에서 받은 첫인상이 나중까지도 오래 남는 법이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지난 88 올림
때에도 택시는 우리나라의 홍보역군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 바 있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용한 것을 주로 택시였고, 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고 올림픽 개최국으로서의 초소한의 예의와 품위를 유지한 것은 모두 택시 기사분들의 친절한 서비스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도 우리 한국 사람의 좋은 인상을 오래 간직할 것임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것이 바로 애국이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사분의 친절한 인사 한마디에서, 작은 배려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비단 외국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지만, 기사분들의 인사 잘하기도
도 훌륭한 서비스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나는 늘 택시를 이용하면서 기사분들의 따뜻한 인사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적이 있다.
어서 오십이오.
, 혹은 고맙습니다.
라는 단순한 인사 한마디에 피로가 눈 녹듯 가시는 것이다.
좋은 말은 들어서 즐겁고, 해서 즐겁다. 기분좋은 말을 들으면 하루가 즐거워지고 1년 3백6십5일이 즐겁다. 인사를 해서 듣는 이가 즐겁다면 이 또한 남에게 베푸는 보시오, 공덕을 쌓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는다는 차원을 떠나 인사 잘하기
를 택시 기사분들에게 꼭 부탁드리고 싶다.
조금만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 택시 안의 세상이 된다면 이 얼마나 좋겠는가!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