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한다. 삭막하고 거친 인생의 여정길에서 혼자 외롭지 않기 위해 남녀가 함께 살기로 언약을 하고 그 다음엔 언약을 지키기 위해 사는 것이 곧 결혼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결혼이란 반드시 달콤한 행복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 것 같다.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말이다.
어는 개인택시 기사가 만난 한 부부의 얘기이다.
하루는 오류동에서 40대 중반의 부부로 보이는 한 남녀가 택시에 탔다.
“서초동으로 갑시다.”
퉁명스럽게 내뱉은 다음, 남자는 줄곧 앞쪽만을 노려보듯 응시하고 있다. 여자 또한 남자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입을 꼭 다물고 창 밖만을 바라보고 있다.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은 그 자세 그대로였다. 기사가 보기에도 분명 부부 사이가 틀림없었다.
공연히 말참견이 하고 싶어진 기사는, “두 분 많이 닮으셨습니다. 부부이신가 보죠?”하고 택시 안에 감도는 싸늘하고 답답한 침묵을 깼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마주 보더니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원상복귀, 잠시 후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는 남남이지요. 지금 이혼하러 가는 길이니까요.”
“아, 서초동에…. 그렇다면 법원에 가시는 거군요?”
남 일에 끼어들어 괜한 말을 꺼냈다 싶은 후회가 됐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줄곧 냉랭한 것이 찬바람이 이는 분위기였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나이도 그들 부부와 엇비슷한 이 기
사는 자신도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터이고 보니 이들 부부의 일이 결코 남의 일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제가 주제넘게 참견하는 것 같습니다만, 왜 이혼을 하려고 결심을 하셨습니까? 제가 보기엔 아주 잘 어울리는 한쌍이신데요.”
그러자 이번에는 여자가 나서며, “저 양반하고 사느니 내 차라리 혼자가 되는 쪽이 더 낫지요. 밤낮 술만 퍼마시고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오니…. 이건 차라리 그이가 하숙생인지, 내가 과부인지? 그렇게 20년 가까이 살다보니 이젠 신물이 넘어와요.”
“아아니, 내가 언제 밤낮 술만 먹었다구 그래? 당신은 뭐 하나 제대로 날 편하게 해준 적이 한번이라도 있소?”
여자의 말에 남자는 부르르 떨기까지 하면서 말을 내뱉는다.
이건 남의 택시 안에서 아예 부부 싸움을 시작하자는 겐가?
“당시,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에요. 헤어지더라도 우리 남들 보기 좋게 끝냅시다. 치사한 인간 같으니!”
기사를 힐긋 돌아본 여자가 볼멘소리로 울먹이기까지 하자 남자도 민망한지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짐짓 고개를 돌린다.
내가 술을 좀 좋아했기로 그래 불만이 쌓였단 말이오?
하고 부인을 나무라는 듯한 표정이다.
기사를 그제야 그들 부부가 왜 이혼하려는 것인지 대강의 전말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사 자신도 크고 작은 문턱을 넘나들며 결혼 생활의 위기를 넘겨온 경험이 있었다.
“조 또한 몇 번 이혼할 뻔했지만, 그래도 안 하길 잘했다,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삽니다. 여자도 그렇겠지만, 남자 입장에서 보면 이혼하고 좋을 게 없질 않습니까? 마누라 다시 얻으려면 웬만큼 돈도 있어야지요, 또 얻어봤댔자 만씨 고운 여자가 어디 그리 흔한가요? 다 늙어 이혼하고 나면 남들이나 자식들 얼굴 보기도 창피할 뿐이고…”
기사는 이렇게 슬쩍 말머리를 돌린 다음 백미러로 그들 남녀를 쳐다보았다.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처지와 동일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관심이 가게 마련인 것이다. 예상대로 남자가 먼저 희미한 반응을 나타냈다.
“기사분도 저와 비슷하신 연배인 것 같은데…, 정말 이혼하시려고 하셨던 적이 있습니까?”
“그럼요. 별로 좋은 얘기는 아니지만, 저도 사연이 꽤 있답니다. 어차피 이혼하는 것이 시간을 다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기왕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소주나 한잔 하면서 얘기 좀 합시다.”
남들 이혼하러 가는 판에 느닷없이 웬 소주? 하지만 술 얘기가 나오자 남자는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순환도로를 따라 신림 사거리로 접어들 즈음 다리 위에 포장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무작정 차를 대고는 자 내립시다. 하니 남자가 문을 쾅 닫으며 내린다. 여자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뒤를 따르고….
이리하여 서초동 법원으로 이혼하러 가던 이들 부부는 신림동 사거리 포장마차로 돌연 진로를 바꾸게 되었는데… 주거니 받거니…. 술에 취하고 말해 취하다보니 어느덧 어둠이 밀려오고…
여자가 대뜸. “아저씨, 날도 저무는데 저랑 데이트나 합시다.” 괜스레 너스레를 떤다. 기사는 남자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그러지요, 이제 시작이니 어디 가서 한잔 더합시다.”라고 말하곤 근처 스탠드바로 향했다. 오후 서너시부터 시작한 술자리가 10시까지 이어졌다.
“아무래도 이혼은 내일 하셔야겠습니다.”
“내일 하면 어떻고 모레 하면 어떻소, 기왕 20년 세월을 살아왔는데 하루 이틀이 무슨 상관이오?”
은근히 떠보는 기사의 말에 그들 부부의 말투는 전보다 퍽 누그러져 있었다. 오류동 그들 집까지 바래다 주니 여자가 2만 원을 주면서 기사분의 전화번호나 메모해 달라고 했다.
그 후 한참이 지난 뒤 어는 날, 낯설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왔다.
“아저씨, 그때는 고마웠어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우린 벌써 남남이 되었을 겁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자칫 이혼이라는 파국을 향해 가던 부부가 택시 기사의 기지로 위기를 넘기게 되었고 한 가정이 온전하게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그 기사는 그들에게는 과연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나는 자못 궁금해졌다.
기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저는 단지 그들 부부의 얘기를 듣기만 했을 뿐입니다. 남편이 자신의 불만을 얘기하면 당신 말이 맞다고 했고, 부인이 불만을 토로하면, 듣고보니 그것도 옳다고 인정했지요. 당신이 옳고 저 사람이 틀렸다고 잘라서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공연히 그들의 마찰을 부채질할 뿐이니까요.”
과연 현명한 판단이다! 나는 내심 감탄했다. 사실 이혼하는 부부는 서로를 원수 보듯 미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상대방에 대해 상한 감정을 풀기 위한 노력없이 감정싸움으로만 치닫게 된 결과라고 한다.
법정으로 가다가 화해하게 되 이들 부부처럼, 한 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 사회에 이혼하는 사람들의 수효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이 다 저 사람 때문이다. 혹은 다 네 잘못이다 라고 허물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헤어지면 차라리 속시원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리라.
옛날 체속천왕이 인간의 수대로 주머니를 주면서, 하나는 자기의 허물을 넣고, 다른 하나는 남의 허물을 넣어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목에 좌우로 걸도록 돼 있는 것을 그만 실수로 나의 허물이 들어가는 주머니는 앞에, 자기 허물이 들어가는 주머니는 뒤에 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낮 남의 허물만 보게 되었다.
라고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내 눈 속에 박혀 있는 가시는 안 보여도 남의 눈에 박힌 작은 티끌은 크게 보이는 법. 부부 사이도 이와 같이 남의 허물은 쉽게 눈에 띄지만 자기의 허물은 모르거나 아니면 숨기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지혜로운 기사는 포장마차 안에서 그들 부부의 서로에 대한 불만과 주장을 들어 주었다.
남편은 사사건건 잔소리만 하는 아내가 지겨웠고 아내의 바가지가 불만이었다. 아내 또한 남편이 집안일에 무심한 채 술로만 세월을 보낼 분만 아니라 자신에게 무관심한 것이 불만의 요체였다. 기사는 묵묵히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모두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해 참기 어려운 점들을 토로하면서 그들 부부는 차츰 흥분된 감정이 냉각되어 가고 있었다.
사실 결혼이 쉽지 않은 것처럼 이혼이란 더욱 어려운 것이다. 또 헤어진들 자신에게 과연 이로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서로들 헤어져서 안 보면 속이 시원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마음 한구석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그 뒤에 감당해야 할 외로운 삶이다. 사실 감정의 마찰이 생기고 화해할 기회도 없이 그대로 쌓여가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만 사실 누가 먼저 터놓고 말 한마디 한 사람은 없다.
누구든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해서 풀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 잘못된 것이긴 해도 어쩌면 서로에 대한 자존심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싸우지 않는 부부란 애정이 없는 부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부간의 다툼이란, 어쩌면 사랑과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