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오후 10시쯤, 차량이 붐비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늦은 시간대인 만큼 빈 택시로 다니는 차들은 거의 없었다. 택시가 한남동을 지날 때였다. 누군가, “미아리 더블!”하고 소리치며 차를 세웠다.

차에 오른 손님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었다. 그런데 그려가 고개를 숙이면서 차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다른 게 아니라 출렁, 하는 그녀의 터져 나올 듯한 허연 젖가슴에 그만 눈길이 가 닿은 것이다. 그런데. “아저씨, 나 멋있어요?”

그녀는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 부끄러움조차 없이 이렇게 말하며 내 옆자리로 앉는 것이다. 당황해서 얼굴에 모닥불 담아 부은 듯한 내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슬쩍 곁눈으로 보니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듯한 노브라, 게다가 그녀는 풍만한 가슴선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깊게 파인 웃옷 차림이었다.

“네, 멋있습니다.”

방금 외국잡지에서 튀어나온 듯 체격 좋은 글래머…, 게다가 미모도 썩 괜찮은 여자 손님을 옆자리에 앉히고 가는 내 기분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조금 가지니 그녀는 또, “아저씨, 정말 나 멋있어요?”

다시 한 번 확인이라도 하듯 묻는 것이다.

나는 그만 멋쩍어서 싱긋 웃으며, “네, 정말 멋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또 만족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자신에 찬 웃음을 흘리는 것이다.

정체가 묘연한(?) 이 손님을 태운 차가 경동시장 부근을 지날 때였다. 시장 안은 모두 파장한 뒤였고, 근처 상가들도 대부분 불빛이 꺼져 버린 터라 이곳은 마치 어둠이 짙은 장막을 한겹 씌워 놓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내 오른쪽 손을 잡더니 불쑥 자신의 가슴 속으로 집어넣었다. 갑자기 물컹, 하는 이물질의 촉감이 만져졌다.
느닷없이 당한 일이었다.

세상에, 이런 난처한 경우가!

순간, 전깃줄에 감전이라도 된 듯 오른쪽 손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녀는 이제 내게 교태어린 눈길마저 던지고 있었다. 무엇에라도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잠시 후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손을 빼냈다. 차는 목적지인 미아리에 다다랐다.

그녀는 샐쭉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없이 팔랑거리며 앞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아가씨, 요금 줘야지!”

당황해서 클랙슨을 빵빵 누르니, 그제야 뒤를 돌아본 그녀가 차 옆으로 다가왔다.

“아니, 그냥가면 어떡해? 요금을 줘야지요!”

의아하다는 듯한 얼굴로 당당하게 내뱉은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저씨, 그러면 내건 공짜예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난 택시 기사는 잠시 너털웃음을 웃었다.

“스님, 세상에 이런 불한당 같은 아가씨가 또 있나 싶더라구요. 몇 년 전이니까, 그땐 제가 아직 총각이었을 적의 일이지요.”

“저런…, 그래서 결국 요금을 받지 못했겠구려. 애써 생고생만 했습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말했죠, 당신이 더블 요금 준다고 했지 않느냐, 나는 편도만 왔으니 이건 내가 손해다. 편도 요금을 내든지 아니면 다시 차에서 타고서 더블 요금값을 치러야 되지 않겠느냐, 라구요.”

그래서 아가씨가 택시에 다시 오는 순간, 기사는 이때다 싶어 문을 잠가 버렸다.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아가씨가 돈이 없어서 그랬다면 내가 사정을 봐서 차라리 안 받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게 틀림없잖아? 아가씨는 상습범인 것 같으니 아무래도 경찰서로 가야겠어.”라고 단호히 말하면서 부근 파출소 근처로 차를 몰았다.

설마 그럴리야, 괜히 해본 소리겠지 하고 방심하던 그녀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벌써 바로 눈앞에 파출소 현판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저씨, 잘못했어요. 이 돈은 드릴 테니 제발 내려 주세요.”

그제야 이 당돌한(?) 아가씨는 두 손을 싹싹 빌면서 요금 2천5백 원을 내미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 되겠던지 다시 5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더불 요금을 드릴 테니 제발…, 하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이 수그러드는 척, “그렇다면 내 한번 봐주겠는데, 우선 조건이 하나 있어.”라고 말했다. 그녀의 겁먹은 두 눈이 나를 바라봤다.

“여기서 내려 줄 테니, 그 다음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뛰어가야 돼. 만약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볼 경우엔 난 아가씨를 저기 파출소에 대리고 들어가는 거야. 아시겠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에서 내린 그녀는 쏜살 같은 속도로 달아나 금세 가뭇없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

“택시를 몰다보니 이런 일이 허다하지요. 다행히 그 아가씨한테서 요금을 받긴 했지만…, 스님 어째 기분은 썩 좋지 않더라구요. 여자가 제아무리 예쁘면 뭘합니까? 박색이라도 마음이 예뻐야 진짜 미인이지요.”

젊은 기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농사를 잘못 지으면 1년을 망치지만, 아내를 잘못 얻으면 1백 년을 망친다는 말이 있질 않소. 본디 여자이건 남자이건 마음이 우선인 게요, 잘 알고 계시겠지만 말입니다.”

“제 주위에도 이런 경우가 많지요. 점심때 식당에서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글쎄, 별의별 일을 다 겪고, 또 손님에게 당하는 경우도 숱하답니다. 제 친구 얘기를 하나 더 들어보시겠습니까?”

“어느 미모의 여자 손님이 제 친구 Y의 택시에 올랐죠. 이 친구가 보기에도 몸매가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빠지지 않게 생긴 여자였다는군요. 그런데 방향이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빠지는 장거리를 가자고 하더래요. 어느덧 호젓한 코스로 접어들면서 이 여자의 유혹이 시작됐지요. 자꾸 한숨을 쉬다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기도 하다가 자신의 신세가 어쩜 이렇게 외로울 수 있는가 이야기를 꺼내더래요. 이 친구가 겉으로 보기에도 짙은 화장을 하지 않아선지 화려하다 싶지도 않고 오히려 정숙해 보이는 느낌이더라구 해요. 그녀는 묻지도 않는 자신의 신상을 털어놓기 시작하더랍니다. 전에 남편이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자 이렇게 짝 잃은 외기러기처럼 살고 있다, 돈이 있으면 무얼하느냐, 쓰고 싶은 의욕도 없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달래 줄 이성친구라도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성실하고 순진한 이 친구는 차츰 그 여자에게 위로해 주고 싶다는 동정심이 일기 시작하더라는군요. 결국 그날 어찌어찌 하다가 그 미모의 여인의 유혹에 빠져 깊은 관계를 갖게 되는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죠. 그런데 그때, 갑자기 웬 남자가 문을 열고 들이닥치더니 다짜고짜 멱살을 잡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은 그녀의 남편이라고 말하면서 강간죄로 너희 둘을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더라는 거예요. 이 친구, 그들이 서로 짜고 계획적으로 꾸민 일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 거죠. 그들은 상습범이었던 모양입니다. 미모의 그녀는 남자들을 등쳐먹고 살아가는 꽃뱀이었구요. 이 친구 무슨 망신입니까. 게다가 구속이라도 되는 날이면 개인택시 면허가 취소될 판이었지요. 물론 가정도 엉망이 되구요. 울며 겨자먹기로 오히려 그들에게 사정 사정해서 결국 합의금으로 4백만 원이나 주고서야 그 일은 결론을 맺었지요.”

그저 웃고 넘기기엔 어딘가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야기였다.

어미 소의 커다란 배가 부러운 개구리가 욕심껏 숨을 들이마셔 배를 부풀리다 터지고 말았다는 우화가 있다.

우리 인간도 지혜와 진리를 알지 못하는 한 이 개구리처럼 어리석고 몽매할 뿐인 것을!

三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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