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시내 모처에서 힘든 일을 마치고 천근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비사로 돌아올 때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택시를 타기 위해 손을 들고 서 있는데 예수를 믿으시오
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는 택시가 문득 내 앞에 다가와 멈춰섰다. 기사가 나를 반가이 맞이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차에 오른 뒤에 늘 하듯이 수고하십니다.
라고 인사하면서 목적지를 말해 주었다.
그런데 앉자마자 그 기사는 내게, “선생님, 예수 믿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분명 승복을 입었으니 내가 중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불쑥 꺼내는 말이 좀 이상하게 여겨졌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긴 했다. 하지만 나는 잠자코 가볍게 미소만 건넸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그는 다시 내게, “선생님, 성경을 읽어보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아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훌륭한 성자이시니 분명 좋은 책이겠지요. 언제 한번 읽어보아야겠군요.”
“성경책을 꼭 보셔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4,50분을 더 가야 하는 장거리였다. 잠시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이 이어졌다.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제가 성경책을 꼭 보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성경에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어쩌다 부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실 겁니다. 성경에 보면 나 이외의 우상을 섬기지 말라
라는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더 늦기 전에 꼭 예수님 믿고 부디 구원을 받으세요.”
“에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모르는 체 이렇게 질문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입니다.”
“어디에 살아 계십니까?”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또 물었다.
“그런 질문이 어디 있습니까? 그분은 지금 이 자리에 살아 계십니다.”
그는 내 질문이 어리석다는 듯이 점점 더 목소리를 높였다.
“예수님은 그 어떤 분보다도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이 땅의 우리들을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 또한 모두 하느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기사님, 당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이 훌륭한 분이시고 존경받을 만하다는 것은 저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해서 남에게 종교를 포기하러거나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 같군요. 당신이 믿고 있는 종교가 그처럼 소중하다면 다른 사람의 종교 역시 소중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구원이 없다면 그런 종교를 믿어서 뭐합니까? 오직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만이 우리를 악에서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토록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살아계시는데 왜 인간사는 고통스럽기만 한 것입니까?”
그러자 그는 예수님이 세상을 만들지는 않았으며 사람들이 죄를 짓고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있음을 가엾게 여겨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하러 오신 것뿐이라며 오직 예수님만을 믿어야 복을 받고 죄 사함을 받게 된다
라고 흥분하면서 말을 했다.
서로 대화를 하며 가는 도중에 차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몸이 균형을 잃어 한쪽으로 쏠리게 되자 나는 그만 얘기를 끝내고 싶었다. 아슬아슬하게 차들을 피해 운전하는 택시 기사의 모습이 위태롭고 불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실랑이를 하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진 나는 마음을 바꿔서, “잘 알겠습니다. 내 나중에 성경을 한번 보지요.” 하고 말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으시겠다는 거지요?” 다짐을 꼭 받고야 말겠다는 태도였다.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르자 그는, “이제 예수님을 꼭 믿으셔야 합니다.” 라고 하면서 내 대답을 듣기 전에는 내려 줄 수 없다고 우겼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기사양반, 그만 내리도록 해주시오. 나도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잖소?”
그러나 그는, “선생님의 대답을 듣기 전에는 내려줄 수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완강하게 버텼다.
몇 분이 지나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내 대답만을 기다리며 앉아 있고, 나는 꼼짝없이 차 안에서 감금당한 신세가 되었다. 사정도 하고 달래도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다급해진 나는 슬며시 화가 치밀어, “내가 이 차를 탄 것은 당신이 나를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고 나는 셈을 치러야 한다는 일종의 계약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겠소? 어찌됐든 나는 분명히 당신과 약속을 한 셈이고 계약을 한 것이오. 만약 나를 이곳에 내려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되므로 이것은 법적으로 불범감금
에 해당하오.”
내 입에서 불법감금
이라는 법률 용어가 나오자 움찔하면서 그제서야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그의 태도가 갑자기 누그러졌다.
“내 오늘은 내려드리지만 앞으로 꼭 예수님을 믿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 기사의 말을 뒤로 하고 차에서 내린 나는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렷다. 멀어져가는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웬지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늦은 밤 버스 안에서의 일이다.
“야, 이 중놈의 새끼야! 왜 마귀옷을 입고 밤 늦게 돌아다니는 거야?”
귀전에 훅, 하는 술냄새가 진동하면서 누군가 내 어깨를 밀치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술에 취한 중년의 남자였다.
“왜, 쳐다보면 어쩔거야? 나랑 한판 붙어보자는 거야?”
시비조로 대들며 주먹을 치켜세우는 그 남자는 이미 만취 상태인 것 같았다. 이미 취할 대로 취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나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버스 안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그래도 빈자리가 없어 몇 명의 승객 틈에 끼어 서서 있는 참이었다. 느닷없이 당한 일이라 순간 당황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했다.
바로 그때, “스님 이쪽으로 오세요.” 하는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렸다.
앉아있던 어느 여자분이 일어나 내 손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 자리까지 따라오면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 창피한 마음에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아뿔싸! 그도 나를 따라 내리는 것이 아닌가!
계속 욕이 섞인 고함을 치면서 따라오는 그를 피해 나는 달아나듯 뛰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도망가는 나와 욕을 해대며 따라서 뛰어오는 그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들 눈에는 내가 아마도 무슨 죄를 짓고 달아나는 것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관세음보살!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린 내 자신을 보니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이 땅에서 승복을 입고 산다는 것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이러한 난처한 경우를 당하게 될 때면 더욱 그렇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내려 주지 않겠다고 하는 택시 기사나, 승복을 입은 것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거침없이 욕을 해대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을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이 모두가 오직 나
만을 생각하는 아집에 사로잡힌 획일적인 사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 스님네들의 잘못도 있고 사회에도 일부의 책임이 있다. 또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
라는 무책임한 의식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나만이 옳다고 자기 주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상대방을 미워하기보다는 우선 들어주는 사람이 되자. 우리의 마음의 문도 활짝 열리게 될 것이리라.
우리가 남을 이해하고 좀더 관용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것이 소중한 만큼 남의 것도 귀한 법. 한발 물러나 생각해 보면 남의 입장이 이해가 가게 되는 것이다. 종교 또한 내것만이 옳다는 식의 극단적인 독선을 피해갈 수 있다.
한번 넓은 마음으로 생각해 보자.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