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중심은 바로 ‘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공식계수를 만들어 놓았다.

시간+공간=인간(인과)

그래서 옛 물리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과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은 주관적 인식에 따라 이해가 달라지므로 진짜 중요한 것은 주관적인 인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같은 시간도 사람에 따라 달리 인식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1시간이 1천 년 같고, 노는 사람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바쁜 사람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느냐고 성화한다.

그러니까 길고 짧고 빠르고 느린 것이 시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20평 아파트를 보고는 크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평짜리 집에 살면서 답답해서 못 쓰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의 관념 또한 아주 다르다.

한국에서는 미국이 서쪽이지만 미국에서는 미국은 중앙이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가 언제나 지구의 중심점이 된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세계의 중심부에 있다고 자랑하지만 인도 사람들도 자기들의 나라가 중앙에 있다고 주장한다.

동글동글한 공을 놓고 보면 어느 곳이고 동서남북 안 되는 곳 없고 중앙이 되지 않는 곳도 없다. 그러니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우주의 중심은 내가 된다. 시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우주를 만들고, 부처님은 부처님의 우주를 만들고, 나는 내 우주를 만들었다. 기독교인들은 “부자는 어떻게 되느냐?”고 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부자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하나님이 어찌 그 사람만 부자가 되게 하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들겠는가?
부자가 되는 것은 전생에 부자될 만한 인연을 많이 짓고 나서 현생에서도 부자될 만한 인연을 많이 만들고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지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나서 잘 나고 잘 살고 싶지 않는 사람은 없다. 거지를 보고 물어 보라.

“너는 어찌하여 거지가 되었느냐? 거지가 너의 평생의 원이냐?”

아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선생님이 되는 것도 모두 원인이 있어 되는 것이지 그냥 되지 않는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애들이 종종 부모님께 항의한다. 그러나 부모인들 자식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 만들었겠는가? 이왕이면 잘 만들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게 부모님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어떤 자식들은 검고, 희고, 노랗고, 붉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또 게다가 병신까지 끼어 있다. 누가 병신을 만들고 싶었겠는가?

술·담배 많이 하고 마약 하다 보니 약물·음식이 중독되어 그렇게 되는 놈도 있고 전생에 남을 많이 업신여기면 땅딸보가 되고, 윗사람을 공경하면 키다리가 되고, 냄새 좋아하면 코보가 되고, 구경 좋아하면 왕눈이 되고, 듣기 좋아하면 당나귀 귀가 된다.

자작자수(自作自受)인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그러니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나는 왜 그런 짓을 했는가를 먼저 생각하여 볼 문제다.

崇山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