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불광(佛光)의 참뜻은?

불광(佛光)이란 십법계(十法界)의 평범한 중생과 성인 부처가 마음 자체에 본래 지니고 있는 지혜의 본체[智體]라오. 이 본체는 영명(靈明)스럽고 통철(洞徹)하며 맑고 고요히 항상 존재하오.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소. 세로로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관통하여 시간을 구분지으며, 가로로 시방세계를 두루 퍼져 공간을 감싸버리지요.

텅비었다[空]고 말하기에는 만 가지 공덕을 너무 원만히 나투며, 있다[有]고 말하기에는 한 티끌조차 전혀 세우지 않으니, 일체의 법(法)에 스며 있으면서 일체의 모습[相]을 떠난 것이지요.

범부라고 줄어드는 법 없고 성인이라고 더 늘어나지도 않소. 비록 오안(五眼)으로도 볼 수 없고 사변(四辯)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법(法)마다 모두 그 힘을 이어받고 도처에서 누구나 그를 만날 수 있지요.

다만 중생들이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불광(佛光)을 받아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불가사의한 힘을 받아 미혹을 일으키고 악업을 지으며 업장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당하면서 끊임없이 생사윤회를 되풀이하는 거라오. 항상 존재하는 진실한 마음[眞心]을 가지고 나고 죽는 허깨비 같은 과보[幻報]를 받는 셈이지요.

비유컨대 사람이 술에 몹시 취하면 천지가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천지는 돌지 않으며, 또 길손이 길을 잃으면 사방이 뒤바뀐 듯 생각하지만 역시 사방은 바뀌지 않은 것과 같소. 이는 완전히 허망한 업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따름이지, 진실한 법[實法]은 얻을 만한 게 하나도 없소.

그래서 석가세존께서 부처의 도를 성취하여 불광(佛光)을 완전히 증득하셨을 때 이렇게 탄식하신 것이오.

“참으로 기이하고 또 기이하도다. 일체의 중생이 모두 여래의 지혜덕상을 갖추고 있건만, 단지 망상과 집착 때문에 증득할 수 없구나.”

만약 망상과 집착만 떠난다면 일체의 지혜[一切智], 자연의 지혜[自然智], 막힘 없는 지혜[無碍智]가 저절로 앞에 나타날 것이오. 또 <능엄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소.

“미묘한 성품, 원만한 광명, 모든 이름(개념)과 모습(형상)을 떠나 있으니 세계니 중생이니 본래 존재하지도 않다. 허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남이 있고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사라짐이 있으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허망이라 부르고 이러한 허망이 사라지는 것을 진실이라고 부른다.”

이는 여래의 더할 나위 없는 보리[無上菩提]와 대열반이라는 두 전의(轉依)를 일컫는 호칭이오. 한편 반산(盤山) 스님은 이렇게 읊었소.

“마음의 달 홀로 둥그러니 떠, 그 빛 만물을 다 집어 삼키네. 빛이 경계를 비치는 것도 아니고 경계 또한 존재하지도 않네. 마음과 경계 모두 존재하지 않는데 다시 무슨 물건이 있으랴?”

그리고 위산(僞山) 선사는 이렇게 말했소.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면서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을 모두 벗어나 있네. 그 자체 항상스런 진실〔眞常〕을 드러내며 말과 글자에 구애되지 아니하네. 마음과 성품은 물듦이 없이 본디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 단지 잡념 망상만 떠나면 그대로 여여부동(如如不動)한 부처인 것을!”

이렇게 보면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갖가지 설법과 가르침은 한결같이 중생들이 본디 지니고 있는 심성을 미혹에서 깨달음으로 되돌이켜 원래 근본자리를 찾으라고 가리킴을 알 수 있소. 그런데 중생들은 근기의 우열이 상당히 다르고 미혹의 정도도 각양각색이라, 갖가지 가르침으로 일깨워주고 다양한 법문으로 고쳐 주지 않으면 미혹의 구름이 텅빈 본성을 뒤덮고 있을 터이니, 어떻게 하나하나 자기 마음의 달을 분명히 보게 만들 수 있겠소?

그래서 여래께서 맨처음 불도를 이루신 뒤 대화엄경을 연설하사 곧장 사바세계 바깥의 큰 법을 말씀하시면서, 먼저 숙세의 근기가 뛰어나고 인연이 무르익은 법신대사들만 항상스런 진리를 증득하여 깨달음의 언덕에 오르도록 이끄셨소.

그 다음 근기가 둔한 중생들을 순순히 잘 유도하시면서 그들에게 걸맞는 오계(五戒)나 십선(十善)을 연설하여 인간과 천상의 두 부류에게 불도에 들어가는 훌륭한 인연을 맞도록 하거나, 또는 사제(四諦)·십이인연(十二因緣)·육도만행(六度萬行)으로 성문·벽지불·보살의 세 부류에게 불도를 빨리 증득하는 인연을 베풀기도 하였소.

이렇게 아함경(阿含經)으로부터 시작하여 반야경(般若經)에 이르기까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맞추어 설법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이는 모두 점차 수행을 증진하여 본래 심성의 집에 되돌아 가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오. 그러나 이때는 부처님의 본래 회포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은밀히 감추어져 있었소.

법화회상(法華會上)에 이르러 권법을 열어 실법을 드러내고[開權顯實], 흔적을 열어 본체를 드러내셨으니[開迹顯本], 인간과 천상, 권법과 소승을 모두 일승(一乘)으로 포용하여 세 근기의 중생에게 두루 수기(授記)를 내리시고 출세간(出世間)의 본래 회포를 크게 펼쳤소. 그래서 맨처음의 화엄경과 수미쌍관(首尾雙貫)을 이루면서 처음과 끝이 서로 부합하게 되었으니, 하나의 대사인연(大事因緣) 전체를 남김없이 모두 전하고 당부하신 셈이오.

그런데 또 말세 중생의 근기가 너무도 형편없어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라, 여래께서 다시 정토법문 하나를 특별히 열어 상·중·하 모든 근기의 중생들이 성현이나 범부를 가릴 것 없이 현생에 곧장 이 사바 고해를 벗어나 저 극락세계에 왕생한 다음 거기서 점차 무량 광명과 무량 수명의 부처를 증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소. 이러한 대자대비심은 실로 더할 나위 없이 지극하고 심오한 것이라오.

불법은 바다처럼 몹시 넓고 깊으니, 어떤 범부중생이 그 근원을 철저히 궁구하여 한 입에 싹 흡수할 수 있겠소? 그렇지만서도 올바른 신심을 낸다면 각자 자기의 분수와 역량에 맞는 이익을 얻을 수 있소. 마치 코끼리나 모기가 바닷물을 들이킬 때 각자 자기 배를 채우고 나면 그만이듯 말이오. 여래께서 세상에 나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여 각자 이익을 얻도록 하신 것도 이와 마찬가지오.

그런데 말세의 중생은 업장이 몹시 두터운데다가 선근(善根)은 매우 얕고 마음은 좁으며 지혜는 보잘 것 없고 수명은 짧기 그지 없소. 게다가 선지식은 몹시 드물고 악마와 외도는 종횡무진하고 있소. 다른 법문을 수행하여 현생에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며 생사윤회를 벗어나기란 실로 몹시 어렵고도 드문 일이오.

오직 정토 법문 하나만큼은 오로지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수행의 성공이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했느냐를 따지지 않고 다만 믿음과 발원에만 달려 있소. 믿음과 발원만 갖추면 비록 아비지옥에 떨어질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열 번 만의 지극하고 간절한 염불로 부처님 자비가피를 받아 극락왕생할 수 있다오.

여래(如來)의 대자대비(大慈大悲)가 한 물건도 남김없이 두루 제도하는 줄은 정말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가운데 이 정토법문이 특히 가장 주도면밀하고 진지함이 감탄스럽기만 하오.

염불 법문의 유래는 진실로 오래 되었소. 우리들의 일념심성(一念心性)이 허공처럼 항상 불변하기 때문이오. 비록 항상 불변하지만, 또한 일념일념이 인연에 따르지요. 그래서 부처세계의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아홉 중생계의 인연에 따르게 되고, 성문·벽지불·보살의 삼승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곧 육도중생의 인연에 따르게 되며, 인간과 천상의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 인연에 따르게 되오.

따르는 인연의 청정과 오염이 다르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은 과보로 판이할 수밖에 없소. 비록 본체는 전혀 변하는 게 없지만, 그 작용과 형상은 천양지차가 나는 것이오.

비유하자면 허공에 해가 비치면 밝고 구름이 끼면 어두운 것과 같소. 허공의 본체는 비록 구름이나 해로 말미암아 늘거나 줄어드는 법이 없지만, 밝게 드러나고 어둡게 가려지는 모습은 함께 나란히 말할 수 없지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여래께서 중생들에게 부처를 생각[念佛]하는 인연을 짓도록 두루 권하셨소.

“만약 중생의 마음이 부처를 기억하고[憶佛] 부처를 생각하면[念佛] 현재와 미래에 반드시 부처를 보게 되고 부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부처와 여래는 법계의 몸[法界身]으로 모든 중생의 마음 생각[心想] 가운데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음으로 부처를 생각할 때 이 마음이 곧 32상(相) 80수형호(隨形好)이다. 이 마음으로 부처를 지으면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모든 부처의 정변지(正偏知)바다도 마음생각으로부터 생겨난다.”

引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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