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염불(念佛)의 불가사의한 인연과 공덕

장조각(張朝覺) 여사에 대한 답신

조각(朝覺) 여사 보시오.

서(徐)씨 노부인이 향잿물(香灰水)을 마시고 위독한 병세가 다소 안정될 기미를 보인다니, 이는 그 가족들의 정성스런 마음이 가져온 감응이리다.

하덕목(何德牧) 거사가 시(詩)나 말하기 좋아하고 염불에 마음 쏟지 않는 것은 업장의 힘에 이끌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하찮은지 모르기 때문이오. 가령 어린애에게 동전을 주면 좋아하며 받겠지만, 만약 마니보주(摩尼寶珠)를 준다면 그게 뭔지도 모르기 때문에 받지도 않을 것이오.

거지가 남의 돈 몇 푼을 속여 빼앗기 위해서라도 염불을 하기만 하면 몹시 커다란 착한 뿌리[善根]를 심는다는 거 아닌가요? 청(淸)나라 광서(光緖: 마지막 황제의 연호) 18년(1892년) 내가 북경 부성문(阜城門) 밖의 원광사(圓廣寺)에 묵을 때였소. 하루는 한 스님과 함께 절의 서쪽 바깥에서 절로 되돌아 가는데, 열댓 살 남짓된 한 거지 아이가 별로 굶주린 낯빛도 아닌데 동냥을 달라고 계속 뒤따라 오는 거였소.

그래서 내가 염불 한 번 하면 1전(錢)을 주겠다고 제안했다오. 그러나 그가 염불하지 않기에 내가 다시 염불 열 번 하면 10전을 주겠노라고 말했지요. 그래도 염불하지 않기에, 내가 대략 4백전 남짓 들어 있는 돈주머니를 꺼내어 그에게 보여 주면서 이렇게 말했소.

“네가 염불 한 번 하면 1전을 주마. 그리고 네가 계속 염불하기만 한다면 이 돈주머니의 돈이 바닥날 때까지 1전씩 더 주마.”

그런데도 이 거지는 안타깝게 여전히 염불을 하지 않는 거요. 그래서 내가 끝내 울음이 터져 나오길래 그냥 1전짜리 하나 내던져 주고 떠났소. 이 거지 아이는 정말로 착한 뿌리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던 게오. 돈을 동냥하기 위해서조차도 염불을 하려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오. 그 거지가 정말 착한 마음으로 염불을 했다면 매우 큰 이익을 얻었을 것이며, 설사 돈 몇 푼 동냥 얻기 위해서라도 염불만 했다면 역시 커다란 착한 뿌리를 심었을 것이오.

나는 예전에는 대비주(大悲呪)를 지송(持誦)하지 않았소. 그러다가 민국(民國) 21년(1932년) 소주(蘇州)의 보국사(報國寺)에서 폐관(閉關: 結制·安居)할 때였소. 오항손(吳恒蓀) 거사는 그때 북경에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 병세가 갑자기 위독해지자 그의 아내가 급히 북경에 전보를 쳐서 그에게 돌아오라고 알린 뒤, 사람을 보국사에 보내어 나에게 대비주를 염송하여 관세음보살 자비 감로를 가피 받은 대비수(大悲水)를 마련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소.

이에 내가 대비주를 세 번 염송한 뒤 가지고 가게 했는데, 그 물을 마시고 금방 위급한 숨을 돌리고 안정되었다는 거요. 그래서 항손이 안절부절할까봐 다시 급히 전보를 쳐서 병세가 더 이상 위급하지 않게 되었으니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알렸다오.

그런데 또 그의 아홉 살 난 어린애가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온몸에 작은 종기가 돋기 시작했다오. 봄철만 되면 유난히 더욱 극성을 부리는데, 해가 갈수록 끊이지 않고 되풀이하며 아무리 약을 써도 별 효험이 없었다는 게오. 그래서 다시 대비수(大悲水)를 간청하길래 해주었더니 마시고 또 금방 나았다오.

이렇게 하여 금세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계속 대비수를 청해 와 매일 몇 번씩 대비주를 염송하게 되었소. 나중에는 요청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길래 큰 그릇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소. 그러다가 재작년에 영암사(靈岩寺)로 피난왔는데, 주지가 대비수를 계속 가피해주어야 하겠다고 말해요. 그래 내가 “지금은 병을 살 수도 없고 또한 병 살 돈도 없으니 쌀로 대신합시다”고 대답했다오.

향재(香灰)는 전에 보국사에서도 함께 썼소. 먼 길에 물은 부칠 수 없어도 향의 재는 전혀 구애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 물론 가까운 곳이라면 재를 쓰지 아니하오. 무석(無錫)에 아주 나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원세개(袁世凱) 총통 아래서 친위병을 하면서 성질이 아주 못되게 길든 모양이오. 술마시고 노름하며 온갖 나쁜 짓은 다 했는데, 담배인도 몹시 심하게 박혔다오. 나이 쉰일고여덟이 되어 금방 밥도 굶을 형편에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지 뭐요.

마침 그의 형이 죽자 진효로가 조문 간 길에 그가 몹시 고생하는 걸 보고 아주 적극적으로 그를 훈계하고 타일렀다오. 그래서 그가 그 날로 술담배와 고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같이 늘 염불하기 시작했는데, 눈도 금세 다시 좋아지고 완전히 착한 새사람으로 탈바꿈한 거요. 그 뒤 염불을 적극 제창하고 나섰는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를 무서워하여 감히 가까이 할 엄두도 안 냈다오.

그러던 중 학질(말라리아)이 크게 번졌는데, 이 사람이 이 학질 처방으로 동네 환자들을 하나하나 치료해 주어 모두 나았다오. 그때부터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르고 의지하게 되었소. 그래서 지난 4월에는 그가 여나믄 명을 직접 데리고 와서 귀의하기로 하였는데, 과연 어엿하고 노숙한 한 재가 수행인이 되어 있었소. 이 사람 성씨는 화(華)이고 이름은 관천(貫千)인데, 나이가 이미 예순너댓 살이나 되었다오. 이 사람 같으면 정말 용감하게 개과천선했다고 말할 수 있겠소.

이번에 향재(香灰) 한 포를 함께 부치니, 이웃 사람들한테 필요한 경우에 쓰기 바라오. 또 학생수양덕목 5권을 보내니 어린아이들에게 읽게 하시오. ‘상례 제례 때 알아야 할 사항’(喪祭須知)도 2권 보내오. 그대의 시부모와 고모, 하덕목의 어머니, 그리고 서씨 노부인들이 모두 연로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일이 닥치면 이 책으로 인연 따라 잘 일깨우고 이끌어 주라는 뜻이오. 절대로 세속의 풍습에 따라 부모나 친지에게 죄악과 허물만 덧보태 주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못하게 하시오.

요즘 세상은 옛날 예법이 모두 스러지고 없어서, 상중(喪中)에도 술과 고기를 먹고 심지어 노래 부르고 춤까지 추니 정말 체통이 말이 아니오. 듣건대 어떤 상인 한 사람은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대렴(大殮) 때 큰 효자 노릇 한답시고 찾아온 조문객과 함께 술 마시고 소란스럽게 주먹질하며 즐겼다는 구려. 그 마음이 이미 다 죽고 없는 게지요.

만에 하나 타고난 착한 성품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결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외다. 정말로 인간짐승이 다 된 거지요. 하지만 토끼가 죽으면 여우가 슬퍼한다(兎死狐悲)는 속담도 있지 않소? 그들은 오히려 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이오.

장조각(張朝覺) 여사에 대한 답신 2

조각(朝覺) 여사 보시오.

15일 편지를 받고 서씨 노부인의 병이 크게 호전된 것을 알았소. 무릇 죽음에 임박한 사람의 정신의식이 혼미한 경우, 대비주(大悲呪)를 염송하여 관음보살의 자비력을 가피 받은 물[大悲水]이나 향잿물[大悲香灰水]이나 쌀뜨물[大悲米水]을 마시게 하면 모두 밝게 정신을 되찾을 수 있다오. 또 주위에서 염불로 도와주면 본인 스스로 염불하면서 갈 수가 있소. 최근 일이 년 사이에 벌써 세 사람이나 그렇게 하였다오.

염불 공부로 금생에 이익을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지성으로 간절히 늘 염송해야 하오. 그러나 단지 내생의 착한 뿌리만 심기로 한다면, 비록 장난이나 억지로 한 번 염불한 것도 후세에 반드시 수행할 수 있도록 착한 인연의 싹을 틔우게 되지요.

사실 옛 사람들이 사찰이나 탑을 크게 세운 것도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이들을 한 번 쳐다본 인연공덕으로 착한 뿌리를 심게 되길 바랐던 마음에서라오. 이 한 구절의 염불 소리가 제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의 터전 가운데 심어져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살아 계실 때 어떤 노인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수행하려 했다오.

그런데 오백 명의 성중(聖衆: 아라한과를 증득한 부처님의 성문 제자들)이 혜안(慧眼)으로 그 노인을 살펴보니 8만겁(劫) 동안 어떠한 착한 뿌리도 심은 것이 없길래, 출가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 뒤 그를 받아주지 않고 돌려 보냈다오. 그래 그 노인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의 바깥에서 크게 소리내어 울었소.

이 소리를 들은 부처님께서 그를 불러들여 설법해 주시니, 그도 곧 아라한과를 증득했다오. 당연히 오백 성중은 어찌 된 까닭인지 어리둥절하며 부처님께 여쭈었소. 이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오.

“이 사람은 무량겁 이전에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급한 김에 나무 위로 기어 올랐는데, 그때 엉겁결에 ‘나무불(南無佛)’ 한 구절 염송한 공덕으로 지금 나를 만나 도(道)를 증득한 것이다. 너희들 성문 대중의 도안(道眼)으로 알아볼 수 있는 인연이 결코 아니란다.”

이걸 보면 스스로 염불하기만 하면 정말로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소. 그러나 본인이 염불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 사람에게 염불 소리를 듣게 해주기만 하면 역시 착한 뿌리를 심게 된다오. 오랫동안 계속해서 들으면 그 공덕은 정말 커지오.

무석(無錫) 지방에 요즘 염불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오. 어떤 사람이 채식 요리를 잘 하여, 7일간의 염불법회[佛七]를 열 때마다 으레히 그를 불러다가 요리를 시켰지요. 그래 그 사람이 매일같이 염불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는데, 나중에 그의 아들이 금방 죽게 되자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거요.

“아무래도 제가 죽을 것 같은데, 공덕이 없어 좋은 데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부처님을 저에게 좀 주시면 제가 곧 좋은 데로 갈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대답하였소.

“나는 염불도 하지 않는 사람인데 어디에 부처님이 있겠냐?”

아들이 다시 말했다오.

“아버지의 부처님은 많기도 매우 많습니다. 아버지께서 단지 그러마고 한 마디만 말씀하시면 저는 곧 좋은 데로 갈 수 있는 걸요.”

그러자 아버지가 응락했다오.

“그렇다면 네가 필요한 만큼 부처님을 가져 가거라.”

그리고 나서 그 아들이 죽었다오.

자신은 본디 염불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부처님이 있겠느냐고 말하지만, 아는 사람이 보면 다르오. 요리할 때 부엌이 염불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염불하는 소리를 늘상 듣기 때문에, 그 공덕만도 그만큼 매우 크다는 거요.

이는 무심코 듣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만약 유심히 듣는다면 그 공덕이 얼마나 더 크겠소? 독경 소리 같으면 구절이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히 알아 들을 수는 없지요. 설사 유심히 듣는다고 하더라도 뚜렷하기 어려울텐데, 하물며 무심코 귓가에 스치는 독경 소리를 얼마나 알아 듣겠소? 그래서 염불의 공덕이 특히 뛰어나다고 하는 거라오.

引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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