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好勞神커든 何用疎親가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건가.
쓸데없이 정신을 쓰지 말아라, 정신을 쓰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어찌 성김과 친함을 쓸까보냐’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김이란 멀리한다는 뜻이니 세간법과 악을 버림이고, 친함이란 가까이한다는 뜻으로서 세간법과 악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려 하지도 말며, 세간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양변 변견을 버리지도 취하지도 않을 때, 우리가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欲趣一乘이어든 勿惡六塵하라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일승(一乘)이란 무상대도를 말합니다.
무상대도를 성취하려거든 객관의 대상인 육진을 버리지 말며 미워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진을 이대로가 전체로 진여대용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육진이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육진이 아니라 진여대용(眞如大用)의 육용(六用) 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이 집착심을 가지면 육진이 되고 눈 밝은 사람이 바로 쓰면 육용(六用)으로서 진여의 대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진을 버리고서 어찌 무상대도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입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