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고 마음이 온다

우리가 천당 갔다 지옥 갔다 하고 육도 세계를 돌아다니고 윤회를 하고 그것이 다 번뇌의 업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번뇌의 잠재의식이 우리의 근본 마음 자리를 떠나서 마음으로부터 독립되어 돌아 다니는 것은 아니며 본 마음자리가 한 것입니다.

그러니 죽어서 천당에 가도 그 실상 자리 자기 근본 정신이 올라간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이 우주에 편만했다, 즉 크다고 하지만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작은 거냐 하면 바늘 가지고 찔러 볼 수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아무 것도 없는 거면서 그 속에 우주가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또 크기를 말하면 비행기를 타고 광속으로 몇 억만년을 달아났다 하더라도 그게 나고 바늘로도 찌를 수 없는 그 작은 극소 안에 무한대가 들어 있고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무한한 시간을 달렸다고 해도 내내 돌아앉을 자리도 없는 거기입니다. 마치 손바닥만한 거울에 동서 1백 리가 넘는 서울이 다 비춰 들어오듯이 그런 건데 사실은 그 거울 속으로 뚫고 나간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거기 동서남북이 있고 사람이 왔다갔다 하고 전차가 다니고 북악산도 있고 비행기도 떠 다니고 하는 것은 눈이 속은 셈입니다.

이런 것이 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길이 있지만은 과학으로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왔다 갔다는 말도 그 거는 꿈 속에 있는 소리입니다. 지상이나 천당이나 다 공간이고 천당 있는 데가 지옥 있는 데고 극락세계 있는 데가 사바세계 있는 데고 그러니까 육체적으로 확실히 거래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육체도 거래를 안합니다.

내내 그 자리니까 거래할 곳이 없습니다. 사실은 거리가 있다 해도 안 되고 없다 해도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왔다갔다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게 도대체가 이게 망상이고 마음으로 생각뿐이지 사실은 그런 건 없는 것이며 형상으롤 나타난 것도 그런 불가사의였고 이건 크고 저건 작다고 하지만 망상일 뿐입니다.

간장 독을 종지 안에 집어 넣는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미친 놈이라 할 겁니다. 몇 짐의 물이 들어 가는 독이 찻잔보다도 작은 종지 안에 어느 모퉁이 하나 남지도 않고 딱 맞게 들어가 버리는 도리가 마음 법입니다.

그러면 간장종지를 확대해서 넣어졌거나 큰 독이 축소돼서 줄어 들었거나 두 가지 중의 하나는 돼야 할겁니다. 그런데 둘 다 작고 크고 그대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게 불가사의입니다. 그런데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조금 있는 것은 이 크다는 것도 거짓말로 큰것이고 작다는 것도 거짓말로 작은 것이니, 작은 것이 큰 것으로 작은 것이고 큰 것이 작은 것으로 큰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하면 다 꿈이기 때문입니다. 꿈으로 크고 꿈으로 작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작은 것도 반드시 큰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크다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생각이지 참말로 큰게 아니고 작다고 행각하는 간장 종지도 생각이지 실제로 작은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는 부처님의 신통이 나올 수 없는 것이고 이 화엄의 도리가 아니면 참말로 성불할 사람도 없고 불법을 얻을 도리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물질 자체도 진공 묘유입니다.

있긴 있으되 진공으로 있는 거고 사실로 있는 게 아니라 없는 걸로 있기 때문에 이게 묘유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여기 아무것도 없는 데라 하여 아주 없는 거냐 하면 그건 없는 걸로 없는게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게 있고 이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있어도 거짓으로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없는 거냐 하면 또 이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게 참말로 없는 것이지 없는 걸로 없는 그것은 없는 걸로 있는 것이며 없는 것의 존재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있다고 하려면 부득이 (묘유)라고 하고 (진공묘유)의 존재라 그럽니다.

우리가 업이 달라서 안보이는 것 뿐이지 여기도 천당이 있고 지옥도 있고 다 건립되어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이대로 앉아 잠이 들면 제가끔의 꿈을 각각 꾸는 것과 같습니다.

독립 만세 부를 땐 전부 묶여 들어가서 조금 기대서든지 숙직실이고 유치장이고 빽빽하게 서 있습니다. 밤낮으로 그래 가지고 잠깐 자는 동안에 꿈도 꾸고 그러는데 한 사람은 서울을 차려 놓고 하나는 또 부산을 건립해 놓고 하나는 대구를, 또 다른 사람은 평양을 건립하고 모두 이렇게 제가끔 백 가지 천 가지 꿈을 꾸어도 조금도 혼란하지 않습니다.

제각기 공간을 분리해 가지고 그렇게 꿈을 꾸는데 그게 모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바늘로도 찌를 수 없는 그 작은 존재안에 천당·지옥·극락세계가 다 있습니다.

그것이 큰 걸로 작은 것이므로 그렇게 되는데 이 실상을 우리가 깨닫기 전엔 모릅니다. 우리는 실상 자리를 말로는 이렇게 하고 또 말 들을 때는 그런 것이구나 생각하지만 말 뚝 떨어지고 돌아서면 깜깜해져서 (이 것은 촛대고 저건 나무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하고 현상계에 끄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돌은 물이 아니라고 하고 불은 언제 물이 아니라고 하고 이렇게 자꾸 해오다가 처음엔 속아서 그랬지만 나중에는 진리라는 고집이 되고 법집으로 됩니다.

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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