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십니다!”
택시를 탈 때면 늘 기사분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다.
이럴 때 기사분들의 반응은 모두 다르다. 대부분 반갑게 인사를 받는 편이지만, 더러 모른 체하거나 무뚝뚝하게 대하는 기사분들이 있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수고하십시오!”
내가 인사를 해도 못 들은 척 외면하는 기사분들을 만나게 된다. 이럴 때 내 마음은 아프다. 솔직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왜 그럴까? 차에서 내려 걸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는 적도 있다. 좋은 말로 서로가 인사를 나눈다는 것이 분명 잘못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잘못한 일은 없는데….
그러나 나는 곧 마음을 바꾸기로 한다.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한다. 내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자 나보다는 상대방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우러난다.
택시를 타고 가다보면 기사분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분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자연히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어찌보면 택시 안은 인생의 작은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만나는 기사분들로부터 나는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그 좁은 공간에서 내가 만나는 세상은 참으로 다양하기만 하다.
개인택시 기사 김 씨가 얼마 전 겪은 일이다. 하루는 남자 손님이 인천 학익동에 가자며 차에 오르더란다. 서울 시청 앞에서였다.
목적지에 이르자 그 손님은,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잠간 예서 볼일이 있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데 미터 요금대로 다 드릴 테니 걱정마시고 있으시오.”했다. 그러더니 바로 앞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손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 커피숍에 들어가보니 이상하게도 좀 전의 그 남자 손님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알고보니 그곳에는 앞문 외에 뒷문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김 씨는 그 남자가 그 뒷문을 통해 몰래 달아나 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모은 채 두 시간이나 어처구니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남대문 근처에서 웬 남자가 인천에 가자면 차에 탔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님은 얼마 전 그의 택시에 타고 인천에 가서 그를 골탕 먹인 바로 그 남자가 아닌가!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김 씨는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 이번엔 결코 네게 속지 않을 것이로다. 그가 눈치 채지 못하게 김 씨는 모른 척하며 그가 가자는 대로 차를 몰았다.
아니나다를까? 인천에 다다르자 그 남자는 똑같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며 예전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김씨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재빠르게 뒷문으로 돌아가서 차를 대기했다.
조금 있자니 뒷문을 통해 의젓하게 그가 걸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이때다 싶었다.
“손님 요금 안 주고 어디로 가십니까?”
빙긋 웃으며 소리치는 택시 기사의 목소리에 당황한 그 남자.
너무 놀란 탓인지 할말도 잊은 채 멍하니 서서 그를 쳐다보기만 하더라고. “당시, 상습범인지? 얼마 전 내 차에 탔던 것 기억 안 나시오? 그때 못 받은 요금까지 셈해서 주든가 아니면 경찰서로 가든가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결국 김씨는 택시 요금을 고스란히 받아가지고 기분좋게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택시 운전은 하는 사람들치고 이런 경험을 한두 번씩 겪지 않은 이는 없다고 한다.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이젠 남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되고, 이런 일을 경험할 적마다 사람들에 대한 신뢰감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자탄하는 이도 있다.
얼마 전에 부산에서 만난 어느 택시 기사분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밤 늦은 시각, 40대로 보이는 한 남자 손님을 태우게 됐다. 술이 어지간히 과했던지 횡설수설 말을 하면서. “내가 말이야, 아주 비싼 술을 먹었다구! 여길 좀 보라구, 1백만 원어치나 되잖아? 난 00대학 교수란 말이야!”
여느 취객이거니 생각한 이 기사분, 그때까지 별다른 생각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집 부근까지 오자 그 손님이, “나, 실은 돈이 없는데…”라고 말하며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아니 하룻밤에 1백만 원어치나 술을 드시는 분이 4천7백 원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정말 없다구! 정 그렇다면 우리집에 같이 가서 마누라한테 달라고 하지!”
“그러지요.”
순순히 그를 따라 집에 가 초인종을 눌렀으나,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부인이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으나 화가 난지라 남편임을 알면서도 선뜻 열어 주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눌러도 마찬가지.
그러자 문 앞에서 지친 이 남자는 자신의 호출기 번호를 알려 주면서, “내가 이래 봬도 대학 교수인데, 그 얼마 안 되는 택시 요금을 떼어먹기야 하겠소? 내가 틀림없이 갚겠소.” 라며 장담을 했다.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근처 공중전화에서 확인해 보니 호출기 번호는 그 남자 것이 틀림없었다.
안심을 하고 그 다음날, 기사는 남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소식이 없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몇 날 며칠 간 전화를 해 보았으나 그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스님, 아무리 많이 배우고 교수가 되면 뭘 합니까? 똑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사람 무책임한 양심이 정말 괘씸하다구요!”
그 기사분은 무척 분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위 이 사회에서 배웠다는 지식인으로서 이같은 양심을 지니고 사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물론 극소수이기는 하나, 그릇된 양심과 무책임한 의식을 가진 이같은 이들이 있기에 지식인 대다수가 욕을 먹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보면 대학 교수인 그로서는 아주 사소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하는 쪽에서 생각해 보면 이는 자신의 마음을 다치게 되는 일이며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 불신의 벽을 더 높이 쌓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얘기들을 듣다보면 자 자신이 공연히 부끄러워지면서, 나는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가, 나 자신을 한번 더 뒤돌아보게 된다.
기사분들 중에는 간혹 손님들에게 불친절하고 무뚝뚝하게 대하는 이가 있는데 다 이러한 불신과 나쁜 감정이 그 발단일 수도 있다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려본다.
택시 기사들이 말하는, 가장 기피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첫째, 안하무인형으로 나이가 적든 많든 야, 00로 가자.
라는 식으로 함부로 반말을 해대거나 더 심한 경우 운전자 뒤통수를 툭툭 치는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둘째, 후안무치한 얌체형으로 차선을 변경할 수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차를 되돌려나올 수 없는 골목으로 데려간 다음 나 몰라라 가버리는 사람. 이것은 자기가 좀 편하자고 다른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이기적인 유형이다.
셋째, 안면몰수형으로 술에 취한 것까지는 좋으나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될 몸 안의 것(?)을 아낌없이 쏟아 버리는 사람, 또는 집 안에서 처리해야 할 쓰레기를 굳이 가져와서 비닐을 담아 택시 안에 몰래 버리고 내리는 사람들로, 전자는 주로 남자들이며 후자는 대개 염치없는 아주머니들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죄질이 무겁고 정말 상대하기 싫은 손님은 택시요금을 내지 않으려고 속임수를 쓰거나 몰래 도망치는 비열하고 치사한 사람들로서, 이것은 순악질형에 속한다.
택시 안에 비치된 신문을 보고 난 뒤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사람, 내 집 쓰레기통인양 차 안에 함부로 휴지를 버리는 안면몰수형도 있다. 이들은 휴지가 아니라 소중한 양심을 함부로 던져 버리는 사람들과 다름없는 것이다.
어느 아주머니는 집에서 쓰는 쓰레기용 봉투를 아껴 쓰려는 마음에서였는지 비닐에 담은 쓰레기를 몰래 택시 안에 놓고 내리려다가, 그만 택시 기사에게 들켜 버렸다.
“아주머니, 잊으신 물건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게 뭡니까?”
기사가 백미러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그 아주머니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당황하고 무안해진 이 아주머니,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종종걸음으로 내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이쯤은 애교에 속한다고나 해야 할까? 더 난처한 경우는 2차선 도로에서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요구하는 후안무치한 얌체형이다.
박00씨는 간혹 이런 손님을 만날 때가 가장 곤욕스럽다고 한다.
“기사 아저씨, 내가 가는 고시 바로 저기인데, 지금 마침 교통순경도 없고 하니 차를 돌려 주시요.”
좌회전 신호 표시가 없는 도로에서 어떻게 무단으로 유턴을 한다는 말인가! 이는 교통법규상 위반인 것이다.
기사는 당연히,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나 손님은 이 정도 편의도 못 봐주느냐.
라고 하며 끈질기게 사정한다.
교통법규를 무시한다는 것이 양심상 마음에 걸리지만 문 질끈 감고 차를 돌리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교통 순경이 눈앞에 떠억 버티고 서 있는 경우도 있다.
결국 박 기사는 그날 도로법 위반으로 딱지를 떼이고 하루 종일 번 돈을 내도 모자라는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이 모두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조금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택시 기사 경력 10년째인 최 씨 또한 일전에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거리를 지나는데, 길가에 웬 남자가 쓰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행색으로 보아 분명 걸인은 아닌데, 몸이 아픈지 고통을 호소하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다. 대낮이었으므로 거리에 행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누구 하나 그를 돌보지 않고 무뚝뚝하게 쳐다보면서 그 곁을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여느 때에도 남의 어려운 처지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협심 강한 최 씨였다. 그는 길가에 잠시 택시를 정차시킨 뒤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이렇게 말하며 가까이서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그 남자의 피투성이가 된 얼굴과 몸 구석구석 성한 곳 없이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이 눈에 띄었다. 더구나 그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할 정도로 만취된 상태였다. 입에서 고약한 술내가 뿜어져 나왔다.
최 씨는 그를 부축하여 택시에 태운 뒤 근처 파출소로 데려갔다. 신원을 확인한 다음 가족으로 하여금 데려가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두 사람은 파출소로 들어갔고, 본인의 나이와 생년월일,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묻는 경관의 의례적인 질문이 시작됐다.
“당신, 몸이 왜 이렇소? 누구와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신원조회를 하는 경관이 다그쳐 묻자 그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저 사람이 나를 때렸습니다. 저 사람이!”하며 택시 기사 최 씨를 손가락으로 똑바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최 씨는 갑자기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멍한 충격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경관도 의아한 듯 최 씨를 돌아보았다.
“난 아니오! 나는 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소. 저 사람을 도와준 죄밖에 나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완강히 부인했지만 이미 그에게는 0000라는 협의가 씌워졌다.
결국 최씨는 며칠 간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경찰서에 불려 다니며 조회를 받는 정신적인 고통을 겪었다.
물론 나중에야 무혐의가 인정되기는 했지만 그 사건 이후 그가 받은 충격의 파장은 컸다.
“이제 저는 그 누구라도 도와주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세상에 그처럼 악질적인 나쁜 인간에게 두 번 다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지요.”
남을 도우려는 어는 순수한 마음에 돌아본 보답은 배신이었다.
개도 닷새가 되면 주인을 안다.
라고 했거늘 짐승조차도 이러한데 하물며 사람이 이처럼 은혜를 원수로 갚을 줄이야…. 좋은 일을 하고자 했던 최 씨에게 돌아온 것은 며칠 동안 경찰서를 출입해야 하는 번거로움뿐이었다.
택시 기사분들의 이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문득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세상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이해하게 되나니…. 이처럼 불신이라는 무서운 병이 우리 주변에서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안타깝다.
진정 양심이란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내게는 과보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악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고여 항아리를 채우듯 작은 악이 쌓여 큰 죄악이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쯤이야….
하고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비양심의 습관은 자신의 천성을 길들이게 된다. 또 그것은 결국 자신을 삼켜 버리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는 법이다.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 나무가 가지를 뻗어 웃자라듯 그렇게 자꾸만 커지고 자라서 소중한 인생을 망치게 되는 것이 악의 습관인 것이다.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바로 양심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인생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의 양심을 소중히 잘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