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죽림정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한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자신의 형제가 부처님께 출가한 것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 부처님은 그의 심한 욕설과 비난을 그저 묵묵히 듣고만 계셨다.
그의 분노가 차츰 수그러들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대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그대는 음식을 대접하는가?”
“그렇소.”
“만약 손님이 먹지 않으면 누가 먹는가?”
“그건 당연히 내가 먹을 수밖에 없지.”
그러자 부처님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가 오늘 내 앞에서 했던 나쁜 말도 내가 받지 않는다면 다시 그대의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자 바라문은 마음속에 깊이 깨닫는 바가 있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도 성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더욱이 상대방이 내게 나쁜 욕설이나 비난을 할 경우 성을 내지 않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을 낸다고 같이 성을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을 내는 당사자에게 지는 일이요. 이는 결국 자신에게도 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냄을 참는다는 것이야말로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참지 못할 것을 참는 것이 만복의 근원이다.
라고 <육바라밀경>에서 말씀하셨다.
조금 참으면 될 일도 조급해서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다툼의 근원은 사소한 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료나 혹은 부부가 설로 불화하고 다투는 일도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다.
또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서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자초하는 일도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강화읍에서 회사택시를 운전하는 장정호 씨(가명).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지런하고 착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하게 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택시 운전을 한 지 4,5년만에 어렵사리 작은 연립주택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천 주안에서 힘든 기색도 없이 날마다 강화로 출퇴근을 한다. 그날도 장씨는 이른 새벽 집을 나와 자신의 근무지인 강화읍 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지나던 차가 차선을 바꾸던 중 갑자기 장씨의 차를 들이받는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순간적으로 장시의 차를 의식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핸들을 꺾은 상대방의 잘못이었다.
잘못을 시인하고 서로 대충 화해하는 선에서 일을 끝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두 남자 사이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말다툼이 시작됐다.
“여보, 영업용 택시를 이렇게 망가트려 놓았으니 이를 어쩔 거요?”
“난 아직 영업 전이오. 그러니 빨리 손해 배상이나 해주시오.”
“난 지금 당장 돈이 없소. 정 그렇다면 날 따라오시오. 내 근무지가 외포리니 거기서 돈을 주든 배상을 하든 해주겠소.”
외포리라면 강화읍내에서 수키로를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장씨는 두말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를 몰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이나 들어가서 외포리에 이르렀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남자가 인상을 쓰며 사라졌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그는 함흥 차사였다. 한참 일을 해야 할 시간인데….,
사소한 접촉사고 때문에 벌써 한 시간이나 빼앗겼기에 오늘 회사에 입금해야 할 금액을 제대로 채울 수 있을지 장씨는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한참이 지나자 그가 나왔다.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그는 1백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10만원 줄 테니, 나머지는 지금 당장 거슬러 주시오.”
장씨는 아직 수중에 돈이 만 원권 서너 장, 그리고 천 원짜리가 대부분이었다. 아직 이른 아치이라, 손님이 없었으므로 그토록 큰 액수가 있을 턱이 없었다.
“당신, 일부러 수작 부리는 거지? 나한테 거스름돈이 어디 있어?”
어이가 없어서 장씨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쏘아 보았다.
“야, 이 xx야! 돈을 줬으면 됐지 왜 다지고 그리! 거스름돈이 없으면 네가 돈을 못 받는 거지! 안 그래?”
“누구보고 말을 함부로 하는 거야? 이 xx가!”
반말과 욕설이 나오면서부터 두 사람의 언쟁은 격해져갔다. 그러던 중 그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 들어갔다.
다시 나온 그의 오른손에 시퍼렇게 날이 선 사시미칼이 들려 있었다. 눈에 살기가 어렸다.
“너, 내 칼솜씨 맛좀 볼래?”
격분해서 휘두른 그의 능숙한 회칼에 맞아 장씨가 쓰러진 것은 눈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횟집 주방장인 남자의 칼에 맞아 검붉은 피를 토하며 장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결국 사소한 말다툼이 택시 기사 장씨의 어이없는 죽음을 초래한 것이다. 참을 인(忍)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
라는 옛말을 실감하게 하는 안타까운 비극이다.
만약 어느 한 사람이라도 조금만 참았더라면 이같은 엄청난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속담에 1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가 성냄을 참지 못하고 사소한 시비 끝에 빚어진 무서운 결과인 것이다.
“상응부경전”에 보면 성내는 자에게 되받아 성내는 것은 옳지 않다. 성내는 자에게 같이 성내지 않으면 두 가지 승인를 얻는다. 스스로를 이기고 성내는 자를 이기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 나온다.
남이 내게 성을 내는데 이를 참고 있다는 것은 수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잘 참는 것만이 화를 면하고 복을 구하는 참다운 지혜의 길이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순간 순간을 참는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인 것 같다.그러나 참는 것이야말로 나를 살리는 길이요. 자신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길이다. 또 이는 상대방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옛날, 한 유명한 점술가가 자신을 찾아온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30년 후엔 영의정의 벼슬에 오른 운일세.”
친구는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분이 좋았다. 그러자 그 점술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너무 좋아하지 말게나. 다시 들어다본 자네는 살인을 할 수도 있는 운명이구만.”
그러자 친구는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내게 살인을 면할 수 있는 비방을 알려 주게나. 제발!”
점술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하네만…, 자네가 이를 반드시 지켜야만 하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겠네. 그러니 부디 알려만 주게나!”
“자넨 성미가 급한 게 큰 흠이야. 그러니 참을 인(忍)자를 써서 눈에 뛰는 곳마다 붙여 두게나. 이불 호청이건 밥상이건 자네 눈에 보이는 어느 곳이든 이를 서서 붙어 놓게나. 이를 막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네.”
친구는 점술가의 말대로 눈에 띄는 곳마다 참을 인자를 써서 붙여 놓고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한 번씩 외고 마음에 새기기로 굳게 다짐을 했다.
어느덧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친구는 점술가의 말대로 영의정이 되었다. 집안에선 영의정이 됐다고 다들 좋아라 했지만 이 친구는 점점 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살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던 점술가의 예언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의정이 대궐에서 돌아와 안방문을 열어보니 부인이 웬 남자와 한 이불 속에 다정히 누워 있는 것이었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자기가 없는 틈을 타서 부인이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모양을 눈앞에서 목격하자 갑자기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내 이 연놈들은 그냥…!”
영의정은 너무 기가 막히고 치가 떨려 칼을 빼들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눈앞에 번쩍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이불 호청 위에 써서 붙여둔 참을 인자였다.
영의정은 칼을 거두고 부인과 그 외간남자가 덮고 있는 이불을 슬적 들쳐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외간남자인 줄 알았던 이는 바로 자신의 처제였던 것이다. 그제야 그 영의정은 참을 인자가 뜻하는 바를 깨닫게 되었다. 참을 인자가, 하마터면 살인할 뻔한 그를 구해 준 것이었다.
영의정이 그 위기의 순간을 모면했던 것은 참을 인자 때문이었다. 만약 이를 지나쳤더라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참아야 할 순간이 많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참아야 할 일이 많고 아주 가까운 부부나 인간관계에서도 참고 지내야 할 순간이 많다.
그러나 순간 순간을 잘 참고 지내다보면 새로운 지혜가 생기고 길이 열리게 된다. 참다보면 화가 오히려 복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부디 바라건대 참고 또 참자. 성내지 말자. 아무리 강조해도 어느덧 지나가게 된다. 참아내는 길만이 오직 올바르게 자신을 지키는 기임을 명심하자.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