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여스님─간절한 일념으로 염불하면 오던 화살도 비켜간다

간절한 일념으로 염불하면 오던 화살도 비켜간다

-무여스님-

(准提功德聚) 준제주의 크신 공덕, 적정심상송(寂靜心常誦) 일념으로 늘 외우면, 일체제대난(一切諸大難) 어떠한 어려움도, 무능침시인(無能侵是人) 그를 침노하지 못하리니, 즉 염불하는 사람을 침노하지 못한다 했습니다.

이 준제주는 관세음보살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즉, 관세음보살님을 말합니다.

이 관세음보살님의 공덕은 가히 말로써 글로써 표현 할 수 없는 대단한 공덕이 있는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님에게 지극하게 의지해서 참으로 대단한 신심을 발하면 안 될 일이 없다 그런 말씀이 [관음경]에 있습니다.

그 능력이나 안목이나, 그 자비한 마음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입니다.

그분의 공덕은 아주 대단해서 어떤 분보다도 참으로 대단한 공덕을 가졌습니다.

염불은 일념으로 외워야, 즉 고요하게 번뇌 망상이 일체 없이 일념으로 외워야 됩니다.

일념이 더 깊어져서 염불 삼매가 될 정도로 오직 염불에 빠져야 돼요.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린 것 같은데, 하다가 보면 아주 깊게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법당인지 집인지 어디인지도 모를 정도로 깊게 빠질 그럴 정도로 지극하게 하고 아주 간절하게 해야 됩니다.

일체 번뇌 망상이 안 떠오를 정도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참으로 대단한 염불 공덕이 있습니다.

또, 이 일념으로 늘 외운다는 것은 끊이지 않고 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염불이나 화두는 끊임이 없어야 됩니다.

끊임이 없이 하는 데 아주 묘(妙)가 있습니다.

하다가 말다가, 하다가 말다가 하면 그 염불의 공덕이 없습니다.

그래서 염불하는 데는 ‘닭이 알을 품듯이 하라’ 했습니다.

닭이 알을 품을 때는 웬만해서는 둥지를 떠나질 않습니다.

왜 둥지를 떠나지 않느냐.

둥지를 떠나게 되면 계란이 식어 버려요.

식으면 병아리가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닭이 알을 품을 때는 오뉴월 그 한더위에도 – 닭이 아주 더위를 많이 탄답니다.

한여름에도 닭을 보면 입을 떡 벌리고 막 헐떡거리듯이 다녀요.

둥지 위에 앉아 있으면 더 더위를 느낀다는 겁니다.

– 막 숨을 몰아쉬듯이 헐떡거리면서도 둥지를 떠나지 않아요.

그건 왜 그러느냐? 계란을 식지 않게 할려고요.

그렇게 계란을 늘 따뜻하게 품고 있어야만 스물 하루가 되면 병아리가 되어서 나옵니다.

그렇듯이 화두 하는 분은 항시 화두 기운이, 염불하는 분은 항시 염불 기운이 없어지지 않아야 됩니다.

염불은 늘 해야 되고, 가급적이면 그치질 않아야 됩니다.

설사 잘 안되더라도 항시 연습을 하듯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애쓰고 애쓰다가 보면 참으로 될 날이 있어요.

보통은 잘 안 되니까 놓았다가 하다가 말다가 그러는 분이 있는데 그러면 더 안 돼요.

안 되더라도, 염불하는 재미가 없더라도 애쓰다가 보면 참으로 잘 될 날이 있습니다.

참으로 잘 되는 날은 대단한 기분을 느낄 것입니다.

염불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즉 부처님이 가깝다는 겁니다.

이 범부 중생, 여러분 자상하게 자신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참 못나고 부끄럽고 어리석은 점이 많을 겁니다.

아무리 잘났다는 사람도, 아무리 똑똑하다는 사람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 합니다.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고, 부족하고 못나지 않은 분이 없어요.

그래서 흔히 미완성의 작품이다 그런 말을 합니다.

그렇게 못나고 어리석은 것이 범부고 중생입니다.

그래서 잘 못할 수도 있고, 해도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요새 IMF(아이엠에프) 한파다 해서 어렵다 어렵다고 하는데,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역시 그만큼 ‘본인이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그런 분이라도 꾸준하게 염불을 지극하게 많이 하십시오.

하면 하는 것 만큼 반드시 공덕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지 몰라도 다만 한 번이라도 한 것은 반드시 헛되지가 않아요.

그 훗날 참으로 대단한 것으로 승화될 날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안 되더라도 안 된다는 생각도 마시고, 무얼 소원 했는데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당장 이루어 질 수도 있지만 먼 훗날 몇 십 년 아니면 다음 생애도 이루어 질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하면 한 것 만큼 반드시 이익이 있고, 애쓰면 애쓰는 것 만큼 조금도 헛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염불을 하되 일념으로 하시라는 겁니다.

일념으로 일체 잡된 생각이 없이 염불에 폭 빠질 정도로, 오직 요것 뿐이다는 그런 생각으로써 살림하고 이런 저런 집안일을 보고 애들을 키우고 하다가 보면 일념으로 하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냥 보통 할 때는 평범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참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할 때는, 그때는 바짝 하는 겁니다.

그때는 정말 폭 빠질 정도로 일념으로 하시는 겁니다.

그래 해도, 설사 짧은 시간이래도 제대로만 하면 몇 시간, 몇 일간 하는 이상의 공덕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어쨌든 일념으로 하셔야 됩니다.

일념으로 하시되 좀 더 깊게 들어가서 일념 삼매에 들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삼매에 들어가면 묘한 염불하는 기분을 느껴요.

오묘한 법열을 느껴요.

즉 염불하는 데서 묘한 기쁨을 느껴요.

그 기쁨을 흔히 안락이라 하는데, 아주 편하고 아주 즐거운 기쁨입니다.

그것은 꼭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느껴봐야만 염불을 하는 참으로 진정한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느껴보지 못하면 ‘나는 진정한 불자가 아니다, 나는 진정한 신도가 못 된다’ 그렇게 생각하셔도 괜찮아요.

거기까지만 느껴보시면 절에 오지 말라, 오지 말라 해도 안 올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절이래요.

그럴 정도로 진리에서 느끼는 기쁨, 그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대단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꼭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럴 정도가 되면 일체제대난 무능침시인(一切諸大難 無能侵是人) – 그 어떠한 어려움도 그를 침노하지 못하리니.

그러한 염불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어떠한 괴로움이나 어떠한 근심 걱정도 그를 침노하지 못해요.

즉 염불이 다 막아 준다는 겁니다.

그럴 정도로 염불은 아주 대단한 그런 공덕이 있는 것이 바로 염불입니다.

그래서 관음경에 보면 어떠한 풍수해에도 막아준다 했어요.

바람으로 인한 것이나, 물로 인한 것이나, 불로 인한 것이나 어떠한 어려움이나 어떠한 괴로움도 다 막아준다고 했어요.

요즘은 사회가 발전해서 갖가지 사고가 많이 납니다만, 옛날에 관음경을 쓸 때만 해도 큰 화난이라고 하면 풍수 화난이 거의 가장 큰 화난이었어요.

즉 물로 인해서 큰 장마가 진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강둑이 무너진다든가, 아니면 큰 바다가 해일을 한다든가 그런 데서 오는 어떤 괴로움, 그렇지 않으면 불이 난다든가, 아니면 바람으로 인한 어떠한 난(難)도 다 물리칠 수 있다는 거래요.

요새는 그런 난 말고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신종의 난들이 많습니다마는 그러한 난도 다 물리 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염불의 공덕입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지금은 어디로 가셨는지 확실치 않은데 신행 스님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70년대 한 중반쯤 스님이 되신 분인데, 전라남도 장성에 가면 백양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서옹 큰스님이 계셨는데 그 스님의 상좌입니다.

이분이 66년도에 서울에서 동국대학교에 다녔는데 학생회에서 해인사로 관광을 간 적 있다는 겁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고속버스가 다니지 않을 때라 국도로 서울에서 9시간이 걸려 간다고 했을 정도로 장시간 걸리는 그런 여행이었답니다.

그분 성격이 상당히 활달하고 어디 가서 노는 걸 보면 아주 재미있게 잘 노는 분이래요.

노는 데는 꼭 중심 역할을 하는 그런 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친구들끼리 해인사로 가니까 그 뭐, 술도 먹었을 테고, 차 안에서 노래도 부르고 아주 신나게 놀았는가 봐요.

그런데도 그분은 전혀 놀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놀든 말든, 그 분이 16살 때부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했는데, 열심히 그 다라니를 외웠다는 겁니다.

다라니가 그렇게 잘 되더라는 거래요.

김천을 조금 지나서 계속 앉아오니까 다리가 뻐근하고 안좋더랍니다.

그 때만 해도 버스에 안내양이 있을 땐데, 그 안내양한테 ‘내가 좀 설테니까 이 자리에 좀 앉으라’하고 안내양을 바로 자기 자리에 앉히고는 안내양 서는 그 출입구에 서서 갔답니다.

가다가 불과 한 20분쯤 지났는데 차가 그냥 구르더라는 겁니다.

한 50미터 가량 되는 언덕에 차가 굴러버렸다는 것이지요.

몇 바퀴 굴러 가지고 그냥 떨어졌는데 완전히 차가 납창갱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때 45명이 타고 갔는데 44명이 죽었다는 거예요.

저도 훗날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당시 신문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 버스 사고로는 가장 큰 교통 사고였답니다.

1명 남고 다 죽어버렸는 거래요.

그 한 명이 누구냐, 바로 신행이라는 그 스님입니다.

그 스님은 상처도 거의 안 났더라는 겁니다.

머리에 상처가 조금 나고 팔다리가 좀 뻑적지근한 그런 정도지 거의 상처가 안 난거라.

그래 그때 인터뷰를 했는데 그 어떤 기자가 매일신문인가 어디에 “이건 기적이다.

이렇게 거의 상처가 안 날 정도로 한 사람이 살았다.

이건 기적이 아니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내용의 인터뷰 기사가 있습디다.

어쨌든 그렇게 살아났던 것입니다.

신행이라는 그 스님은 훗날 월남전에 참전을 했는데, 월남에 가서도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다는 겁니다.

한번은 전 중대원이 세 명을 남기고 다 몰살을 했는거라, 청룡부대로 갔는데요.

그런데 그 세 명 중에 그 신행스님이 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훗날 하는 얘기가 자기는 불사신이라는 겁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게 여러 번 사선을 넘어도 안 죽고 이렇게 멀쩡하니 이것은 자기 명(命)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거야 말로 참으로 염불 공덕이다.

주력 공덕이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주력을 해서 좋은 공덕을 얻었는데 그냥 있을 수 있느냐.

스님이 되자” 해서 출가한 그런 스님이 있었습니다.

강원에 조금 다니다가 일본 유학 갔는데 그 뒤 소식은 못 들었습니다.

어쨌든 그분은 어떤 어려움이나, 어떤 괴로움이나 근심 걱정도 신묘장구대다라니만 잘 하면 안 될 일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야말로 참으로 많이 겪은 사람이니까.

다라니뿐만 아니라 염불이든 참선이든 참으로 지극하면 대단한 그런 공덕이 있습니다.

참으로 지극하면 그 이상의 공덕이 있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염불입니다.

그래서 불가사의하다 그런 말을 합니다.

염불의 공덕은 참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공덕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일으킨다는 말을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되려면 일념으로 지극하게 해야 됩니다.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 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그를 침노하지 못하리니, 즉 염불하는 사람을 침노하지 못해요.

염불하는 사람을 해치질 못해요.

그래서 화살도 오다가 비껴간다 했어요.

그런 공덕이 바로 염불 공덕입니다.

서암스님─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서암스님-

나무(南無)란 내 잃어버린 마음을 찾자는 소리입니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내 근본 마음입니다.

불생불멸 無量壽의 무량한 광명 無量光입니다.

내 이몸 덩어리는 백년 안쪽에 부서져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생명은 무한히 빛나고.

끝이 없는 불생불멸입니다.

그것이 아미타불입니다.

우리가 망상 없이 일념으로 내 마음 자리를 찾는 그 염불이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몇 천만년 전의 굴이나.

금방 만든 굴이나 불을 켜면 곧 바로 밝아집니다.

몇 천만 년 전의 굴이라고 해서 몇달 동안 불을 밝혀야 밝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모질고 독한 사람도 임종시에는 모든 생각이 순수하게 됩니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도 임종시에 “나무아미타불”한번만 지극정성 불러도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간다고 합니다.

순수한 세계는 순수한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석우스님─흰 옷도 입고 검은 옷도 입으라

흰 옷도 입고 검은 옷도 입으라

석우스님

얼마 전에 열반에 드신 서암 스님은 열반에 들기 전 제자가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합니다.

보통 열반송이라고 하면 4언 절구로 이루어져서 마지막 가는 그 사람의 정신과 혼이 담긴 글이 나오기 마련인데 서암 스님은 그러한 형식을 무시한 채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열반에 들려고 하였고, 제자가 부득이 한 말씀 권하자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 해라 하고 가볍게 한마디 툭 던지셨던 것입니다.

서암 스님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고 굳이 명예를 구하지 않았으며 평상시 고요한 성품 그대로 어떤 형식도 세우지 않았던 선사의 면모가 이 말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위적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산에 가면 수많은 나무가 도열하여 서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는 저마다 개성을 지키면서 주변의 나무를 따라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이리 저리 굽으면서 위로 올라가고 있고, 어떤 나무는 가지를 여럿 벌려서 위로 올라가고 있고, 어떤 나무는 재목으로 써도 좋을 정도로 곧게 뻗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산은 이렇게 수 만가지 나무가 제형식대로 타고난 성품대로 어우러져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무가 자연스러운 것만큼 보기 편안한 것은 없습니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나무는 곧게 위로 뻗어가야 좋다고 하면서 모든 나무를 한결같이 곧게 자라게만 하였다면 이것만큼 삭막하고 보기 불편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무를 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하듯이 매사를 생각 속의 것으로 재고 만들고 판단하는 것을 인위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불완전합니다.

인위적인 것은 삭막하기만 할 뿐 편안한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아름답고 사람도 자연스러운 사람이 훨씬 넉넉하고 편안합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만약 자식이 공부는 안하고 게임에 빠져서 놀기에만 열중하여 아무리 야단치고 혼을 내어도 소용없다면 이것을 자연스럽다고 해야할지, 남편이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서 밤 12시 넘어야 집에 돌아온다면 이것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놔두어야할지 막막해집니다.

그런데 자연스럽다는 것과 습관적인 것은 다르다는 것을 구분해야합니다.

물론 사람이 유달리 게임을 좋아하는 기질이 다소 있는 사람이 있겠으나 이것은 그 사람의 기질이라기보다는 습관이 더 깊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밤 12시에 집에 돌아오는 사람도 그 사람의 기질이라기보다는 퇴근 후에 술 한잔씩 하던 것이 습관 되어 나중에는 늦게 귀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은 자연스럽다고 놔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것이므로 분명히 고쳐져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성이 탁하고 맑지 못하여 약간 바보스럽다든지, 날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공부에 취미가 있다든지, 무엇인가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든지, 남을 즐겁게 하는 코미디언의 기질이 있다든지 하는 것은 타고난 것이므로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그 기질을 이해하고 다듬어서 인생을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활동하도록 다듬고 보강하면 될 것입니다.

도는 자연스러움 속에 있습니다.

도인은 우주에 속에 있는 진실을 깨달아 사람에게 있는 거칠고 투박하고 이기적인 것들과 스스로 인위적인 것에 속박되었던 고정관념들을 타파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따라서 좀 휘었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데 도가 있고 곧게 가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함에 도가 있습니다.

진정 도를 아는 자라면 흰 옷도 입고 검은 옷도 입으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반야선회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