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우스님─흰 옷도 입고 검은 옷도 입으라

흰 옷도 입고 검은 옷도 입으라

석우스님

얼마 전에 열반에 드신 서암 스님은 열반에 들기 전 제자가 열반송을 묻자 “나는 그런 거 없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합니다.

보통 열반송이라고 하면 4언 절구로 이루어져서 마지막 가는 그 사람의 정신과 혼이 담긴 글이 나오기 마련인데 서암 스님은 그러한 형식을 무시한 채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열반에 들려고 하였고, 제자가 부득이 한 말씀 권하자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 해라 하고 가볍게 한마디 툭 던지셨던 것입니다.

서암 스님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로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고 굳이 명예를 구하지 않았으며 평상시 고요한 성품 그대로 어떤 형식도 세우지 않았던 선사의 면모가 이 말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위적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산에 가면 수많은 나무가 도열하여 서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는 저마다 개성을 지키면서 주변의 나무를 따라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이리 저리 굽으면서 위로 올라가고 있고, 어떤 나무는 가지를 여럿 벌려서 위로 올라가고 있고, 어떤 나무는 재목으로 써도 좋을 정도로 곧게 뻗어 올라가고 있습니다.

산은 이렇게 수 만가지 나무가 제형식대로 타고난 성품대로 어우러져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무가 자연스러운 것만큼 보기 편안한 것은 없습니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나무는 곧게 위로 뻗어가야 좋다고 하면서 모든 나무를 한결같이 곧게 자라게만 하였다면 이것만큼 삭막하고 보기 불편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무를 한 모양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하듯이 매사를 생각 속의 것으로 재고 만들고 판단하는 것을 인위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불완전합니다.

인위적인 것은 삭막하기만 할 뿐 편안한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아름답고 사람도 자연스러운 사람이 훨씬 넉넉하고 편안합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만약 자식이 공부는 안하고 게임에 빠져서 놀기에만 열중하여 아무리 야단치고 혼을 내어도 소용없다면 이것을 자연스럽다고 해야할지, 남편이 허구한 날 술독에 빠져서 밤 12시 넘어야 집에 돌아온다면 이것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놔두어야할지 막막해집니다.

그런데 자연스럽다는 것과 습관적인 것은 다르다는 것을 구분해야합니다.

물론 사람이 유달리 게임을 좋아하는 기질이 다소 있는 사람이 있겠으나 이것은 그 사람의 기질이라기보다는 습관이 더 깊게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밤 12시에 집에 돌아오는 사람도 그 사람의 기질이라기보다는 퇴근 후에 술 한잔씩 하던 것이 습관 되어 나중에는 늦게 귀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은 자연스럽다고 놔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것이므로 분명히 고쳐져야 할 것들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천성이 탁하고 맑지 못하여 약간 바보스럽다든지, 날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공부에 취미가 있다든지, 무엇인가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든지, 남을 즐겁게 하는 코미디언의 기질이 있다든지 하는 것은 타고난 것이므로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그 기질을 이해하고 다듬어서 인생을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활동하도록 다듬고 보강하면 될 것입니다.

도는 자연스러움 속에 있습니다.

도인은 우주에 속에 있는 진실을 깨달아 사람에게 있는 거칠고 투박하고 이기적인 것들과 스스로 인위적인 것에 속박되었던 고정관념들을 타파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따라서 좀 휘었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고 성실하게 사는데 도가 있고 곧게 가지만 자기만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함에 도가 있습니다.

진정 도를 아는 자라면 흰 옷도 입고 검은 옷도 입으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자입니다.

(반야선회보에서)

석우스님─신묘장구대다라니

신묘장구대다라니

-석우스님-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는 천수경의 본문입니다.

본래 관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신묘한 경을 설할 것을

허락 받았던 내용이 바로 이 신묘장구대다라니였습니다.

우선 글자를 풀어보면 신(神)기하고 묘(妙)한 대다라니라는 뜻인데,

다라니는 총지(總持: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말)

또는 경(經)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참으로 신묘한 힘이 있는 위대한 경전입니다.

우선 간략하게나마 관세음보살이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만난 인연과

다라니의 위신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천수경은 광본 천수경과 약본 천수경이 있습니다.

광본 천수경은 경의 구색을 다 갖추고 대체적으로 자세히 설한 것이고,

약본 천수경은 일상생활 속에 간단히 독송하며

신행생활을 하도록 짧게 편집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강의하고 있는 것은 약본 천수경으로서,

불자들이 평상시에 자주 독송하고 있는 의식용 천수경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광본 천수경을 참조해 보면 관세음보살이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만난 인연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만 읽더라도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저 과거 무량억겁 전에

천광왕 정주여래불 시대에 태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천광왕 정주여래는 관세음을 불쌍히 여기고,

또한 일체 모든 중생을 위하여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관세음의 이마를 만지면서

“선남자여, 네가 마땅히 이 대비심주를 가지고 악세에 번뇌가 중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큰 이익을 베풀도록 하여라.”

하고 수기(授記, 이마를 만지며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번 듣고는

깨달음을 얻어서 초지 보살에서 8지 보살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관세음보살은 크게 환희심이 나서 곧 큰 서원을 발하기를

“만약 제가 오는 세상에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 이익되게 할 수 있다면,

저로 하여금 즉시에 이 몸에서 천수천안(千手千眼)이 구족하여지이다.”

하고 발원하니 놀랍게도 천수천안을 모두 구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관세음보살은 무량한 부처님 회상에서

거듭거듭 이 다라니를 수지하더니,

기어이 미세한 생사까지 다 끊고 해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항상 지송하고 있으며,

한번도 버리거나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덕으로 관세음보살은 태어날 때마다

사람의 태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앞 연꽃 위에 화생(化生)한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이 대비신주를 설하기 전에 석가모니부처님 앞에서 말하길,

“누구든지 원을 발한 다음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 이름을 부르고

관세음보살의 본사(本師)인 아미타불을 생각한 후에,

하룻밤에 21편이나 49편을 외우게 되면

백천만억겁 동안에 지은 중죄가 모두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항상 이 대비신주를 지송하다가 임종하게 되면,

모든 부처님이 오시어 원을 따라 불국토 등에 태어나게 한다.

이 대비신주를 지송(持誦)하는 자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되고,

무량삼매와 변재(辨才: 이치를 분명하게 판단하여 분별하는 재주)를

얻으며, 모든 구하는 바를 얻게 되고,

여자가 남자로 나기를 원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일체 중죄와 삼보를 훼손한 죄도 소멸된다.

그러나 이 다라니를 의심하는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며,

설사 의심으로 아무 성취도 없더라도

한번 읽은 공덕은 남아있으므로

언젠가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마지막으로

“일체 중생이 부지런히 항상 지송하여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고

말을 맺으면서 대중 앞에서 합장하고 바로 서서,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일으키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를 설하였던 것입니다.

대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는 신비의 노래

그런데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저 앞에서

진언(眞言)의 의미를 설명할 때 말한 것처럼

그 내용을 해독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이 다라니가 인도말 중의 일부와 흡사하여 번역한다 해도

올바로 해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로는 이 다라니는 어떤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고,

대자연 속에 있는 진리의 세계와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열반의 세계를 노래한 곡조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노래라고 하면 가사에 곡을 넣어 부르는 것인데

이 다라니에서는 진리의 세계를 여러 가지 발음의 진동곡으로

표현하고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하고

음을 내는 것 자체가 진리의 곡조입니다.

즉 ‘나’라는 발음과 ‘모’라는 발음과 ‘라’라는 발음 등이

모여 화음을 이루었을 때,

그 자체가 진리의 세계가 되도록 안배한 신기한 다라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천수경에서나

이외의 경전에서도 한역으로 번역하지 않고

그 원본의 발음대로 음사만 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뜻을 풀이할 수 없는

글자 그대로 신묘장구(神妙章句)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진리의 세계를 완전히 깨달아 혜안이 열리고

모든 말과 손짓 발짓이 다 진리를 표현하는 것임을 안다면,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도 대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다라니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신비의 노래가 아니라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신비의 노래입니다.

다만 영혼에서 진리의 문이 열려야 한다는 조건만이 있을 뿐입니다.

만약 마음이 열리어 이 다라니를 보게 된다면

이 다라니 자체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의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 신묘장구 대다라니는 모두 13구의 구절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이 다라니의 본질〔相貌〕을 설명함에,

“대비심(大悲心)이고, 평등심(平等心)이고, 무위심(無爲心)이고,

공관심(空觀心)이고, 공경심(恭敬心)이고, 비하심(卑下心)이고,

무염착심(無染着心)이고, 무잡란심(無雜亂心)이고,

무뇌해심(無惱害心)이고, 무견취심(無見取心)이고,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불보살의 본심과 인간의 본성과

대우주의 진성(眞性)을 노래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노래하자,

대지는 6종으로 진동하였고 하늘에서는 보배로운 꽃비가 휘날렸습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다 기뻐하셨고,

천마(天魔)와 외도는 놀라고 두려워 떨었으며,

회 중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도과(道果: 불도의 과, 깨닫는 것)를 증득하였습니다.

무량한 귀신과 여러 종류의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菩提心,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을 발하였다고 합니다.

석우스님─생활십행(生活十行)

생활십행(生活十行) –

석우스님

1.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을 자각하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자기의 마음이 물들지 않도록 잘 지키면 된다.

우선 자기가 곧 부처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라.

자기가 부처라는 것을 알게되면 어떤 것에도 유혹되지 않으며 당당하게 대치할 수있다.

그리고 매사에 자신감이 있고 포용력이 생긴다.

2.바르게 행동하라 자신이 부처임을 알았으면 이번에는 부처의 행을 하라 항상 천천히 생각할 것이며,매사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바르게 행동하라.

항상 당당할 것이며, 기타 판단이 잘 안서는 것이 있으면 이럴때 부처님은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여 모든 행동을 부처님에게 맞추어 부처님과 똑같이 행동하라.

3.좋은 행동을 습관들여라 몸은 마음이 습관들인 대로 행동한다.

따라서 나쁜 것은 습관들이면 그대로 하고, 좋은 것을 습관들이면 그대로 한다.

항상 친절하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습관들이고,부드럽고 편안한 목소리, 고요한 목소리,고요한 행동으로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평생 좋은 것을 습관들이도록 하라.

4.불편한 것을 편한 것이 되도록 훈련하라 인생은 산을 올라가는 산길에 비유하기도 한다.

꼬불꼬불한 인생이 만만하지 않으니 언제 어느때 어떤일이 다가와 나를 불편하게 할는지 모른다.

인도에 차가 가로막혀 불편한 길을 만나거든 짜증내고 다른 길로 피해가지 말고 고요히 무심한 마음으로 당당히 그 앞까지 걸어가서 옆으로 돌아가는 등의 훈련을 평상시 해두어라.

마음을 비우면 불편함과 불편하지 않음이 따로 없다.

5.항상 겸손하라 대저 잘 익은 수수는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허리를 최대한 구부리고 서로에게 절하기바쁘다.

공부의 맨 마지막 단계는 자연에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다.

자기가 없는 줄 아는 사람이 무엇을 달리 내세울 것이 있겠는가, 항상 겸손한 자세로 자기를 낮추어 선배, 후배, 높은사람 낮은사람, 남편, 아내, 자식, 원수 등을 가리지 말고 부처님을 대하듯 항상 예배하고 존중하라.

6.마음을 비워라 대저 하늘을 보아라.하늘은 빈 까닭으로 새도 날라가고 꽃도 피고 곡식이 자라나지 않은가.

하늘이 비어 있다고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빈 하늘이 만물을 창조하듯 사람의 마음도 비어있을 때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옳다,그르다 등의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모든 것은 마음 부처님께 맡기고 오직 비워진 그 자체로 평안히 살아가라.

7.남을 용서해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원수를 용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해야 전쟁이 없어지고 진정 평화가 온다.

불행했던 역사를 보라.

결국 사람을 마음을 잘못 써서 서로 엉켜진 것이 아니던가.

남의 흠은 곧 자기의 흠이다.

가장 하기 힘든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용서함’으로써 행복을 창조하라.

8.베풀어라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리 쌓아놓은 복이 있어야 부귀를 얻는 것이다.

그대 부처님이 지금은 멀쩡한 행색을 하고 얻어먹는 거지를 보고 무시할지 모르겠지만 그대 부처님도 베풀지 않으면 마찬가지가 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다.

가난한 자도 피해자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으면 항상 돕고 베풀어라.

늘 절약하며 살아가라.

절에 시주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라.

9.봉사하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꼭 해야 하는 일중에 한가지가 바로 봉사하는 일이다.

봉사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다.

쓸데없는 계모임이나 친선 모임을 핑계로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며 봉사를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봉사에 임하라.

봉사하고 남은 시간에 그런 모임을 가져라.

봉사하면 그대 부처님의 몸이 건강해지며 정신 건강에도 훨씬 좋으니 그대가 더 큰 이익을 본다.

10.매일 자기 전에 참회하고 기도하라 불자가 되어 매일 일과 수행으로 하여야 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고 참선하는 것이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하루 중에 시간을 정하여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경을 읽거나 참선 하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내어라.

혹 시간이 없는 사람은 자기 전에 잠깐만이라도 참회 기도하고 정진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