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우스님─신묘장구대다라니

신묘장구대다라니

-석우스님-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는 천수경의 본문입니다.

본래 관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신묘한 경을 설할 것을

허락 받았던 내용이 바로 이 신묘장구대다라니였습니다.

우선 글자를 풀어보면 신(神)기하고 묘(妙)한 대다라니라는 뜻인데,

다라니는 총지(總持: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말)

또는 경(經)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참으로 신묘한 힘이 있는 위대한 경전입니다.

우선 간략하게나마 관세음보살이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만난 인연과

다라니의 위신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천수경은 광본 천수경과 약본 천수경이 있습니다.

광본 천수경은 경의 구색을 다 갖추고 대체적으로 자세히 설한 것이고,

약본 천수경은 일상생활 속에 간단히 독송하며

신행생활을 하도록 짧게 편집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강의하고 있는 것은 약본 천수경으로서,

불자들이 평상시에 자주 독송하고 있는 의식용 천수경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광본 천수경을 참조해 보면 관세음보살이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만난 인연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만 읽더라도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저 과거 무량억겁 전에

천광왕 정주여래불 시대에 태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천광왕 정주여래는 관세음을 불쌍히 여기고,

또한 일체 모든 중생을 위하여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관세음의 이마를 만지면서

“선남자여, 네가 마땅히 이 대비심주를 가지고 악세에 번뇌가 중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큰 이익을 베풀도록 하여라.”

하고 수기(授記, 이마를 만지며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것)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한번 듣고는

깨달음을 얻어서 초지 보살에서 8지 보살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관세음보살은 크게 환희심이 나서 곧 큰 서원을 발하기를

“만약 제가 오는 세상에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 이익되게 할 수 있다면,

저로 하여금 즉시에 이 몸에서 천수천안(千手千眼)이 구족하여지이다.”

하고 발원하니 놀랍게도 천수천안을 모두 구족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관세음보살은 무량한 부처님 회상에서

거듭거듭 이 다라니를 수지하더니,

기어이 미세한 생사까지 다 끊고 해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항상 지송하고 있으며,

한번도 버리거나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공덕으로 관세음보살은 태어날 때마다

사람의 태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앞 연꽃 위에 화생(化生)한다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이 대비신주를 설하기 전에 석가모니부처님 앞에서 말하길,

“누구든지 원을 발한 다음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 이름을 부르고

관세음보살의 본사(本師)인 아미타불을 생각한 후에,

하룻밤에 21편이나 49편을 외우게 되면

백천만억겁 동안에 지은 중죄가 모두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항상 이 대비신주를 지송하다가 임종하게 되면,

모든 부처님이 오시어 원을 따라 불국토 등에 태어나게 한다.

이 대비신주를 지송(持誦)하는 자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되고,

무량삼매와 변재(辨才: 이치를 분명하게 판단하여 분별하는 재주)를

얻으며, 모든 구하는 바를 얻게 되고,

여자가 남자로 나기를 원한다면 남자로 태어나고,

일체 중죄와 삼보를 훼손한 죄도 소멸된다.

그러나 이 다라니를 의심하는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게 되며,

설사 의심으로 아무 성취도 없더라도

한번 읽은 공덕은 남아있으므로

언젠가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관세음보살은 마지막으로

“일체 중생이 부지런히 항상 지송하여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고

말을 맺으면서 대중 앞에서 합장하고 바로 서서,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일으키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를 설하였던 것입니다.

대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는 신비의 노래

그런데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저 앞에서

진언(眞言)의 의미를 설명할 때 말한 것처럼

그 내용을 해독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이 다라니가 인도말 중의 일부와 흡사하여 번역한다 해도

올바로 해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로는 이 다라니는 어떤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고,

대자연 속에 있는 진리의 세계와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열반의 세계를 노래한 곡조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노래라고 하면 가사에 곡을 넣어 부르는 것인데

이 다라니에서는 진리의 세계를 여러 가지 발음의 진동곡으로

표현하고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하고

음을 내는 것 자체가 진리의 곡조입니다.

즉 ‘나’라는 발음과 ‘모’라는 발음과 ‘라’라는 발음 등이

모여 화음을 이루었을 때,

그 자체가 진리의 세계가 되도록 안배한 신기한 다라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천수경에서나

이외의 경전에서도 한역으로 번역하지 않고

그 원본의 발음대로 음사만 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뜻을 풀이할 수 없는

글자 그대로 신묘장구(神妙章句)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진리의 세계를 완전히 깨달아 혜안이 열리고

모든 말과 손짓 발짓이 다 진리를 표현하는 것임을 안다면,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도 대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다라니는 영원히 알 수 없는 신비의 노래가 아니라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신비의 노래입니다.

다만 영혼에서 진리의 문이 열려야 한다는 조건만이 있을 뿐입니다.

만약 마음이 열리어 이 다라니를 보게 된다면

이 다라니 자체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의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 신묘장구 대다라니는 모두 13구의 구절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이 다라니의 본질〔相貌〕을 설명함에,

“대비심(大悲心)이고, 평등심(平等心)이고, 무위심(無爲心)이고,

공관심(空觀心)이고, 공경심(恭敬心)이고, 비하심(卑下心)이고,

무염착심(無染着心)이고, 무잡란심(無雜亂心)이고,

무뇌해심(無惱害心)이고, 무견취심(無見取心)이고,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불보살의 본심과 인간의 본성과

대우주의 진성(眞性)을 노래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노래하자,

대지는 6종으로 진동하였고 하늘에서는 보배로운 꽃비가 휘날렸습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다 기뻐하셨고,

천마(天魔)와 외도는 놀라고 두려워 떨었으며,

회 중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도과(道果: 불도의 과, 깨닫는 것)를 증득하였습니다.

무량한 귀신과 여러 종류의 중생들이 모두 보리심(菩提心,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을 발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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