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5월 15일 불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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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 2016-05-15, 11:58:16 오후

무진장스님─오늘을 사는 지혜

오늘을 사는 지혜

무진장스님

제일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은 어떻게 해서 출가를 했는가.

출가 동기를 먼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적어도 6∼7세에서부터 거의 12년에 걸쳐서 베다사상에 대해서 공부합니다.

그 사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하나는 업사상이요, 나머지 하나는 윤회사상입니다.

업사상과 윤회사상을 들면 불자들은 상당히 익숙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교의 중심사상이 아니라 베다사상 가운데 있는 것이지만, 교육의 타당성에서 불교가 상당수를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에 중류 이상의 사회의 아들들은 이와 같은 교육을 다 받게 되는데, 일반인으로서 국왕 대신에 아들들은 업사상이나 윤회사상 이외의 어떠한 사상도 생각해 낼 수가 없던 때입니다.

우리는 성도자로서의 부처님을 두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6∼7세에서 12년동안 그 사상을 공부한 부처님과 29세에 출가해서 35세에 성도한 부처님을 말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그 사상을 공부함으로써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부처님은 대단히 활발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했습니다.

업사상이나 윤회사상 이외의 어떠한 사상이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하고 생각했습니다.

카스트 제도라는 사회의 모습을 볼 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 것인데 왜 이러한 계급이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번민이 있었고, 나를 낳아준 우리 어머니는 어째서 일주일만에 서거하셨는가 하는 이러한 번민도 거듭한 것입니다.

계급문제의 타파와 개개인의 생로병사에 시달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인간에게 고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도 존재하는데 그러한 행복들은 왜 순간적인 것일까.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부처님은 출가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출가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중류 이상 사회의 아들들은 출가해서 수도하는 것이 거의 풍습처럼 되어 있어서 부처님께서도 그러한 풍습에 의해서 출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29세에 출가한 부처님은 청년기를 그렇게 지냈습니다.

부처님 시대에만 그러한 청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대에 그러한 청년이 존재하는데, 오늘의 시대에 사는 청년의 고민은 무엇인가.

과연 부처님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오늘의 청년들의 고민은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고민, 그 욕망 하나만 해결되면 안되는 일이 없고 모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오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의 고민입니다.

부처님의 시대에 살았던 청년들의 고민과 오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고민은 그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설문조사에 의하면 노인을 공경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오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답변 80퍼센트가 공경할 필요가 없다.

왜 노인들은 권위주의를 가지고 있느냐, 버스 안에서 어째서 자리를 양보해야 하느냐 그럽니다.

인과응보를 모르는 오늘의 바로 우리들의 모습, 그러한 문제점도 바로 경제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60년대 초 군사혁명 이후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 맛을 알게 된 것은 불과 30∼40년밖에 안됩니다.

경제적인 욕망 하나 때문에 부모를 해치고 형제를 괴롭히고 남편을 죽여서 보험금을 타 먹고, 그런 시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사회가 돈 때문에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범죄집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백의민족이니 슬기로운 배달민족이니 위대한 단군의 자손이니 하는 구호가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을 할 때, 이 시대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시대가 될까 하는 그러한 고민은 누구나 했을 것입니다.

유사이래로 오늘처럼 정치가 부패하고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종교사회마저 병리현상을 낳으며 부도덕하게 망가져 버린 적은 없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지붕 아래에 일곱 식구 여덟 식구를 위해서 죽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어떠합니까? 일곱 식구 여덟 식구가 다 죽어도 나는 못 죽는다는 세상입니다.

예전에는 부지런히 돈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일찍 돌아가시고 나면 하늘이 노랗죠.

그래서 부지런히 벌었던 돈도 형제에 나누어줘 버리고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다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지금은 눈물 한 방울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죠.

녹음기 하나 갖다 놓고 우리 몰래 땅 사 놓은 것 있으면 빨리 말하고 죽어라.

지금 우리는 그런 처지에 살고 있습니다.

전국의 교육계에도 세월이 흐르면 월급타면 그만이고 잘되고 못되는 것은 네 운명이지 성의있게 교육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될대로 되라.

기술교육을 하지 인성교육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국민이 과연 살 수 있는 길이 될까.

불교사상을 통해서 볼 때, 컵 속에 물이 담겨져 있는데 그 물이 물일 때는 어느 그릇에 부어도 꼭 맞습니다.

이 물이 얼어 버릴 때는 맞는 그릇이 없습니다.

지금 완전히 얼어 버린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녹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냐?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들이 잘 사는 길이 무엇이냐.

석정을 즐겨라.

고요를 즐겨라.

와글와글 들끓고 있는 인식이 비정상적인 지금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적정과 고요를 즐길 수만 있다면 잘 살 수 있다고 봅니다.

들끓고 있는 한 자기의 진면목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제일 먼저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안목으로 조국을 보고 국제를 보아야 합니다.

棄濁染하고 發妙明하라.

능엄경에 나오는 아주 짧은 말씀입니다.

우리 한 생각 가운데 탁한 생각을 버리고, 묘명을 발하라.

원각경에 나오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斷無明하여 顯佛性하라.

어리석은 무명을 끊고 불성을 드러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인이 말하고 있는 이 마음의 본성, 청정한 본성이라는 것은 닦아서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청정한 것입니다.

본래 청정한 본성, 닦을 필요조차 없는 본성을 아는 깨달음의 종교가 불교요, 알아야 하는 것이 불교인 것입니다.

부처님만 믿어서는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믿고 있는 내가 身·口·意 三業이 청정해야 된다는 지도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정마니보주, 우리 본성 본래의 성품이 다이아몬드와 같아서 무색투명한 것입니다.

오색찬란한 것이 아닙니다.

오색찬란한 것은 바깥 경계를 받아 들여서 빛나는 것이지 그 자체는 색상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육조스님은 전렴청정을 후렴청정이 부촉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원래 아무것도 없는 것, 전혀 없는 것을 일러 우리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한 마음의 세계가 전렴인 것입니다.

여기에 생각을 일으키면 후렴이 일어날 때에는 매우 정당한 것입니다.

전렴청정을 후렴청정에 부촉할 때만 인식이 정당해지는 것처럼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정을 즐겨야 합니다.

인생의 문제는 물질로 푸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의 안식을 주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겠습니다.

법륜스님─ ‘출가’란 스스로 주인되는 삶

‘출가’란 스스로 주인되는 삶 법륜 스님 출가’란 지금까지의 삶이나 의지해 왔던 것들, 추구해 왔던 가치관에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세속적으로 말하면 사주 팔자적인 삶, 지은 업에 따른 인연 과보의 삶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변화의 주체로서 자기가 주인이 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내 운명의 주인이 어떤 신이나, 내가 알지 못하는 과거의 업이나 태어난 생년월일이 아니라, 바로 내가 행과 불행을 좌우하는 삶의 주체로 서는 것이다.

왜 그것을 출가라 하는가? 출가(出家)란 집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집’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집을 짓는 것은 자기를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평평한 바닥을 만들고 바람을 막기 위해 벽을 쌓고, 햇빛과 비를 막기 위해 처마와 지붕을 만들어서 그 속에서 안온함을 추구한다.

이것이 집이다.

그러나 또한 집은 우리를 속박하기도 한다.

벽과 천장이, 바닥이 나를 가둔다.

또 집이란 ‘우리가 사는 공간’이란 의미를 넘어서서 ‘고정 관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지는 모든 판단이나 느낌의 근거가 되는 고정 관념이라 볼 수 있다.

자기가 태어나고 살았던 고향 같이 익숙한 생각이다.

고향은 안온함이 있지만, 그 곳에만 있으면 넓은 세계를 보지 못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사물을 관찰하는 모순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집을 짓고 있을까? 우리는 부모를 의지하고 산다.

우리는 부모가 안 계시면 쓸쓸해 하고 허전해 한다.

부모는 방바닥과 같은 존재로 내가 의지하고 사는 기초이다.

결혼해서는 아내나 남편을 기둥으로 삼거나 자식을 서까래로 삼고, 돈으로 벽을 만들고, 사회적 지위로 천장을 만들고, 명예로 갖가지 장식을 하고, 이런 것에 의지해서 안온함을 추구한다.

그런데 인생을 살펴보면 부모로 인하여 갖은 속박을 받고, 아내나 남편으로부터 여러 가지 속박을 받는다.

그리고 자식과 돈 때문에 속박받고, 사회적 지위나 인기로 인해서도 속박을 받는다.

이처럼 행복과 자유와 안온함을 가져온다는 생각에서 우리는 그런 것들로 집을 짓지만, 사실 이 집은 갖가지 괴로움과 속박의 원인이 된다.

비유하면 편안하게 살기 위해 열심히 집을 짓지만, 집 짓는 중에 처마가 뚫어져서 빗물이 들어오고, 그것을 고쳐 놓으니 이번에는 벽이 갈라져서 빗물이 새고, 그걸 고치고 나니 방바닥이 갈라져서 가스가 새어 들어오고, 그걸 고치고 나니 다시 기와가 깨어져서 방안으로 빗물이 떨어지는 격으로 편안하게 살기 위해 집을 지었지만, 죽을 때까지 집 고치다가 세월 다 보내고 한 번도 제대로 안온하게 자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모순이 있다.

출가란 그 집이 속박과 고통의 원인임을 알고 불사르고 그 집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집이 속박과 괴로움의 원인이 될 때, 그 집을 불사르거나 그 집에서 나오려 하지는 않고 이 집이 문제니까 다른 집으로 가자 해서 그 집을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은 ‘가출’이지 ‘출가’가 아니다.

가출은 그 집이 고통의 원인임을 여실히 깨달아 놓아 버리는 게 아니라, 그 현상에 집착해서 다른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 집에서 나오면 잠시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조금 있으면 또 같은 고통을 받는다.

이혼하고 혼자 살다가 외로워서 다시 결혼하고, 자식 없던 사람이 자식을 낳고, 취직 안 되던 사람이 취직이 되면 기쁘다.

그런데 시일이 경과하면서 그것이 다시 고통의 원인이 되어서 직장 가진 것을 후회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사업 벌인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고 분소의를 입고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주무셨다.

깨닫기 전에도 그랬고 깨달은 후에도 그렇게 사셨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깨닫기 전에는 좋은 옷이나 좋은 음식이나 좋은 집을 철저하게 거부하셨지만, 깨달은 후에는 거부는 하지 않으시고, 초대를 하면 응하셨다.

인연 따라 그 경우가 있으면 응하시긴 했지만, 그것에 메이지는 않으셨다.

그걸 보고 뎃바다타가 부처님을 비난했다.

“부처님, 출가 수행자는 다섯 가지 규칙을 꼭 지켜야 합니다.

첫째는 반드시 분소의를 입어야 합니다.

둘째는 반드시 걸식을 해야 하며, 셋째는 음식은 반드시 하루 한 끼만 먹어야 하고, 넷째는 절대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나무 밑이나 동굴에서 잠을 자야지 처마 밑에서 자면 안 됩니다.

”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무 밑이나 숲에서 자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가 올 때는 처마 밑에서 잘 수도 있다.

걸식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신심 있는 재가 신도의 공양을 받을 수도 있다.

하루 한 끼만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환자나 어린아이는 두 끼를 먹을 수도 있다.

고기를 먹지 않고 수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보시받은 음식에 섞여 있을 때는 먹을 수도 있다.

분소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분소의가 없을 때는 새 옷을 입을 수도 있다.

” 그런데 부처님이 새 옷 입어도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는 헌옷이 있는데도 새 옷 입고, 비가 오지 않는데도 꼭 집안에 들어가 자려 하고, 몸이 아프지 않는데도 끼니대로 다 먹으려 하는데,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한 거다.

또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뎃바다타처럼 고행을 하고 사는 것만이 불교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좋은 옷이나 떨어진 옷을 입든 안 입든, 음식을 어떤 것을 먹든 거기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고통의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에서 생기니까 그것을 놓으라는 것이다.

어떤 거사님이 내게 상담하러 찾아 와서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왜 하는 일마다 다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그래서 그 이유를 들어보니, 대학 입시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고시 시험에도 떨어지고, 또 직장을 구했는데 세 번이나 쫓겨났고, 사업을 했는데 네 번이나 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여자를 만났는데 세 번 다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가만 보니까 얼굴이며 모습이 아주 멀쩡하게 보여.

그래서 “초등 학교도 못 나온 사람도 있는데, 당신은 대학 시험을 두 번이나 친 걸 보니까 고등 학교도 나왔다는 소리 아니오? 또 대학 시험을 두 번이나 칠 정도로 집안에 경제력이 있었다는 이야기고, 고시 공부를 했다는 것은 누가 그 뒷받침을 했다는 거고, 또 고시를 칠 정도라면 머리도 괜찮았다는 이야기 아니오? 회사에서 세 번이나 쫓겨났다는 이야기는 세 번 취직을 했다는 이야기여서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세 번씩이나 취직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 않느냐? 또 여자를 세 번이나 만났다는 건 여자를 끄는 힘도 있다는 것 아니오.

능력이 있으니까 세 사람이나 만났지, 없으면 어떻게 만났겠어요?” 이 거사님의 경우 마음이 괴로운 것은 욕심 때문이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죄가 많은 것도 아니고, 사람도 괜찮은데 현재의 자기 능력보다 자기의 상을 너무 높게 설정하고 있어서 스스로를 비하하고 좌절시키는 것이다.

거사님이 뭔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능력 이상의 것을 추구하니까 늘 일이 안 되는 거다.

그러니까 이 이치를 깨달아 자기 능력이 오십일 때 오십인 줄을 자각하게 되면, 절망과 좌절, 자학이 사라지고 행복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출가해야 한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불태워 버려야 한다.

지금 마음으로 스님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스님인데 머리 기르고 다녀도 되니 얼마나 편한가.

내가 앉아서 다른 여자나 남자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절에 출가한다고 들어와서는 생각의 기준을 늘 결혼해서 사는 친구한테 두고, 자기 개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 취미 생활을 해야 된다고 한다면 문제다.

일본 승려들이 결혼한다고 욕하지만, 그분들을 그렇게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집에서 가정 생활을 하더라도 아침에 자가용을 타고 절에 출근해서 승복으로 갈아입으면 절도 있는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저녁에 퇴근하면 사복 입고 나와서는 보통 사람처럼 산다.

그런데 우리는 태도가 분명하지 않다.

태도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시비 분별심이 많다.

그리고 출가를 하면 부처님께서 분소의를 입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주무시고 걸식하며 사셨던 그 정신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복도에서 자더라도 숲에서 자는 것보다는 안온하고, 걸식하여 주는 밥 먹는 것보다는 절에서 먹는 밥이 훨씬 고급이고, 옷도 훨씬 잘 입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어제까지 살아왔던 안온함의 기준을 붙들고서 세수할 데도 없고,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자며, 이렇게 적게 먹고 힘이 없어서 어떻게 절을 하느냐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일 주일을 아무것도 안 먹어도 사실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이렇게 시비 분별을 하게 되면 자기가 선택해서 출가하고는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건 출가했다고 말할 수 없다.

출가란 생각이 바뀌는 거다.

머리 모양과 옷 모양만 바뀌는 게 출가가 아니다.

머리칼을 자른다는 건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하고,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기득권을 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남자다 왕이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버림을 뜻한다.

거지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 살아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출가해야 한다.

우리가 늘 참회 기도를 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삶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아서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부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부처님의 삶을 늘 살펴보면서 비록 시대와 지역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 기본 정신을 간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입고 어떤 것을 먹든 간에 우리는 어쨌든 그분보다는 좋은 상황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혼자라서 외롭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세속에서 보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세속 일에 관여한다.

그러니 우리가 수행자라면 부처님께 엎드려 절할 뿐이지 시비를 논할 것이 없다.

그리고 방석 하나를 깔거나, 발우 공양을 하거나, 휴지 한 장을 쓸 때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개선할 일이 있으면 불평과 불만을 할 게 아니라, 의견을 나누고 건의하고 조절하고 살아야 한다.

출가하여 산다는 것은 보살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저 과거 연등 부처님이 계셨을 때, 선혜 동자로 출가한 이래 우리는 그분을 보살이라 불렀다.

그래서 도솔천의 호명 보살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스물 아홉에 출가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분을 보살로 부르진 않는다.

원력을 가지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 코끼리 모습을 하고 이 세상에 왔지만, 태어나는 순간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본분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살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두 살 때 농경제에 참석하여 농부의 고통을 보고 벌레의 죽음을 보면서, 동서남북 사대문을 나가서 늙고 병들고 죽어 가는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속에서 수많은 갈등을 하다가 욕구의 충족을 따라 사는 이 길이 해탈의 길이 아님을 확연히 알자 출가를 하셔서 자신의 본분을 되찾으셨다.

그래서 깨달은 중생인 보살이 되셨다.

새로 태어나고 거듭나셨다, 부활했다고도 볼 수 있다.

비록 몸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삶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발심하고 살아왔던 삶의 연속선상으로 회복되었다.

꿈속을 헤매다가 잠이 깨어 제 자리에 돌아왔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꿈꾸는 상태에 있으니까 자기가 이 세상에 올 때 그냥 떨어졌는지 어떤 원력을 갖고 이 곳에 나투었는지 바로는 모른다.

부처님 법을 만나 공부를 하여 그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되면 자기의 참 모습, 자기의 원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편안해지는 거다.

노력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원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온 그 본래 모습으로 회복했기 때문에, ‘아이구, 내가 삼사십 년 동안 엉뚱한 짓을 하고 살았구나!’를 자각하기 때문에 그 전의 수많은 생으로 연결된다.

자기의 삶이 시간적으로 길어지고 자신의 존재를 여실히 꿰뚫어 봤을 때 우리는 이 육신만을 나로 삼는 게 아니라, 수많은 내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공간적으로도 넓어진다.

이제까지는 어리석어서 오직 이 몸만을 나로 삼아서 남편과(혹은 아내와) 이웃과 다투다가 깨닫게 되면 민족이나 인류, 지구의 생존 문제도 자기 문제가 되어 염려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자기의 문제가 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는데, 그럴 때 모든 두려움도 함께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