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스님─내가 나를 사랑하면 세상도 나를 사랑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세상도 나를 사랑합니다

-혜민스님-

▲ 치유명상 (자 눈을 감고 오른 손으로 심장을 어루만지듯이 마사지를 하면서) 몸아! 참 고맙다.

내 것이라 당연히 여기면서 막 쓰고 다녔는데 네가 있어서 이생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구나.

몸아! 힘들었지.

정말 고마웠다.

몸아! 고맙다.

따스한 손길로 나의 몸을 아껴주십시오.

마음아! 참 고맙다.

네가 아프다고 했지만 바쁘다고 핑계되고 그랬는데 네가 있어서 이생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구나.

마음아! 힘들었지.

마음아! 고맙다.

몸과 마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 주십시오.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사람들에게 치여 상처받았던 나를 사랑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면서 아팠던 나를 사랑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좀 부족할 수 있어도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하루하루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나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남들이 모르는 나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나의 깊은 아픔이 치유되기를.

내가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나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그를 용서할 수 있기를.

그를 미워하면서 나를 또 용서할 수 있기를.

내가 진정 행복해 지기를.

나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나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내가 정말로 행복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좀 더 사랑해 주세요.

(옆사람과 손을 잡고) 옆에 계신 분이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한 사람이라 생각해 보세요 내 남편이나 부인이 될 수도, 친한 친구가 될 수도, 내 생에 소중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건강해 지기를.

당신의 상처가 다 치유되기를.

당신이 편안해 지기를.

당신이 행복해 지기를.

나의 행복은 당신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옆에 계신 분이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주신 분이라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준 것은,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몹쓸 짓을 한 것은 어쩌면 당신이 불행해서 그랬군요.

당신이 행복해 지기를.

그래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 지기를.

지금 저에 손을 잡고 있는 님께서 행복해지시기를.

지금 제 손을 잡고 있는 님께서 행복해 지시기를.

님께서 건강해 지시길.

님께서 편안해지시길.

님의 상처가 다 치유되시길.

살면서 나만 억울한 일이 있었는 줄 알았는데.

당신도 역시 그랬군요.

내 마음 안에 있는 관세음보살님 같은 자비로 양손으로 님을 축복해 주세요.

한탑스님─죽음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죽음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한탑스님-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상대(相對)세계로 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남과 대립하여 반목하고 지냈던 것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내 밖에 남이 있다고 한다면 절대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끊을絶(절)입니다.

너와 나라는 대립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입니다.

내 밖에 남이 없기에 ‘일인칭의 세계’입니다.

극락이든 천당이든 아무리 기가 막히게 좋은 세계라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우리밖에 있다고 한다면, 그 또한 하나의 상대세계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절대라는 것을, 어떤 특정한 존재를 절대자라로 인정하고 그가 세상을 심판하고 인간들을 섭리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이러한 절대자가 있어서 우리 인간을 심사하고 심판해서 천당도 보내고 혹은 지옥도 보낸다고 한다면, 이 존재는 우리 인간과 대립해 있는 것이므로 진정한 의미의 절대자가 아닙니다.

극락이든 천국이든 내 밖에 있는 어디론가 가야 한다면, 그곳에서는 우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또한 유한(有限)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내부적인 한계가 있다든지 ” 또 외부적딘 종말이 있다든지 하는 세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말 그대로 한계가 없는 무한(無限)세계를 실현해야만 우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절대(絶對)이면서 무한(無限)이어야 근본 고뇌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 ‘여기보다 비교적 살기 좋다’든지, ‘여기를 떠난 어딘가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세계가 있다’든지 하는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상대유한을 벗어난다는 표현은 절대무한을 실현시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절대무한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유한은 본래 없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둠과 빛을 섞으면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빛만 남겠지요.

어둠은 본래 없는 것이니까 빛을 들이대면 즉시 사라질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절대무한 앞에는 상대유한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상대유한 세계에서 겪고 있는 죽음이나 괴로움은 본래부터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방법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방법

-달라이라마-

언젠가 한 신도에게 “명상을 시작하면 달라이 라마의 얼굴이 떠오르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요즘에는 분노가 끓어올라도 나를 생각하면서 분노를 가라앉힌다고 합니다.

어쨌든 분노가 끓어오를 때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컨대 당신이 사랑하는 연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떠올릴 수는 없다!” 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생각이 더 강렬하다면 우리 정신은 자동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게 마련입니다.

그럼 당신을 화나게 만들었던 원인이 슬그머니 잊혀질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존자 ‘365일 명상’ 中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