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추방하다

세상에는 너무 흔해지면 천해지는 것이 있다. 물론 질적인 상품 가치가 많은 것은 양이 많아도 많은 대로 가치를 인정받겠지만 그렇지 않고 별 볼 일 없는 것이 숫자만 많을 때는 어차피 천대받기 일쑤다.

반야암 주변에는 몇 년 전부터 천대받는 식물이 하나 생겼다.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은 그럴듯한 꽃인데 이 꽃이 절 둘레에 어떻게나 많이 번식해 자라는지, 할 수 없어 나는 절 식구들에게 보이는 대로 모두 뽑아 없애라고 지시를 내렸다. 말하자면 달맞이꽃 추방작전을 해마다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이 꽃을 추방하기로 결심한 것은 원래 서식한 바가 없던 이 꽃이 어디서 씨앗이 날라 왔는지 수년 전에 몇 포기가 눈에 띄더니 몇 년 사이에 그 번식이 너무 빨라 절 주위가 온통 달맞이 밭이 될 판이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던 중 마침 어느 식물에 조예가 깊은 분으로부터 이 식물은 황소개구리가 다른 개구리들을 못살게 하고 자기 판을 만드는 것처럼,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며 자기번식을 너무 앞세워 자라기 때문에 추방해야 되는 식물이라는 말을 듣고서부터이다.

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6~70cm정도 자라는 키와 잎도 별 볼 상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식물과 섞여서도 혼자 무성해 보이는 자태가 왠지 얄밉기까지 한 것이다. 땅의 거름성분을 혼자 다 빼앗아 먹는 얌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낮은 산야에 흔하게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개망초 보다도 번식력이 훨씬 강한 것 같았다.

식물도감에 찾아보니 달맞이꽃도 큰 달맞이꽃, 애기 달맞이꽃 등 80여 종류가 있다 하며, 유럽 원산과 남· 북 아메리카 원산이 있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라 하였다.

이 꽃을 뽑아내면서 내가 추방식물이라 했더니 한 상좌가 불쑥 “꽃도 추방을 당해야 합니까?”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대답이 궁색해 “꽃도 누구에게 싫어 미움을 받으면 추방당하는 거지 뭐”라고 말했다. 꽃이 추방을 당한다는 것이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시든 꽃을 버리는 것처럼 필요 없는 무가치로 판단되면 가치 있는 것에 밀려서 버림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나무를 키울 때 병든 가지를 쳐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 꽃이란 말이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언어라 할 수 있지만 식물 그 자체에서 개중에는 독소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 꽃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 문화현상을 두고 꽃에 비유하여 말하는 수도 있다. 예술의 꽃이 있으며 학문의 꽃도 있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모든 영역과 문화의 모든 영역에 꽃이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마음도 꽃에 비유하여 말한다. 사람 누구나가 본래의 진실하고 착하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 진실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되었을 때 마음의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렇듯 꽃이란 가치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말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이 꽃이라는 말을 나쁜 의미에 붙여 쓰는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악의 꽃’이란 말이 있다. 금단의 사랑을 주제로 한 일본 영화 제목에 ‘악의 꽃’이 있으며 보들레르의 소설 제목에도 ‘악의 꽃’이 있다. 또한 문화적 현상을 가지고 말할 때 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꽃이 피어 사회에 피해를 입히는 문화의 꽃도 있지 않을까? 이럴 경우 그 문화는 저질스런 악의 문화가 되어 추방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추방당하는 것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추방은 언제나 있다. 왜 추방을 당하는가 하면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지나친 욕심을 가져 남의 자리를 빼앗으려 하거나 이기적 독단에 빠지면 추방을 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자기의 몫을 줄이고 욕심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 수행자를 경책한 부처님 말씀에 허구한 날 좋은 음식만 챙겨 먹으려 애쓰는 사람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먹는 것이라 하였다.

요산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6월 제 79호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

사람이 일생동안 자기 일에 바치는 노력은 한이 없다. 그 노력이 선업을 지어가는 착한 일이든 악업을 지어가는 나쁜 일이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사람의 일은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수고하시오”하는 인사말처럼 인생이란 결국 수고의 연속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남다른 목적을 가지고 평생을 바치는 예술가나 혹은 수도자의 세계에서는 내면적으로 기울이는 자기 정진의 도수는 더욱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이란 날씨에 따른 기온의 온도 차이처럼 사람마다 자기 인생에 기울이는 수고의 도수가 다르다. 이 수고를 자기 인생에 대한 정성으로 본다면 정성의 도수가 높은 사람일수록 위대한 큰 인물이 되리라는 것도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노력을 지혜가 선도해 줘야 한다. 맹목적으로 하는 행동이 결과에 가서 어리석음의 소치로 평가되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또 목표가 잘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노력하는 행위자체에 하자가 있으면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서쪽으로 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는 수도 얼마든지 있다.

중국 당나라 때 마조(馬祖)스님의 일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마조스님이 법당 앞에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스승인 회양선사가 물었다.

“거기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좌선을 무엇 하려 하는가?”

“빨리 깨달아 부처가 되어야지요.”

다음 날 마조는 또다시 같은 장소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었다. 그때 회양선사가 마조가 앉아 있는 곁으로 와서 돌에다 기왓장을 갈고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이를 쳐다보던 마조가 물었다.

“무엇에 쓰려고 기왓장을 갈고 계십니까?”

“이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해.”

“아니 스님, 기왓장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누구는 앉아서 부처가 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앉아서 부처가 되겠다는 것이나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마조가 깨달은 바 있어 다시 여쭈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소가 수레를 끌고 가다 수레가 멈추면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소를 때려야 하겠는가?”

마음은 소고 몸은 수레와 같다는 뜻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선(禪)이 되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선이 되느냐는 말이다.

지금도 이 고사에 얽힌 유적이 남아 있다. ‘마경대(磨鏡臺)’란 글을 새겨 비석을 세워 놓았다. ‘거울을 갈았다’는 뜻도 되는 이 말은 마조가 마음을 깨달아 도를 이룬 것을 기념하는 비이다.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헛수고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문제는 참된 일을 하려다 헛수고를 하는 수도 있는 법이며, 다만 헛수고를 깨달아 목적을 바로 성취하면 헛수고가 헛수고 아닌 것이다. 좋은 일을 하려다 때로는 시행착오도 있다. 그러나 뭔가 잘 해 보려고 애쓰는 노력 그 자체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헛수고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 자기 일에 대한 정성이 없으면 수고에 인색해져버려 아무 보람을 성취하지 못하는 법이다. 헛수고를 하는 우를 범하더라도 해 보고자 노력하는 가치는 참다운 것이다. 물론 끝까지 우를 범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하지만 “우공(愚公)이 산을 옮긴다”는 말처럼 헛수고를 탓하기 전에 우선 끈질긴 노력이 더 필요하고, 좋은 뜻이 전제되어 있는 일에 있어서는 헛수고는 결코 없다.

마조가 좌선을 하였으므로 회양선사가 기왓장을 갈았고 이런 일을 계기로 하여 도를 깨달았던 것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7월 제44호

구화산을 참배하고

중국에는 4대 불교성지가 있다.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을 ‘문수성지’라 하고 보현보살이 머문다는 아미산을 ‘보현성지’라 한다. 또 보타락가산은 관세음보살의 주처라 하여 ‘관음성지’, 그리고 구화산을 ‘지장성지’라 하여 대승불교의 4대 보살의 도량을 개설하여 오랜 역사를 유지해 왔다.

이번에 승가 대학원의 졸업을 앞두고 성지참배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직 한 학기가 남아 있어 졸업이 내년 2월에 있을 예정이지만 마지막 학기에는 각 승가대학에 강사로 나가는 이들도 몇 명 있고 하여 기일을 조정, 짧은 4박5일의 일정으로 구화산을 참배하고 황산을 관람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화산은 중국 안휘성(安徽省) 청양현(靑陽縣) 양자강 남쪽에 있는 산으로 해발 1036m 명산이다. 산 정상에 아홉 개의 작은 봉우리가 마치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구자산(九子山)이라 부르던 것을 당대의 시인 이태백이 이 산에 유람을 왔다가 ‘신령스러운 산이 아홉 송이 꽃을 피웠다(靈山開九華).’라는 시구를 남기고부터 구화산(九華山)이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산이 명산으로 이름나게 된 것은 왕안석(王安石) 등 여러 문인 묵객들이 이 산을 칭송하는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고부터 더욱 유명해 졌다고 한다.

우리가 구화산을 찾아간 것은 무엇보다도 이 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교각 스님의 월신전(月身殿)을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월신전이’란 바로 교각스님의 육신을 모신 법당이란 뜻이다. 육신의 肉字를 月字로 바꾸어 표현한 말이다.

교각(喬覺705~803) 스님은 우리나라 통일 신라 시대의 스님으로 왕자 출신의 스님이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어느 왕의 왕자였는지 정확한 가계족보가 밝혀지지 않는다. 태어난 해로 보면 성덕왕의 왕자라고 볼 수 있는데 다만 구전적인 설일 뿐, 문헌상의 확실한 근거는 없다. 7척의 거구에 장부 열 명을 상대할 힘을 가졌었다고 했는데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24살 때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 구화산에 이르러 풍광이 좋아 이곳에 머물며 관법(觀法)을 닦고 좌선을 하며, 온갖 고행을 하며 지냈다. 뒤에 산 주위의 사람들이 스님의 수행에 감동, 절을 지어 화성사(化聖寺)라 이름하고 스님을 주석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교각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보고 깊이 존경하며 받들기 시작하였다. 그의 호가 지장(地藏)인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그는 산 안에 여러 도량을 개설하고 대중을 이끌다가 세수 99세 되던 음력 7월 30일에 대중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유촉을 하고 가부좌를 한 채 입적을 하였다. 이 시신을 관에 안치하고 3년을 지나 다시 탑 속에 안치하려고 관을 열었을 때 얼굴 모습이 생시와 같았고 뼈마디에서 금쇄(金鎖) 소리가 났다고 한다. 시신에 금쇄 소리가 나면 보살의 화현이라 알려져 왔다. 그리하여 그를 더욱 지장보살로 여기게 되었고 이후 구화산은 지장성지가 된 것이다. 구화산에는 교각 스님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와 전설들이 수없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지장신앙에 관한 것들이다. 지장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지옥을 비우지 못 하면 부처가 되지 안으리라.”(地獄不空 誓不成佛)는 송구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남을 위한 대비심 때문에 나의 성불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교각스님이 지장경을 독송했다는 고배경대, 산 정상에 있는 만불을 모신 천태사, 교각스님이 수행하던 동굴인 지장동굴 등 여러 절을 참배했다. 구화산에는 또 등신불을 모신 절이 여럿 있었다. 지장선사에는 자명(慈明)스님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었고 ‘백세궁’이란 절에는 구화산에 들어와 100년을 수행하다 입적한 무하(無瑕) 스님의 등신불, 또 비구니 인의(仁義)스님이 등신불을 모신 법당도 있었다. 살아생전 수행을 잘 하여 사후의 이적을 보인 등신불의 자취들이 불교의 신심을 고취시키는 방편이 될 것임은 명확하지만 부처님은 화장을 하여 다비를 하였는데 시신을 등신불로 도금하여 안치하는 것이 정작 입적한 스님의 본뜻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육신을 버려야 영혼의 고향을 찾아가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은 하늘을 버려야 빛을 얻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를 얻는다. 꽃은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나는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는다.”

시쳇말처럼 마들어진 이 조어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사해 주는 바가 있고 전해주는 어떤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물론 방편으로 보면 불사문중(佛事門中)에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겠지만 실제 이치에서 보면 중생의 망념의 티끌은 필요 없는 것이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7월 1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