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화산을 참배하고

중국에는 4대 불교성지가 있다.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을 ‘문수성지’라 하고 보현보살이 머문다는 아미산을 ‘보현성지’라 한다. 또 보타락가산은 관세음보살의 주처라 하여 ‘관음성지’, 그리고 구화산을 ‘지장성지’라 하여 대승불교의 4대 보살의 도량을 개설하여 오랜 역사를 유지해 왔다.

이번에 승가 대학원의 졸업을 앞두고 성지참배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아직 한 학기가 남아 있어 졸업이 내년 2월에 있을 예정이지만 마지막 학기에는 각 승가대학에 강사로 나가는 이들도 몇 명 있고 하여 기일을 조정, 짧은 4박5일의 일정으로 구화산을 참배하고 황산을 관람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화산은 중국 안휘성(安徽省) 청양현(靑陽縣) 양자강 남쪽에 있는 산으로 해발 1036m 명산이다. 산 정상에 아홉 개의 작은 봉우리가 마치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구자산(九子山)이라 부르던 것을 당대의 시인 이태백이 이 산에 유람을 왔다가 ‘신령스러운 산이 아홉 송이 꽃을 피웠다(靈山開九華).’라는 시구를 남기고부터 구화산(九華山)이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산이 명산으로 이름나게 된 것은 왕안석(王安石) 등 여러 문인 묵객들이 이 산을 칭송하는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고부터 더욱 유명해 졌다고 한다.

우리가 구화산을 찾아간 것은 무엇보다도 이 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교각 스님의 월신전(月身殿)을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월신전이’란 바로 교각스님의 육신을 모신 법당이란 뜻이다. 육신의 肉字를 月字로 바꾸어 표현한 말이다.

교각(喬覺705~803) 스님은 우리나라 통일 신라 시대의 스님으로 왕자 출신의 스님이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러나 어느 왕의 왕자였는지 정확한 가계족보가 밝혀지지 않는다. 태어난 해로 보면 성덕왕의 왕자라고 볼 수 있는데 다만 구전적인 설일 뿐, 문헌상의 확실한 근거는 없다. 7척의 거구에 장부 열 명을 상대할 힘을 가졌었다고 했는데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24살 때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 구화산에 이르러 풍광이 좋아 이곳에 머물며 관법(觀法)을 닦고 좌선을 하며, 온갖 고행을 하며 지냈다. 뒤에 산 주위의 사람들이 스님의 수행에 감동, 절을 지어 화성사(化聖寺)라 이름하고 스님을 주석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교각 스님을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보고 깊이 존경하며 받들기 시작하였다. 그의 호가 지장(地藏)인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그는 산 안에 여러 도량을 개설하고 대중을 이끌다가 세수 99세 되던 음력 7월 30일에 대중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유촉을 하고 가부좌를 한 채 입적을 하였다. 이 시신을 관에 안치하고 3년을 지나 다시 탑 속에 안치하려고 관을 열었을 때 얼굴 모습이 생시와 같았고 뼈마디에서 금쇄(金鎖) 소리가 났다고 한다. 시신에 금쇄 소리가 나면 보살의 화현이라 알려져 왔다. 그리하여 그를 더욱 지장보살로 여기게 되었고 이후 구화산은 지장성지가 된 것이다. 구화산에는 교각 스님에 대한 여러 가지 설화와 전설들이 수없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지장신앙에 관한 것들이다. 지장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지옥을 비우지 못 하면 부처가 되지 안으리라.”(地獄不空 誓不成佛)는 송구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남을 위한 대비심 때문에 나의 성불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교각스님이 지장경을 독송했다는 고배경대, 산 정상에 있는 만불을 모신 천태사, 교각스님이 수행하던 동굴인 지장동굴 등 여러 절을 참배했다. 구화산에는 또 등신불을 모신 절이 여럿 있었다. 지장선사에는 자명(慈明)스님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었고 ‘백세궁’이란 절에는 구화산에 들어와 100년을 수행하다 입적한 무하(無瑕) 스님의 등신불, 또 비구니 인의(仁義)스님이 등신불을 모신 법당도 있었다. 살아생전 수행을 잘 하여 사후의 이적을 보인 등신불의 자취들이 불교의 신심을 고취시키는 방편이 될 것임은 명확하지만 부처님은 화장을 하여 다비를 하였는데 시신을 등신불로 도금하여 안치하는 것이 정작 입적한 스님의 본뜻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육신을 버려야 영혼의 고향을 찾아가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은 하늘을 버려야 빛을 얻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를 얻는다. 꽃은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고 나는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는다.”

시쳇말처럼 마들어진 이 조어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시사해 주는 바가 있고 전해주는 어떤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물론 방편으로 보면 불사문중(佛事門中)에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겠지만 실제 이치에서 보면 중생의 망념의 티끌은 필요 없는 것이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7월 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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