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사의 가사불사

백운사는 전북 완주의 시골에 있는 절이다. 역사가 깊은 고찰은 아니고 한 비구니 스님의 원력으로 30여 년 전에 창건된 절이다. 대전에서 복지시설을 설립, 치매노인들을 극진이 보살피고 있는 혜광 스님과의 인연으로 나는 이 절을 몇 번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가사를 짓는 불사를 백일기도와 함께 봉행해, 회향하는 날 열리는 대 법회의 법문초청을 받게 되어 방문하게 되었다. 그사이 법당을 새로 짓고 도량을 정리하여 절이 매우 아름답고 청결하였다.

절이 농촌의 야산에 자리하고 있어 깊은 산중 절도 아니고 도회지에 있는 절도 아니라 그야말로 촌절이다. 그러나 촌절이라 해서 절이 초라한 것은 아니다. 법당이 세 개나 있고 선방도 있으며 요사채가 매우 넓다. 처음 갔을 때에도 나는 이런 곳에 어떻게 이렇게 절을 잘 지을 수 있었나 하고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백운사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농촌 사람들을 위한 농촌의 절이다. 절 밑의 마을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농촌사정이 어디를 가나 다 그렇듯이 젊은 층이 아닌 나이가 많은 노인 분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백운사 신도는 거의가 농촌의 나이가 많으신 노보살님들이다. 이분들은 절을 다니며 열심히 기도를 하거나 특별히 정진을 하는 신도들이 아니라 절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일처럼 와서 절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그저 이웃집 일을 도와주듯이 절을 돌보며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절에 등을 하나씩 켜기는 한다. 가난한 형편이라 많은 돈을 내지 못하고 만 원씩 혹은 이만 원씩 절에 시주를 하고 등을 켠다. 음력 초하루가 되면 절에 가는 날이라 생각하고 절에 와서 법당에 참배하고 기도를 잠시 하고 가는 신도들도 조금씩 생겼지만, 그러나 농번기에는 농사일이 바빠서 초하루가 되어도 아무도 안 온다.

이 절을 창건한 지향(智向) 스님은 70대 초반의 연세로 남다른 원력을 가지고 이 절을 세웠다. 스님의 뜻은 농촌의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부처님 법을 펴 그들이 부처님의 가피와 은혜를 입도록 하는 것이다. 법당에 들어가 축원을 할 때마다 삼재의 재난이 없기를 빌어주고 건강을 빌어주고 복덕과 지혜가 성취되기를 빌어드린다. 스님의 성품은 언제 부지런하고 매사를 성심성의껏 하는 헌신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소박한 농촌의 노인분들이 가장 믿고 따르는 말하자면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는 스님이 되었다.

이번에 스님이 삼보에 공양을 올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사불사를 하게 되었다. 가사란 스님들이 입는 네모난 천을 이은 일종의 의복이다. 이 가사를 지어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신도들에게 동참하여 복을 짓게 하자는 것이 스님의 의도였다. 가사를 복전의(福田衣)라고 번역하듯이 예로부터 가사를 지어 올리면 큰 복을 짓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이 가사불사가 꽤 돈이 많이 드는 불사이다. 옷감 값이 올라 한 벌을 짓는데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백 벌만 하여도 수천만 원의 불사금이 필요하다. 그런데 농촌의 경제사정은 뻔하다 1~2만 원이 귀한 곳이다. 기만 원씩 동참한 농촌의 신도님들도 있었지만, 지향스님은 이 불사금을 시주금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사비와 권속스님들의 도움으로 충당하였다고 한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2년 6월 139호

바위에 글씨를 새기듯이

깊은 산속에 있는 절의 입구에는 간혹 석벽이나 바위가 나타난다. 통도사 입구에도 선자바위가 있고 무풍교에서 보행로를 따라 조금 올라오면 용피바위(龍穴岩)가 있다. 구룡지(九龍池) 전설에 나오는 용이 쫓겨 가다 떨어져 피를 흘린 곳이라 한다.

절이 아닌 명승지 부근에도 석벽이나 바위 돌에 사람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것을 탁명(托名)이라 하는데 바위에 이름을 의탁해 놓았다는 뜻이다. 왜 탁명을 하느냐 하면 옛날 사람들이 집안의 가문번창을 기원하거나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에서 석공에게 부탁하여 바위에 이름을 새기게 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공명심이 작용하여 새긴 것들도 있다.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또 하나의 욕망이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초기 어떤 작가분이 금강산에 다녀온 후 감상의 글을 신문에 기고했는데, 가장 안타깝게 느꼈던 것은 아름다운 금강산 곳곳에 바위마다 새겨 놓은 사람 이름을 적은 글씨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자연경관을 해치고 있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바위에 이름을 새길까? 맨땅이나 나무에는 새기지 않고 왜 굳이 바위나 돌에 새기는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돌에 새긴 글씨는 바위가 풍화되어 없어질 때까지 지워지지 않고 오래 오래 남기 때문이다. 비석을 세워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이 어떤 증거를 남겨 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의 하나였기 때문에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비석문화가 발달했던 것이다.

비석에 새겨 글씨를 남기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오래 표시해 두겠다는 보존의지의 발로임이 자명한 일임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이 옳은 일에 대한 의지를 돌에 새긴 글씨처럼 지워지지 않게 가지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 또 반대로 화를 빨리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화를 빨리 풀지 않는 것은 바위에 새긴 글씨와 같아 원망과 증오는 되도록 빨리 풀어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바위에 새긴 글씨와 같은 사람과 모래에 쓴 글씨와 같은 사람 그리고 물에 쓴 글씨와 같은 사람이다. 바위에 새긴 글씨와 같은 사람이란 화를 내고 그 화가 오래 되어도 풀리지 않는 사람이니, 마치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오래도록 비바람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모래에 쓴 글씨와 같은 사람이란 화를 내기는 하지만 그 화가 모래에 쓴 글씨처럼 오래가지 않는 사람이다. 물에 쓴 글씨와 같은 사람이란 물에 쓴 글씨가 곧 흘러 자취가 없어지는 것처럼 남의 욕설이나 언짢은 말을 들어도 조금도 마음에 그 자취를 남기지 아니하고 화평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지내는 사람이다.”

이상은 『증일아함경』에 설해져 있는 내용으로 성내는 마음을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업습(業習)에 의해 일어나는 의지가 다르다. 어떤 때는 착한 의지로 좋은 일을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증오와 원망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한 사람 개인의 의지가 때에 따라 달라지는가 하면 개개인 각자의 의지가 서로 달라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선한 의지는 길이 보호하여 없어지지 아니 하도록 해야 하며 악한 의지는 빨리 없애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신념의 부재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옳은 일에 대한 신념을 굳게 가지지 못하고 자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묘수를 찾는 일에만 혈안이 된 판국이다. 내 주장이 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충분히 성찰하지도 않고 남이 주장하는 것을 꺾기 위해 일부러 또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이념의 갈등을 야기하고 자꾸 시비만 증폭해 가는 양상이 되어간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훈에 “법을 의지해야 하며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는 말씀이 있다. 옳은 소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치에 맞는 법다운 것이라야 된다는 뜻이다. 중생을 위한 진정한 회향의 의지가 없는 것은 설사 말이 옳더라도 결국은 사법이 되어버린 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른 사람(正人)이 그릇된 법(邪法)을 말하면 사법이 정법이 되고 반대로 그른 사람이 정법을 설하면 정법이 사법이 된다”고 했다. 옳은 뜻은 바위에 새긴 글씨처럼 지켜 가고 나쁜 뜻은 물에 쓴 글씨처럼 빨리 지워지게 해야 한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11월 제 48호

바보의 철학

바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아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이 말은 아마 자기 할 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생각이 영민하지 못하여 눈치가 없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바보라는 말이 현대에 와서는 자기주장을 할 줄 모르고 사익(私益)을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을 비웃는 말로 그 뜻이 바뀐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가만있느냐고 질책하면서 화를 내어 가까운 사람을 꾸짖는 경우가 자주 있다. ‘바보처럼 하지 말라.’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는 말은 자신을 타이르고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는 조언의 제 일성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세상을 살면서 남으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하고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자존심 대결로 살려는 사람심리에서 볼 때 모두가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만약에 누가 나를 보고 바보가 되라고 충고 한다면 사람을 놀린다고 화를 낼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바보가 되라’는 법문을 남겨 그 법어집 제목을 “바보가 되거라”로 출판한 책까지 나와 있는 사례가 있다.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살고 있는 세상에 바보가 되라고 하다니 이것이 과연 옳은 가르침인지 묻고 싶다고 할 사람도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세상이 하도 영악해져 가니까 사람들이 모두 순수한 본래의 소박한 마음을 쓰지 못하고 거짓으로 위장되고, 욕망을 숨긴 위선으로 세상을 사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바보가 되라고 한 것이다.

사람 사는 일에도 대의와 명분이 있다. 이 대의와 명분을 지키는 일에는 도덕적 규범이 따른다. 실리를 위해서 신의를 등지거나 자기 입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남을 압박하는 일 따위가 없어야 한다. 이기적 목적으로 자기주장만 내세우면서 남의 주장을 아예 묵살하려는 태도를 취해서도 안 된다. 차라리 그렇게 하려면 바보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때로는 이러한 바보의 철학이 필요하다. 바보의 철학에 있어서 제일 조건은 내 주장을 내세울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니까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바보철학의 핵심이다. 손해를 보거나 남으로부터 무시당하여도 손해를 보는 줄도 모르고 무시당하는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보이기 때문에 요강을 가지고 밥그릇으로 쓰는 수가 있는 줄을 모르면서도 우연히 그릇이 없어 깨끗한 요강을 밥그릇으로 써버리는 실천력을 바보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바보철학의 요지이다.

“요강도 때로는 밥그릇이 됩니다.”

이 말은 폴 브라이트가 지은 태국의 유명한 고승이었던 아잔 차 스님의 강의를 요약해 엮은 책 제목의 이름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현대사회를 지식 사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정보에 대한 지식과 배워 아는 학문적 지식이 많아져 모르면 그야말로 바보취급 당하기 일쑤인 시대라 할 것이다. 그러나 도(道)가 유식과 무식과는 상관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삶 그 자체는 지식이전이고 정보이전이다. 따라서 바보도 훌륭한 일생을 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집에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한 분 있었다.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이 할머니는 평생을 바보처럼 헌신과 봉사로 일생을 산 분이었다. 마음이 인자하여 누구에게나 어질게 대해주며 자기주장을 내우는 일이 없었다. 때로는 아들, 며느리로부터 냉대를 받는 일이 있어도 바보처럼 그것을 눈치 채지도 못한 채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묵묵히 자기 일만을 해온 분이었다.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도 한결같이 자상하고 밝은 미소만 보내 주는 할머니였다.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남을 탓하거나 나무랄 줄도 몰랐다. 모든 일을 언제나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사셨다. 손자 손녀들이 부리는 투정도 다 받아 주면서 한 번도 야단을 쳐 본 적이 없는 할머니였다.

어느 날 이 할머니가 죽었다. 초상을 치르게 된 이 집에 어른인 아들과 며느리는 담담하게 장례준비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 손자 손녀들이 할머니가 죽고 나자 계속 눈물을 흘리면서 엉엉 울면서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울음이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부모가 겨우 달래 울음을 그치게 했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할머니가 쓰던 베개와 안경을 서로 차지겠다고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죽은 할머니의 베게와 안경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을 본 아버지가 그때 비로소 아이들의 할머니이자 자기 어머니의 인품을 바로 알고 자신의 불효를 뉘우치더라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유품을 내가 먼저 가지려는 어린 손자들의 태도가 철이 없어 그러는 것이라고 여기지 말자. 이 아이들에게는 할머니의 감화력이 너무나 가슴 깊이 남아 있어 그것 때문에 할머니의 죽음이 더욱 슬펐던 것이다.

樂山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9월. 제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