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반성

급히 먹는 밥이 체하기 쉬운 것처럼 속도가 높은 것은 사실 안전 위험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말한다. 인생은 속력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 시간을 아끼듯이 하루를 아끼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호레이스의 서한집(書翰集)에는 이런 말이 있다.

“희망과 염려, 공포와 불안 가운데서 그대 앞에 빛나고 있는 하루하루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라. 그러면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 와서 그대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것이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면서 보내고 있는 시간에 대하여 반성해 보아야 한다. 내가 보낸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시간이 흘러간다고 우리는 인생을 흘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존 러스킨의 말대로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성실한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저 보내버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한 일로서 하루하루를 빈 그릇에 음식을 담듯 채워가면서 살아야 한다.

며칠 전 서울에 법회가 있어 갔을 적에 이런 일이 있었다. 김포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종로 조계사에 가자고 했더니 택시 기사가 서울에서 일한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아 조계사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럼 광화문 근처로 가자했더니 이 기사가 차내에 부착한 자동안내 시스템에 의지해 길을 찾아 가는데 한강변 올림픽 도로를 한참 가더니 성수대교를 건너 빙빙 돌아서 별로 차가 밀리지도 않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려 광화문 쪽에다 내려 주는데 시간은 급하고 요금은 훨씬 많이 나오고 해서 매우 마음이 언짢아지고 말았다. 이는 길을 바로 알지 못한 결과로 빚어진 일이다. 길을 모르면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간적 장소를 찾는 길은 우선 방향을 알아서 찾아간다. 동쪽에 있는 목적지를 서쪽을 향해 간다면 옳게 갈 수가 없는 것이다.

길을 찾느라 헤매는 것은 시간을 놓치는 것이자 정신적 에너지를 쓸데없는 데다 낭비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실패된 시간이 줄여져야 더 많은 유익한 일을 하게 된다. 내 삶에 있어서 내가 가진 시간을 유익하도록, 자신에게 유익하고 남에게도 유익하도록 써야 시간의 가치가 만들어지며 내게 의미 있는 보람이 오게 되는 것이다. 시간은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시간이 갖는 의미가 만들어 진다.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어진 하루의 24시간이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병고에 시달리면서 투병 생활을 하는 사람의 시간의 의미와 심심해서 도박을 즐기는 사람의 시간이 결코 같은 순 없다. 감방에서 형을 사는 사람의 시간과 건설현장에서 망치를 두들기며 일을 하는 사람의 시간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시간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시간에 정도(正道)가 있다면 올바른 주관을 가지고 시간을 유익하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의 수행상에서 볼 때 시간은 모두 깨달음의 계기가 되는 순간들이다. 이 순간의 시간의식이 자기의 업을 결정하며 세상의 모양을 만든다. 때문에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 시간의 의미가 탄생하며, 이것이 탄생할 때 내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일상의 타성에 젖어 진부한 습성에 빠지는 것은 금물이다. 착상과 발상이 새로워야 하며 시간을 창의적으로 이용해나가야 한다. “생각마다 보리심을 내면 곳곳이 즐거운 부처님 세상이다.”(念念菩提心 處處安樂國)라고 우리 불가에서 말해온 것처럼 생각이 좋으면 시간이 좋아지고 시간이 좋아지면 장소도 좋아진다. 지금 내가 맞이해 있는 이 시간 속에는 언제나 최대의 의미를 지닌 시간의 분자가 있다. 이 분자가 내 머릿속에 느껴질 때 나는 최대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된다. 시간 속에서 이것을 찾아내는 것은 땅 위에서 가야할 목적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길을 바로 찾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벽암록』이라는 책에는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며, 지금이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하는 말이 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나?’를 시간에게 물어보면 스스로의 반성이 시간으로부터 나온다. ‘하루에 세 번 반성한다.’는 논어의 말처럼 시간의 반성은 내 마음의 반성으로 돌아와 내게 무한한 행복을 선사해줄 준비를 항상 하고 있는 것이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9월 제70호

슬픈 인생을 아름다운 시(詩)로 남기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한 생애를 슬프게 살다간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개인이 처한 불우한 환경이 각양각색으로 있고 시대에 따른 사회제도 속에 수많은 역경을 본의 아니게 당하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슬픈 생애를 산 사람들이 후세에 와서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기도 한다.

누구나 슬프고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들으면 때로는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는 수가 있다. 물론 남의 슬픔을 내 슬픔처럼 이해하고 동정하는 마음 때문에 그럴 것이다. 어떻든 사람이 살면서 감동을 할 수 있는 순간을 가지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코믹한 일에 웃는 것은 쉽지만 우리 마음에 순수한 감동이 와 닿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요 며칠 허난설헌의 시집을 읽었다. 조선조를 대표하는 여류 한시인(漢詩人)이었던 그녀의 생애와 시를 읽고 슬픔을 금치 못했다. 허난설헌 하면 소설 [홍길동]을 지은 허균의 누나였다는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지만, 그녀가 그렇게 슬픈 생애를 살면서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겼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녀는 명문가의 집안에 태어나 어렸을 적에는 총명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미모에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랐다. 오빠인 허봉과 동생인 허균이 글공부 하는 사이에 끼어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운다. 신사임당의 고향이기도 한 강릉에서 태어나 이름을 초희(楚姬)라 했으며, 난설헌은 그녀의 호이다. 타고난 문예적 자질이 뛰어나 8살에 한문으로 상량문을 지었다 한다.

집안과 교분이 있던 당대의 대시인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우며 남다른 시상詩想을 독창적으로 만들어 내는데 능했다. 15살에 시집을 가고부터 그녀에게는 불행이 시작된다. 시집살이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남편 김성립(金誠立)은 작은 벼슬에 나아갔으나 기방(妓房)을 출입하며 부부의 사랑을 지켜주지 않았다. 게다가 성질고약한 시어머니로부터 혹독한 학대를 받아야 했다. 친정마저 당쟁에 얽혀 화를 입고 몰락하고 만다.

이때부터 초희는 여자의 한을 시로서 달래며 산다. 설상가상으로 피붙이 아들과 딸이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다. 아들과 딸을 잃고 난 뒤에 지은 곡자哭子라는 시를 읽고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셨다.

아들과 딸을 잃고 _ 哭子

지난해는 귀여운 딸을 잃었는데 去年喪愛女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을 잃다니 今年喪愛子

슬프고 슬프다! 광릉 땅이여, 哀哀廣陵土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하고 있구나. 雙墳相對起

사시나무 가지에 쓸쓸한 바람 불고 蕭蕭白楊風

도깨비불 무덤가에 어리어 비치네. 鬼火明松楸

소지올려 너희들 혼을 부르며 紙錢招汝魂

무덤에 물 한잔씩 부어 놓으니 玄酒奠汝丘

혼이라도 형제인줄 알긴 알겠지 應知弟兄魂

밤마다 서로 얼려 잘 놀아라. 夜夜相追遊

아무리 뱃속에 아이 또 가진다 해도 縱有復中孩

어찌 그 아이만 잘 자라기 바라겠는가. 安可冀長成

부질없이 황천의 말을 읊조리면서 浪吟黃臺詞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멘다. 血泣悲呑聲

이 시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의 슬픔을 공감하게 한다. 자식 잃은 어머니의 슬픔이 인생 전체의 슬픔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시에는 조선조의 엄격한 유교의 윤리의식에 묶여 억압당한 여권(女權)의 슬픔이 묻어 나오고 삶의 자유를 그리워하는 향수가 짙게 배여 있다.

천재시인 난설헌은 이처럼 애절한 시를 남기고 꿈꾸는 새가 되어 먼 하늘을 향해 날아갔는지 모른다.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한 생애를 마감했는데 죽을 때도 임신한 몸으로 죽었다고 한다. 얼마나 모진 인생에 대한 한이 남았으면 그랬을까. 임종에 임했을 때 그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다시는 조선 땅에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8월 129호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사용한다. 나라마다 식사법이 달라 서양 사람들은 포크나 나이프 등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밥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는 대부분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다. 숟가락에 밥을 떠서 입에 넣어 이를 씹으면서 맛을 느끼며 식도락을 즐기는 것이 사람의 식사다. 먹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몸을 유지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은 일에 앞서 식사를 먼저 하는 것이다. “식사를 하셨습니까?” 하는 인사말은 “일 할 준비가 되었습니까?”라고 뜻을 바꾸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가 있어도 배고픈 사람에게는 식사가 우선이다. 먹는다는 본능, 이것이 가장 시급한 일차적인 생존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일차적인 생존의 문제가 걸린 식사가 맛을 즐기는 식도락의 차원으로 발전해 음식의 고급화를 추구해 온 것 또한 문화나 문명의 발달의 한 페이지이다. 더구나 경제의 지수가 높아진 시대에 와서 음식의 값도 엄청나게 높아진 것들이 있다. 서울의 어느 고급호텔의 식당에는 일인분 식사대가 20만원이 넘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밥 한 끼에 20만원이라면 하루에 60만원, 한 달에 180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매일 그러한 고급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의 고급화에 편승해 식사도 비용지수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이야기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가치비중의 제고에 의해 향상일로를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목하 우리 사회는 수많은 가치의식이 범람하여 매우 혼란스럽다. 사람 사는 생활에 있어서도 서로 추구하는 취향이 다르고 삶의 의미를 다르게 느끼고 살아간다. 그렇다 보니 A에게는 아무 의미 없고 몰가치한 것이 B에게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며 그것 없이는 못산다고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래서 가치의식의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

가치의식이란 사람의 생각에 의해서 부여되는 것이나 여기에도 보편적이고 타당하다고 자타가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이다. 개인의 일방적 편견으로 주장하는 가치는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을 넘어서 보편화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음식에 미각을 느끼는 것이 다르고 선호하는 음식이 다르듯 개인의 사사로운 가치 의식이 무시될 수는 없어도 개인의 사적인 의식이 우선적으로 앞서 공적인 것에 반하는 상황이 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것은 내가 주장하는 가치의식 때문에 남에게 피해가 끼쳐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내가 하는 일에 어떤 의식이 앞선다는 것은 곧잘 남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뜻하지 않는 복병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의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오래된 것이며, 자기화 된 것이듯이 때로는 사람 일이 무의식적으로 행해질 때가 더 좋은 수가 있다. 이것을 선수행에서는 무심도리(無心道理)라 한다. 번뇌가 가라앉은 무심의 경지에서는 자기 하는 일은 자기가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독서삼매에 든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는 줄 모르고 읽는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른바 무아지경에서는 주위가 의식되지 않고 한 생각에 머물러 주객의 대립이 쉬어져 버리기 때문에 삼매 속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도 “국을 퍼는 국자는 국맛을 모른다.” 말이 있다. 숟가락은 밥맛을 모른다는 말과 똑 같은 뜻이다.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삼매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밥맛이나 국맛을 모른다는 것은 정신일도가 되어 맛을 느끼는 의식의 운동이 중지되었다는 뜻과 반대로 어떤 일을 하여도 왜 그 일을 하여야 되는지 본뜻을 깨닫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만 하면서 자각을 못한다는 두 가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나는 무위심(無爲心)으로 함이 없이 한다는 주객의 대립을 벗어난 마음을 말하고 또 하나는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불각심(不覺心)을 경책하여 자각을 환기시키는 말이 될 수 있다. 한 편 나 아닌 남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서 괴로워 질 때 사람의 입속에 밥을 떠 넣어 주면서고 밥맛을 모르는 숟가락처럼 한결같이 남을 위해만 주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면 이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부처님이나 보살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무엇이든 쉴 새 없이 무심히 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09년 9월 1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