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림의 초당에서

독애임로만권서 獨愛林盧萬卷書 홀로 산림의 초당에서 책이나 즐기며

일반심사십년여 一般心事十年餘 한 가지 마음으로 십년세월 넘겼다.

이래사흥원두회 邇來似興源頭會 요새 와서 근원에 마주친 것 같아

도파오심간태허 道把吾心看太虛 도틀어 내 마음 휘잡아 툭 트인 태허를 본다.

도학을 닦는 공부인은 자기가 추구하는 진리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항상 품고 산다. 만약 이것을 망각하면 우선 자기 자신을 바로 만날 수가 없다. 참선 수행에 있어 이른바 화두라는 것이 바로 자신을 틀어잡는 응집력이다. 학문을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바로 자기 자신을 틀어잡는 응집력이 갖춰져야 한다. 이것이 있으면 자아상실을 면할 수 있다. 사상과 이념이 근본의 이치 그 자리에 이르지 못하면 갈등만 부추기는 망상체계에 불과해 자신을 이롭게 하지 못하고 남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

도를 틀어잡고 툭 트인 태허를 모았다는 이 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19살 때 지었다고 알려진 시이다. 물론 성리학을 탐구하여 이기(理氣)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시이지만 불교의 선과 상통하는 일종의 선시라고 할 수 있는 시이다. 퇴계의 생애가 고고한 학문의 일로 정진의 길이었음을 보여주며 임종시에 선승처럼 앉아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여 주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11월 제60호

헛된 인연 잘못알고

망인제연희칠년 妄認諸緣希七年 헛된 인연 잘못 알고 살아온 77년이여!

창봉사업총망연 窓蜂事業摠茫然 창가에 부딪치는 벌처럼 해온 일도 부질없어라

홀등피안등등운 忽登彼岸騰騰運 훨훨 털고 문득 저 언덕에 올라가면서

시각부구해상원 始覺浮 海上圓 비로소 바다 위에 거품인 줄 이제 알았네.

이 시는 범해각안(梵海覺岸)스님이 남긴 임종게(臨終偈)다. 범해 스님은 조선조 순조 20년에 태어나 고종 건양(建陽) 원년 1896년에 입적한 스님으로 선교를 섭렵해 학덕이 높았으며, 유서에도 밝은 학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염불에도 조예가 깊어 재공의식에 능했던 거장이었다.

초의(草衣)선사를 의지해 구족계를 받고 선교의 수학을 거쳐 두륜산(頭輪山)의 진불암(眞佛庵)에서 개당하여 <화엄경>과 <범망경>을 강설하고 선리(禪理)를 가르쳤다. 22년동안 학인들을 가르치며 제방을 순력하다가 다시 두륜산의 대둔사(大屯寺)로 돌아와 학인들을 가르쳤다. 77세에 입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임종을 앞두고 지난 생애를 회고하고 보니 창가에 부딪치는 벌처럼 해온 일이 부질없었다고 하면서 무상 속에 살아온 생애가 바다 위의 거품 같다고 하였다.

허공을 쳐부수니

격쇄허공무내외 擊碎虛空無內外 허공을 쳐부수니 안팎이 없고

일진불입로당당 一塵不立露堂堂 티끌 하나 없는 자리 당당히 드러났네.

번신직투위음후 飜身直透威音後 몸을 뒤쳐 위음의 뒤를 뚫으니

만월한광조파상 滿月寒光照破床 보름달 찬 빛이 낡은 상을 비추네.

고려 때 나옹스님(1320~1378)이 지은 이 시는 오도송(悟道頌)이라 할 수 있는 매우 격조 높은 시이다. 허공을 쳐부수니 안팎이 없다는 1구에서부터 대단한 한 소식을 한 느낌이다. 허공이 부셔지는 대상은 아니지만 이는 마음이 머물 수 있는 경계를 모두 부수었다는 말이다. 시공을 초월해 있는 마음의 성품자리를 파악해, 주객이 끊어진 절대의 본성이 당당히 드러나 현상의 모든 세계를 관통하고 있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위음이란 말은 최초의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인데 위음의 뒤란 천지만물이 시작된 이후라는 뜻이다. 초시간적 자리에서 시간적 상황 속으로 들어온 이후를 말한다. 보름달은 자기 심월이요 낡은 상이란 오름 육신을 상징하고 있다.

나옹스님은 고려 말기의 스님으로 일찍이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20살 때 출가해서, 요연(了然)에게 의탁해 득도(得度)하였다. 그 뒤 5년 후 양주 회암사에서 밤낮없이 정진하다가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1347년에는 중국 원나라로 들어가 연도(燕都)의 법원사(法源寺)에 머물고 있던 인도출신인 지공(指空)스님을 만나 법을 들은 뒤 다시 정자사(淨慈寺)로 가서 평산처림(平山處林)의 법을 전해 받고 불자(拂子)를 받는다. 1358년에 다시 지공을 만난 뒤 고려로 귀국한다. 1361년에는 공민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에 들어가 내전에서 왕을 위하여 설법하고 왕과 왕비로부터 가사와 불자를 하사 받고 왕사가 된다. 여주 신륵사에서 우왕 2년(1376)에 세수 57세 법랍 37세로 입적하였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6월 제6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