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 햇빛 모아둘 곳 없어서

三月韶光沒處收 삼월소광몰처수 춘삼월 햇빛 모아둘 곳 없어서

一時散在柳梢頭 일시산재유초두 버들가지 위에 눈부시게 흩어져 있네.

可憐不見春風面 가련불견춘풍면 아깝게도 봄바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却看殘紅逐水流 각간잔홍축수류 물 따라 흘러가는 붉은 꽃잎만 보이는구나.

이 한편의 시를 읽으면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 지면서 봄을 가슴에 가득 담는 느낌이 든다.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 또 찾아온 봄날의 하루가 시심에 젖어 있다. 선사들의 시는 대개 시심(詩心)이 선심(禪心)이다. 비워져 있는 무심한 마음에서 객관을 정관(靜觀)하고 있다. 만물을 고요히 관찰하면 모두가 무한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봄볕이 저장할 곳이 없어 버들가지 위에 눈부시다든가, 봄바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물 위에 흘러가는 꽃잎만 보인다는 말이 선적(禪的인 서정을 흠뻑 머금고 있다.

이 시는 간화선의 거장 대혜종고(大慧宗杲1088~1163) 선사의 『선종잡도해(禪宗雜毒海)』속에 들어 있는 시로 제자들에게 보였다는 뜻인 「시도(示徒)」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는 시다. 봄을 느끼는 선심이 시심이 되어 봄날의 춘경을 이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4월 제53호

천리 길 찾아와 임의 안부 묻나이다.

千里歸來問舍人(천리귀래문사인) 천리 길 찾아와 임의 안부 묻나이다.

靑山獨立幾經春(청산독립기경춘) 청산에 홀로 서서 몇 해를 보냈나요?

若逢末世難行法(약봉말세난행법) 만약 부처님 법이 행하지 못하는 말세를 만났다면

我亦如君不惜身(아역여군불석신) 나 역시 임처럼 목숨 아끼지 않았으리.

고려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이차돈 성사의 순교 부도탑을 찾아와 지은 시이다. 법흥왕 때 불교를 나라 안에 전파하기 위하여 참수의 형을 당하고 흰 피가 솟았다는 이차돈의 순교를 추모하면서 자신도 이차돈과 같은 처지였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쳤으리라는 호법의 의지를 밝힌 시이다.

의천은 고려 문종의 넷째 왕자로 11세에 왕사(王師)였던 난원(爛圓)에게 출가하여 스님이 된 후 중국 송나라에 들어가 수학하고 돌아온 후 속장경을 간행하고 천태종을 수립하는 등 불교중흥을 위해 많은 공을 남겼다.

찾아오는 손님 없어 혼자 앉아 있으니

獨坐無來客(독좌무래객) 찾아오는 손님 없어 혼자 앉아 있으니

空庭雨氣昏(공정우기혼) 빈 뜰이 비 올려나 어둑하구나.

魚搖荷葉動(어요하엽동) 물고기가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鵲踏樹梢翻(작답수초번) 까치가 밟았는지 나뭇가지 흔들린다.

사람이 때로는 혼자 있어 보아야 한다. 혼자 있을 때 자기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만물을 정관(靜觀)하며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다. 조선조 초기 세종~성종 때의 문신이자 정치가였던 서거정(1420~1488)이 남긴 이 시는 제목이 ‘홀로 앉아’(獨坐)로 되어 있는 시이다. 그는 대학자로 정치에 관여 여섯 왕을 모시면서 45년간을 조정에 봉사하였다.

특히 그는 시문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시와 글에 감탄을 자아냈다고 알려졌다.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동문선’, ‘경국대전’ 등을 공동 집필했으며, ‘오행총람’, ‘동인시화’, ‘동인시문’, ‘필원잡기’ 등 개인 저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