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 (14)연기설

② 행(行, sa?sk?ra)은 행위, 행업의 뜻으로 무명으로 말미암아 식(識)을 일으키는 움직임을 말한다. 육체적 행위는 신행(身行)이 되고, 말은 구행(口行)이 되고, 생각으로 하는 것은 의행(意行)이 된다. 다시 말하면 무명이 움직이는 상태 발동력을 행(行)이라 한다.

③ 식(識, vijñana)이란 심의식(心意識)의 주체를 말하는 것인데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행위의 주동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일으키는 주체라 할 수 있다. 오식, 육식, 칠식, 팔식의 구분이 있다.

④ 명색(名色, n?mar?pa)은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심식(心識)을 名이라 하고 색(色)은 地·水·火·風의 사대(四大)1)로 이루어진 육체를 말하는 것인데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말할 때 탁태(托胎)된 이후 신심이 발육하기 시작하는 초기로 아직 오관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⑤ 육입(六入, sa??yatana)은 육처라고도 하는데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마음[意] 뜻의 여섯 감관을 말한다. 앞의 명색이 여섯 가지의 감관을 통하여 활동하도록 구성된 조직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식, 명색, 육입은 시간적인 선후의 관계라기보다는 동시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식이 발생하기 위한 조건으로 명색과 육입이 동시에 놓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⑥ 촉(觸, spar?a)은 육입이 바깥 경계를 접촉하는 상태를 말한다. 육진(六塵)을 반연하는 것이다.

⑦ 수(受, vedan?)는 감관이 외계를 접촉하므로 그 좋고 나쁘고 즐겁고 불쾌감을 느끼는 감수작용(感受作用)이다. 이 감수에는 고(苦), 낙(樂), 사(捨)가 있다고 한다.

⑧ 애(愛, t????)는 욕애2)·갈애로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듯이 욕구를 가지고 무엇에 애착하는 본능적이고 맹목적인 충동이다. 무명에서 나오는 힘이라 할 수 있다.

⑨ 취(取, up?d?na)는 애(愛)에서 일어나는 집착심으로 ‘나’라는 집착, ‘내것’이라는 집착이 굳어져서 소유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강한 의지이다.

⑩ 유(有, dhava)란 존재의 뜻으로 과보의 원인이 되는 업 작용을 유(有)라 말한다. 이 존재의 세계를 욕심세계의 존재, 형상세계의 존재, 무형세계의 존재의 삼유로 구별하기도 한다.3)

⑪ 생(生, j?ti)이란 태어나 생존을 보유하는 것이다. 오온(五蘊, pauca-skandha)4)의 존재와 육근을 수용하는 생활의 상태이다.

⑫ 노사(老死, jar?-mara?a)는 육체의 인연이 다하여 소멸되는 늙어서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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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대(四大)의 지(地)는 굳고 단단한 성질로 만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을 본질로, 수(水)는 습기의 성질로 모든 물(物)을 포용하는 것을 본질로, 화(火)는 온도를 의미하고 물(物)을 성숙시키는 것을 본질로, 풍(風)은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고 물(物)을 성장시키는 것을 본질로 한다. 이것을 오늘날 질소(N), 수소(H), 탄소(C), 산소(O)로 대치시켜 설명할 수 있다.

2) 욕망은 구체적으로 욕애(欲愛), 유애(有愛), 무유애(無有愛)로 나누어진다. 욕애는 오욕에 대한 욕망으로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이고, 유애는 오래도록 살고 싶거나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나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존재에 대한 욕망이고, 무유애는 사후에 허무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무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3) 여기서 말하는 삼유는 ‘삼계(三界)’를 말한다.

4) 온(蘊)이란 곧 집합·구성 요소를 의미하는데, 오온(五蘊)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이다. 처음에는 오온이 인간의 구성 요소로 설명되었으나 더욱 발전하여 현상세계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오온이 인간의 구성요소를 의미하는 경우에는 ‘색’은 물질요소로서의 육체를 가리키며, ‘수’는 감정·감각과 같은 고통·쾌락의 감수(感受)작용, ‘상’은 심상(心像)을 취하는 취상 작용으로서 표상·개념 등의 작용을 의미한다. ‘행’은 수·상·식 이외의 모든 마음의 작용을 총칭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의지작용·잠재적 형성력을 의미한다. ‘식’은 인식판단의 작용, 또는 인식주관으로서의 주체적인 마음을 가리킨다. 약해서 명색(名色:名은 4온에 해당)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오온은 현상적 존재로서 끊임없이 생멸(生滅)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주(常住)불변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교의 근본적인 주장으로서의 무상(無常)·고(苦)·공(空)·무아(無我)를 설하는 기초로서 설명되었다. 부파불교의 아비달마(阿毘達磨) 철학에서는 ‘식’은 마음의 주체[心王], ‘수’,’상’,’행’은 마음의 부분적 작용·상태 등의 속성[心所]이라고 하며, ‘행’에는 또한 마음의 작용 이외에 물질·마음을 작용시키는 힘[心不相應行]도 있다. ‘색’의 개념도 원시불교에서의 상식적·구체적 존재에서 물질의 형식·성질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오온설의 철학적 의미는 모든 인간계가 실체가 없는 가화합(假和合)·개공(皆空)으로 이루어진 현상적 존재이기 때문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설명하고 있다. 즉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 오온개공(五蘊皆空) 등의 말뜻이 그것이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3년 10월 (제35호)

초기경전 (13)연기설

연기설이 불교 교리의 주축을 이루는 주된 사상임을 불교 교리를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 불교는 우주 만유의 제법을 시간적으로 관찰하는 연기론과 공간적으로 관찰하는 실상론의 두 가지 교의를 가지고 있다. 『아함경』에서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을 연기의 이법이라 하였고 그것을 다시 12인연으로 설명하여 놓았다. 이 12인연은 연기의 형식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교설로 알려져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교리가 대승불교에 와서는 인과 관계(因果關係)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불교의 인연설은 모든 사물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사상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는 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교의임은 앞서 이미 밝혔다. 다시 말해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도를 깨치고 성불했다 하는데 그 오도의 내용을 한마디의 말로 표현하면 인연법 혹은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일찍이 사리불(舍利弗, Sariputra)이 5비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마승(馬勝) 비구(아슈와지뜨, Asvajit)를 만났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서 무슨 가르침을 받느냐”고 묻는다. 이때 아슈와지뜨가 대답해 준 말은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인연으로부터 없어진다고 나의 스승은 항상 이렇게 가르쳐 주신다”1)라고 말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연법이라고 소개한다.

또 이 인연설 특히 12인연은 윤회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열두 가지, 열두 항목으로써 설명하는 12인연설은 무명에서 시작된다.

① 무명(無明, avidya)이란 무지를 뜻하는 말로, 진리를 미혹하여 사물의 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최초의 상태를 말한다. 『잡아함경』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 고통을 모르고 그 원인이 사라짐과 사라지는 길을 모르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나오는가 하면 전생을 알지 못하는 것, 업과 그 과보를 알지 못하는 것, 불·법·승의 삼보를 알지 못하는 것도 무명이라 설명하고 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여실히 진여법(眞如法)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 근본불각(根本不覺)이라고, 다소 우주적이고 사변적인 말로 설명하고 있다. 이 무명이 일체번뇌를 낳고 번뇌로 말미암아 악업을 짓고 악업으로 말미암아 고과(苦果, 괴로운 결과)를 받은 이 무명은 일체번뇌의 근본인 동시에 악업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불교의 무명을 맹목적 생활의지라 설명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생명력으로 언제나 욕구불만을 느끼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을 무명의 힘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3년 9월 (제34호)

초기경전 (12)잡아함경

이 무아론(無我論)은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영혼, 자아 또는 브라만의 아트만(Atman)과 같은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인연에 의하여 임시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무아(無我, anatman)이론이 자칫 잘못 오해되면, 있는 그대로의 우리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같이 생각되기 쉬우나 그것은 아니다. 무아란 있는 현상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원하고 불변하는 실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삶에서의 나, 개인의 존재는 인연에 의한 한시적인 존재로서는 있는 것이다. 이것을 속제(俗諦), 즉 세속의 일반 이치로 보는 진리라 한다. 그러나 무상 속에 속해 있는 가상의 존재는 진실한 존재가 아니라고 한다. 실체가 공하여 없다는 뜻으로, 이것을 승의제(勝義諦)라 하는데 본질적 실체적 의미의 존재라는 뜻이다. 이것은 곧 무아로 존재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 무아설의 이론은 연기법(緣起法)으로써 설명되면서 연기는 고립·독존할 수 없는 조건에 의하여 이것과 저것이 상대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역시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다시 설명된다.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어인 프라키트야(pratitya)와 삼무트파다(samutpada)라는 두 개의 말로 이루어진 말인데 ‘pratitya’는 ‘… 때문에 …에 의해서’라는 뜻이고 ‘samutpada’는 ‘태어남, 생산’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조건에 의한 생겨남’이라는 뜻이다.

연기설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혼자서 생긴다든지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존재들은 원인들과 그 원인들의 관계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잡아함경』(12권)의 갈대단의 비유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세 갈대가 빈 땅에 세워지려면 서로 의지하여야 서게 되는 것처럼 모든 사물은 서로 의지하는 상의성(相依性)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흔히 연기법을 정의하여 하는 말에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라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연기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기의 공식을 가지고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데 결국 연기는 현상의 실체를 부정하고 공(空)한 이치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무아설이 공사상으로 발전된다. 공의 상태를 주관쪽과 객관쪽으로 나누어 아공(我空)·법공(法空)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인무아(人無我)·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아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또 사리불이 야마카 비구에게 인간 존재를 설명하는 오온(五蘊)에 대하여 “그것은 병(病)과 같고 종기와 같으며, 가시와 같고 죽음과 같으며 무상하고 괴로우며 공(空)이요, 내가 아니며 내 것이 아니라고 관찰하라. 그래서 거기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것을 받아들이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무아설을 타고 있는 불에 비유하여 말한다. 왜냐하면 불이 모든 초목을 태워 버리듯이 무아가 욕망과 고통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마치 불을 태우면 모든 초목이 타 없어지는 것처럼 만일 무상하고 무아라는 것을 생각하여 닦으면 일체의 번뇌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 하나의 사실이 있다면 내가 없다는 사실뿐”이라고 5세기의 불교 사상가 아상가(Asanga)는 말했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3년 8월 (제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