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 (13)연기설

연기설이 불교 교리의 주축을 이루는 주된 사상임을 불교 교리를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 불교는 우주 만유의 제법을 시간적으로 관찰하는 연기론과 공간적으로 관찰하는 실상론의 두 가지 교의를 가지고 있다. 『아함경』에서 부처님의 깨달은 내용을 연기의 이법이라 하였고 그것을 다시 12인연으로 설명하여 놓았다. 이 12인연은 연기의 형식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교설로 알려져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교리가 대승불교에 와서는 인과 관계(因果關係)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불교의 인연설은 모든 사물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아사상의 이론적 뒷받침이 되는 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중요한 교의임은 앞서 이미 밝혔다. 다시 말해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도를 깨치고 성불했다 하는데 그 오도의 내용을 한마디의 말로 표현하면 인연법 혹은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일찍이 사리불(舍利弗, Sariputra)이 5비구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마승(馬勝) 비구(아슈와지뜨, Asvajit)를 만났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서 무슨 가르침을 받느냐”고 묻는다. 이때 아슈와지뜨가 대답해 준 말은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인연으로부터 없어진다고 나의 스승은 항상 이렇게 가르쳐 주신다”1)라고 말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연법이라고 소개한다.

또 이 인연설 특히 12인연은 윤회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열두 가지, 열두 항목으로써 설명하는 12인연설은 무명에서 시작된다.

① 무명(無明, avidya)이란 무지를 뜻하는 말로, 진리를 미혹하여 사물의 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최초의 상태를 말한다. 『잡아함경』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 고통을 모르고 그 원인이 사라짐과 사라지는 길을 모르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나오는가 하면 전생을 알지 못하는 것, 업과 그 과보를 알지 못하는 것, 불·법·승의 삼보를 알지 못하는 것도 무명이라 설명하고 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여실히 진여법(眞如法)이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 근본불각(根本不覺)이라고, 다소 우주적이고 사변적인 말로 설명하고 있다. 이 무명이 일체번뇌를 낳고 번뇌로 말미암아 악업을 짓고 악업으로 말미암아 고과(苦果, 괴로운 결과)를 받은 이 무명은 일체번뇌의 근본인 동시에 악업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불교의 무명을 맹목적 생활의지라 설명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 생명력으로 언제나 욕구불만을 느끼고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을 무명의 힘이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3년 9월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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