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강의 (4) 하나의 길에 시작과 끝이 없어

(1) 총석인의(總釋印意)

총괄적으로 도장(圖印)의 의미를 해석한다는 과목의 이름을 붙여 법계도를 짓게 된 까닭을 밝히는데, “석가여래께서 가르치신 그물과 같은 교법이 포괄하는 3종의 세간을 해인삼매로부터 드러내어 니타내기 위함이다” 라고 하였다. 해인삼매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3종의 세간, 즉 기세간(器世間)과 중생세간(衆生世間), 그리고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 법계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흰 종이 위에 도인(圖印)의 길을 표시하는 붉은 줄과 검은 글자로 만들어진 법계도가 3종 세간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다시 있다.

“백지(白紙)는 기세간(器世間)을 표시한다. 백지에는 본래 염색이 되어 있지 않다. 먹으로 찍으니 검고, 붉은 획을 그으나 붉다. 기세간도 이와 같다.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 중에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

중생이 처하면 더러움에 물들고, 성현(聖賢)이 처하면 맑고 깨끗하다. 그러므로 검은 글자는 중생세간(衆生世間)을 나타낸다. 검은 글자는 모두 검고, 글자 하나 하나는 모두 같지 않다. 중생도 이와 같다. 무명번뇌(無名煩惱)가 모두 자신을 어둡게 덮고 있으며, 그것은 온갖 차별을 나타낸다.

반면에 붉게 그은 획은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을 나타낸다. 붉게 그린 한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짐이 없이 모든 글자들 속에서 연결된 고리를 이루고, 그 빛과 색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처님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이 평등하고 광대하여 두루 중생들의 마음에 미친다. 십세(十世)가 상응하여 중생을 원만하고 밝게 비춰준다. 이런 까닭에 인(印)은 3종의 세간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어 백지와 검은 글자 그리고 붉은 줄이 서로 상호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것과 같이, 3종 세간이 융통상섭(融通相攝)하여 혼연히 한 덩어리를 이루지만, 그러면서도 문이 각각 달라 분명하고 동요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세간이란 세계라는 말과 같다. 앞서 설명했듯이, 시간과 공간에 의하여 한계지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범어의 loka를 세간, 혹은 세계라 번역한다.

(2)별해인상(別解印相)

별해인상(別解印相)이란 도인(圖印)을 하나 하나 나누어 해석한다는 뜻인데, 여기에 다시 설인문상(設印文相). 명자상(明字相). 석문의(釋文義)로 나누어져 설명된다.

1) 설인문상(說印文相)

의상스님이 직접 인문(印文)의 양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를 요약하면 “인문이 하나의 길로 되어 있는 것은 여래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 길이 번거롭게 많은 굴곡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중생들의 근기와 취향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삼승교(三乘敎)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하나의 길에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은 여래의 선교방편에는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어 대응하는 세계에 따라 적당하게 융통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은 원교(圓敎)에 해당한다.

4면이 4각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사섭법(四攝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인문(印文)은 삼승에 의하여 일승을 드러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 명자상(明字相)

시문(詩文)의 모양을 밝히는 것으로, 의상스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시문은 시작과 끝이 있는데, 그것은 수행하는 방편을 말하는 것으로 인(因)과 과(果)가 다름을 나타낸다. 그리고 문중(文中)에 많은 굴곡이 있는 것은 삼승의 근기와 취향이 차별되어 같지 않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왜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가 중앙에 있느냐 하면, 인과의 두 자리가 법성 집안의 진실한 덕(德)과 용(用)임을 표시하는 것인데, 그 성품이 중도(中道)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도인(圖人)의 전체적인 의미 설명과 아울러 인문(印文)과 시문(詩文)의 모양에 대하여 설명하고 문의(文意)의 해석에 들어간다.

3) 석문의(釋文義)

시문, 즉 법성게 한 게송 한 게송의 뜻을 자세히 풀이해 나가는 부분이다.

법성게는 7언 30구의 시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송부터 18송까지는 자리행(自利行)을 19송부터 22송 까지는 이타행(利他行)의 수행방법, 그리고 22송부터 30송까지는 수행의 이익을 나타내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을 다시 자세하게 나누어 가면서 내용상 의미를 구분해 과목을 나눈다.

요산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4월 제 77호.

법성게강의 (3) 참된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의상스님이 법성게를 지은 유래에 대해서는 매우 신비스러운 설화가 전해진다. 최치원이 지은 의상전(義湘傳)에 기재되었다는 이 설화는, 고려시대 균여(均如)대사가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를 지어 그 속에서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다.

의상스님이 그의 스승 지엄(智儼)스님 문하에서 화엄을 수학하고 있을 때, 한 번은 꿈 속에 이상한 모양을 갖춘 신인 (神人)이 나타나 의상스님에게 “그대가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여러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라” 고 하였다. 또 꿈속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총명약을 주었다.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다시 나타나 세 번째로 비결(秘訣)을 주는 것이었다.

의상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스승인 지엄스님에게 하였더니, 지엄스님은 이를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나에게는 한 번을 주더니 너에게는 세 번을 주었구나, 널리 수행하여 네가 터득한 경지를 표현하도록 하라”고 했다.

의상스님은 스승의 명을 따라 그가 터득한 오묘한 경지를 순서대로 부지런히 써서 『대승장(大乘章)』10권을 완성해 스승에게 잘못이 없는지 보아주기를 청했다. 이에 지엄스님이 그것을 보고 난 뒤, 뜻은 좋으나 말이 너무 옹색하다 하여 다시 고쳐지었다.

그러고 난 뒤, 지엄스님과 의상스님이 함께 불전에 나아가 그것을 불에 사르면서 “부처님의 뜻에 맞는 글자는 타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기원을 하였더니, 210자가 타지 않고 남았다. 의상스님은 타지 않고 남은 글자를 주워서 다시 불 속에 던졌으나 역시 타지 않았다. 지엄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여 칭찬하였다.

의상스님은 글자를 연결하여 게(偈)가 되게 하려고 며칠 동안 문을 걸고 글자를 연결해 맞추어 마침내 30구(句)를 이루니, 삼관(三觀)의 오묘한 뜻을 포괄하고 십현(十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다 하였다.

이상과 같은 설화는 법계도가 만들어진 과정을 신비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의상스님이 스스로 깨달음 경지를 여러 사람에게 알려 주기 위해 법계도를 만들었다고 그 동기를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의상스님이 직접 법계도의 첫머리에서 언급해 놓은 말도 있다.

“이(理)에 의하고 교(敎)에 근거하여 간단한 반시(槃詩)를 만들어 이름에 집착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이름마저 없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법성게를 짓게 된 동기를 밝힘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법성게를 통하여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삼국유사』의 ‘의상전교’편에서는 법계도가 완성된 때를 총장(總章, 당 고종 때의 연호) 원년 무진년(서기 668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해에 스승 지엄스님도 열반에 든다.

법계도는 해인함매(海印三昧)의 세계를 도인(圖印)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곧잘 바다에 비유한다. 바다는 깊고 넓은 것이며, 한없는 보배를 간직하고, 만상(萬象)을 비쳐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마음의 바다도 이와 같이 깊고 넓으며 무한한 보배를 가지고 있는데, 깨달음의 세계는 이와 같은 마음을 통하여 비춰 진다.

다만 파도가 일고 있는 바다에 깨달음의 세계, 즉 참된 진리의 세계가 비춰지기 위해서는 먼저 물결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파도가 일고 있는 바다에는 만상이 비춰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파도는 바람이 불어서 일어난 것이므로 바람이 자면 바다는 고요하며 만상이 저절로 비춰지는 것이다.

마음의 바다에 무명(無名)의 바람이 불지 않아 번뇌이 파도가 쉬어지면 고요한 법성의 세계가 여실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파도가 잠든 바다, 거기에 진실한 실상의 세계가 나타난 것을 해인(海印)이라 하고, 번뇌가 잠든 마음의 바다를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하는 것이다. 법계도는 해인도라고 바뀌어 불려지기도 한다.

법계도는 직관으로 밖에 증득할 수 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의상스님은 그의 제자들 가운데 공부를 성취한 사람에게 깨달음을 인정하는 증표로써 법계도를 수여하였던 것이다.

의상스님은 법계도에 대한 소(疎)를 지어 법계도의 이해를 도와주려 하였다. 법계도에 대한 주석서로는 의상스님이 직접 지은 『법계도기총수록(法系圖記叢隨록)』2권, 고려 때 균여대사가 지은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2권, 조선시대 생육신(生六臣)중 한 사람으로 승명(僧名)을 설잠(雪岑)이라고 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일승법계도주』(一 乘法系圖註)1권 등이 있다.

의상스님은 그의 소(疎)에서 법계도에 관한 전체적인 해석과 도인(圖印)의 각부분 하나 하나에 개별적인 풀이를 함으로써 두 가지 면으로 해석하였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3월 제76호

법성게강의 (2) 법성게를 짓게된 동기

화엄일승법계도(약칭 법계도)는 맨 가운데의 법(法)자로부터 왼쪽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각을 지어 돌아가게 되어 있다. 4면으로 4각을 이루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모두 54각이 있다. 이처럼 화엄일승법계도의 4면 4각은 보살 수행의 중요한 덕목인 4섭법(四攝法)과 4무량심(四無量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4섭법(四攝法)이란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 쓰는 네 가지 방법을 말한다. 즉, 보시를 함으로써 사람을 포섭하는 보시섭(布施㒤)과, 남에게 도움을 주어 이익되는 행동을 하는 이행섭(利行攝)과,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써 대하는 애어섭(愛語攝), 그리고 상대방과 같은 처지가 되어 함께 일하면서 끌어들이는 동사섭(同事攝)이 있다.

4무량심(四無量心)이란 네 가지의 한량없는 큰 마음이라는 뜻으로, 자(慈), 비(悲), 희(喜), 사(捨)를 의미한다. 자비의 자(慈)는 나(吾)로 인하여 남이 즐거워지도록 하는 것으로 곧 기쁨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남의 슬픔을 덜어 주는 것으로서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희(喜)는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고 남이 잘되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것이요, 사(捨)는 쓸데없는 고집이나 집착을 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인 평등한 마음을 쓰는 것이다.

이처럼 4섭법과 4무량심은 화엄경에서 설한 보살도(菩薩道) 실천의 근본정신으로 6바라밀 혹은 10바라밀과 함께 보살행원의 핵심내용을 이루는 것이다.

법계도는 일명 해인도(海印圖)라고도 하는데, 화엄경을 해인삼매(海印三昧) 속에서 설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글자 사이에 그어진 선(線)은 영어의 대쉬(Dash)와 같은 것으로 원래는 붉은 획(劃)이었던 것이데, 글자를 빼고 이것만을 연결하여 해인도라고도 하며, 해인삼매 혹은 화엄사상을 상징하는 마크(Mark)로 쓰여 마치 도장처럼 찍어 쓰는 경우도 있다. 본래 붙여진 이름도 화엄일승법계도장이라 하여 도장이란 말을 붙여 썼는데, 법계도서인(法界圖書印) 이라 고도 불렀다. 그 외에 법성도라고 하는 이름도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법계도는, 의상 스님이 지은 반시(般時)라고 하는 7언 30송의 시를 하얀 백지 위에 검은 글자를 배열하고 글자 사이에 붉은획을 그어 글자와 글자가 연결되게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한 것에도 의미가 있는데, 이는 바로 화엄경에서 말하는 3종(種)의 세간(世間)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백지는 기세간(器世間), 검은 글자는 중생세간(衆生世間), 붉은 획은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을 나타낸다.

여기의 기세간이란 중생들이 의지해 사는 산하대지의 환경을 말하며, 지정각세간이란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를 가리키는 말인데, 세간의 세(世)는 시간을 뜻하고, 간(間)이란 공간을 뜻하는 말이다. 즉 현상계란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상황 속에서 전개되는 일체 현상을 말하는 것이므로 시간과 공간의 카테고리(Cartegory)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의 교리는 이 두 가지를 주축으로 설해지는데, 시간적인 관찰에서 설해지는 것을 연기론(緣起론)이라 하고, 공간적인 관찰에서 설해지는 것을 실상론(實相論)이라고 한다.

요산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2월 제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