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스님이 법성게를 지은 유래에 대해서는 매우 신비스러운 설화가 전해진다. 최치원이 지은 의상전(義湘傳)에 기재되었다는 이 설화는, 고려시대 균여(均如)대사가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를 지어 그 속에서 인용하여 소개하고 있다.
의상스님이 그의 스승 지엄(智儼)스님 문하에서 화엄을 수학하고 있을 때, 한 번은 꿈 속에 이상한 모양을 갖춘 신인 (神人)이 나타나 의상스님에게 “그대가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여러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라” 고 하였다. 또 꿈속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총명약을 주었다.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다시 나타나 세 번째로 비결(秘訣)을 주는 것이었다.
의상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스승인 지엄스님에게 하였더니, 지엄스님은 이를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나에게는 한 번을 주더니 너에게는 세 번을 주었구나, 널리 수행하여 네가 터득한 경지를 표현하도록 하라”고 했다.
의상스님은 스승의 명을 따라 그가 터득한 오묘한 경지를 순서대로 부지런히 써서 『대승장(大乘章)』10권을 완성해 스승에게 잘못이 없는지 보아주기를 청했다. 이에 지엄스님이 그것을 보고 난 뒤, 뜻은 좋으나 말이 너무 옹색하다 하여 다시 고쳐지었다.
그러고 난 뒤, 지엄스님과 의상스님이 함께 불전에 나아가 그것을 불에 사르면서 “부처님의 뜻에 맞는 글자는 타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기원을 하였더니, 210자가 타지 않고 남았다. 의상스님은 타지 않고 남은 글자를 주워서 다시 불 속에 던졌으나 역시 타지 않았다. 지엄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여 칭찬하였다.
의상스님은 글자를 연결하여 게(偈)가 되게 하려고 며칠 동안 문을 걸고 글자를 연결해 맞추어 마침내 30구(句)를 이루니, 삼관(三觀)의 오묘한 뜻을 포괄하고 십현(十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다 하였다.
이상과 같은 설화는 법계도가 만들어진 과정을 신비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의상스님이 스스로 깨달음 경지를 여러 사람에게 알려 주기 위해 법계도를 만들었다고 그 동기를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의상스님이 직접 법계도의 첫머리에서 언급해 놓은 말도 있다.
“이(理)에 의하고 교(敎)에 근거하여 간단한 반시(槃詩)를 만들어 이름에 집착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이름마저 없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법성게를 짓게 된 동기를 밝힘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법성게를 통하여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삼국유사』의 ‘의상전교’편에서는 법계도가 완성된 때를 총장(總章, 당 고종 때의 연호) 원년 무진년(서기 668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해에 스승 지엄스님도 열반에 든다.
법계도는 해인함매(海印三昧)의 세계를 도인(圖印)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곧잘 바다에 비유한다. 바다는 깊고 넓은 것이며, 한없는 보배를 간직하고, 만상(萬象)을 비쳐주는 능력을 갖고 있다. 마음의 바다도 이와 같이 깊고 넓으며 무한한 보배를 가지고 있는데, 깨달음의 세계는 이와 같은 마음을 통하여 비춰 진다.
다만 파도가 일고 있는 바다에 깨달음의 세계, 즉 참된 진리의 세계가 비춰지기 위해서는 먼저 물결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파도가 일고 있는 바다에는 만상이 비춰지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파도는 바람이 불어서 일어난 것이므로 바람이 자면 바다는 고요하며 만상이 저절로 비춰지는 것이다.
마음의 바다에 무명(無名)의 바람이 불지 않아 번뇌이 파도가 쉬어지면 고요한 법성의 세계가 여실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파도가 잠든 바다, 거기에 진실한 실상의 세계가 나타난 것을 해인(海印)이라 하고, 번뇌가 잠든 마음의 바다를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하는 것이다. 법계도는 해인도라고 바뀌어 불려지기도 한다.
법계도는 직관으로 밖에 증득할 수 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의상스님은 그의 제자들 가운데 공부를 성취한 사람에게 깨달음을 인정하는 증표로써 법계도를 수여하였던 것이다.
의상스님은 법계도에 대한 소(疎)를 지어 법계도의 이해를 도와주려 하였다. 법계도에 대한 주석서로는 의상스님이 직접 지은 『법계도기총수록(法系圖記叢隨록)』2권, 고려 때 균여대사가 지은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2권, 조선시대 생육신(生六臣)중 한 사람으로 승명(僧名)을 설잠(雪岑)이라고 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일승법계도주』(一 乘法系圖註)1권 등이 있다.
의상스님은 그의 소(疎)에서 법계도에 관한 전체적인 해석과 도인(圖印)의 각부분 하나 하나에 개별적인 풀이를 함으로써 두 가지 면으로 해석하였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3월 제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