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교사에서 불후의 명저로 알려진 신심명은 삼조 승찬대사가 지은 것이다. 이 신심명은 4언 146구 584자로 되어 있는 독특한 문체로 운문의 형식을 띄고 있는 명체(銘體)의 글이다. 명(銘)이란 ‘마음에 깊이 새겨둔다’는 뜻으로 잠(箴)과 함께 주로 문장 속에 설해진 내용을 특별히 강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좌우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명체로 되어 있는 글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불교의 전적(典籍) 가운데 명(銘)자를 붙인 글은 부(傅)대사의 심왕명(心王銘)을 비롯하여 법융(法融)스님의 심명(心銘), 그리고 망명(亡名)스님의 식심명(息心銘) 등이 있다.
이 신심명은 장편(長篇)의 시(詩)와 같은 운치를 풍기면서 불교의 심오한 이치를 깨달음의 차원에서 노래하고 있다. 물론 영가(詠嘉)스님의 증도가(證道歌)도 깨달음의 노래라고 번역되듯이, 도를 깨달은 각후(覺後)의 경계를 설해, 수도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지만, 이 신심명 역시 도를 깨닫는데 있어서 가장 요긴한 포인트를 설해 놓았다. 특히 선(禪)의 지취(旨趣)를 표현하여 공안(公案)을 참구하는 실참(實參)의 경계라 할 수 있는 격외도리(格外道理)에 관해 문자를 통하여 밝혀놓은 명문(名文)이다. 뿐만아니라 대장경에서 설해놓은 불법의 심오한 이치를 간결한 언어로 함축하여 그 대의를 극명하게 밝혀 놓았다.
내용을 보면 변견(邊見)의 40대(對)를 설하면서 모든 상대적인 개념인 취(取)‧사(捨)증(憎)‧공(空)‧유(有)‧선(善)‧악(惡)‧시(是)‧비(非) 등을 동시에 부정하여 중도(中道)를 천명해 놓고, 궁극적으로는 중도의 견해도 여윌 것을 설해 놓았다. 간결한 문체와 응축된 내용으로 일체의 군더더기 말을 배제함으로써 선문(禪門)의 필독서로 여겨져 왔다. 승찬스님은 생몰연대(生沒年代)가 정확치 않으나, 중국 수(隋)나라 때의 스님으로 양제대업(煬帝大業) 2년(서기 606년)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세수(世壽)가 얼마였는지도 알려지지 않으며, 다만 당나라 때 현종이 감지(鑑智)라는 시호를 올리고 탑호를 각적(覺寂)이라 하였으며, 당시 재상이었던 방관(房琯)이 탑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원래 승찬대사는 출가하기 전에 요즘의 문둥병인 풍질(風疾)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병고에 시달리던 스님은 2조 혜가스님을 찾아가 느닷없이 여쭈었다.
“저는 풍질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의 죄를 참회케 해 주십시오.”
그러자 혜가스님께서 말했다. “그대의 죄를 가져 오너라. 그러면 죄를 참회시켜 주겠다.”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의지해 살아라.”
“지금 스님을 뵈옵고 승보(僧寶)를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와 법보(法寶)라고 합니까?”
요산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3우러 제8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