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 그대는 부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5)

그대는 부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부처님은 우리를 외아들이라 하셨다 ─서울 능인선원

지광스님

5.

우리는 부처님의 외동아들

우리도 내가 아내의 마음을 알려면 그녀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봐야 알고 남편의 마음을 알려면 내가 남편과 하나가 돼봐야 알 것 아닙니까? 기도를 열심히 하고 정말 부처님을 철저히 믿어 부처님과 함께 있을 때 부처님의 사랑을 정말 독차지 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항상 ‘엄마 엄마’를 부르면 엄마가 얼마나 예뻐합니까? 경전마다 항상 부처님과 더불어 살라는 이유, 즉 왜 천지만물과 조화를 이루고 까탈스럽고 불평불만 말하지 말고 왜 우리가 자꾸 기도 정진하라고 말씀드리는고 하니 그러면 모든게 쉬어집니다.

부처님을 끊임없이 불러 모시게 되면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 되고 바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기독교인들과 불교인들을 비교해보면 아직도 불교인들이 먼 것 같습니다.

우린 ‘불교 믿습니까?’ 물어보면 ‘믿어요’ 이지만 그 사람들은 ‘믿씁니다’ 아닙니까? 《화엄경》의 시도원공덕문, 신심은 모든 공덕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솔직히 산중에서 몇 년 동안 참선만 하고 살아온 인간입니다.

체험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가톨릭 신자였으니까 거기있는 스님한테 ‘나는 절대로 불교 안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스님이 80살 정도로 나이가 많으셨는데 ‘가톨릭 절대로 상관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리산에서 만났는데 제가 괴로워서 항의했습니다.

‘바깥에는 지금 콩 튀듯이 막 죽고 사는데 중들이 앉아서 뭐하는 짓이냐?’ 그러니까 웃으셨습니다.

네 놈이 그렇게 큰 소리 치고 해도 왜 그렇게 쫓겨가지고 이 산중에 들어왔고 도망자로 살고 있는지 알고싶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 얘기를 하니까 뭘 하나 맞은 것 같았습니다.

‘네 놈이 전생에 업을 많이 쌓아서 그래’ 이렇게 전생이라는 말을 하니까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전생이란 말이 가톨릭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네가 잘만 하면 앞으로 가는 길도 볼 수 있다’ 그러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고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냐고 했더니 그냥 해보라는 겁니다.

그때 거의 꼬임에 빠진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기 친것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라며 한 번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답답하고 도망자 지명수배자여서 괴로워서 가르친 대로 앉아서 하면서 한 일 년 이상 살다보니까 우선 마음의 원한 같은 게 많이 녹는걸 느꼈습니다.

마음 가운데 괴로움도 녹으며 이런 효험이 있는 걸 제가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부터 그 스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산 중에 몇 년간 살면서 여러 가지를 체험했습니다.강남에 처음 와서 포교하려고 한게 아니라 참선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능인선원이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느낀게 참선이 너무 어려운가 봅니다.

거기다가 두 번 째로 제가 너는 견성했냐고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러나 내가 체험한게 견성이라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자칫하면 사기치게 되는 게 아닌가? 거기다 또 하나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자기가 갈길을 확실히 이끌어주려면 어떻게 하는가 고민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많은 분들이 자꾸 밀려오니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새벽기도를 하다가 탁 깨달은게 ‘부처님을 확실히 알게 하자.

부처님을 확실히 믿게 하면 될 것 아니냐? 나도 철저히 믿고 선방에 수좌나 참선하는 사람들이 신심이 결여된 참선은 소용없다’ 신심이 밑바탕이 있고 그 다음에 의문을 화두를 챙기고 이렇게 나가야 되기에 제가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미친 듯이 천일기도를 여덟 번째 하고 있는데 기도를 하고 나니까 정말로 제가 부처님을 너무 치열하게 느끼고 사는 겁니다.내가 이렇게 이 길을 가길 잘 했습니다.

참선도 아주 중요한 수행법입니다.

세속에선 얼마나 하실진 몰라도 다른 중들도 저도 5년 7,8개월 동안 미친 듯이 살았는데 하루 온종일 그렇게 살았습니다.

시간을 무차별하게 넘어야 하고 낮이고 밤이고 화두가 웬만큼 해서 잘 들리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막하는 거지만 한 삼년 가까이 가니까 진짜로 화두가 되었습니다.여러분들께 당부 드리겠는데 관세음보살 하나만 염불하십시오.

관세음보살은 다섯 음절로 된 보석 입니다.

절대로 빈말이 아닙니다.부처님을 철저히 믿으시면 모든 재앙은 녹아집니다.

그리고 부처님 시키신 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고 그렇게 나가시면 모든 천지만물과 다 화합할 수 있고 부처님은 사랑이시고 자비이시고 지혜이신 것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 이상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불러 모시면 지극한 힘을 얻습니다.부처님을 아는 그 마음이 부처님이고 부르는 그 마음이 부처님이고 부처님 믿는 그 마음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 믿는 마음으로 나가면 점점 빛을 발하게 됩니다.

시냇물도 흘러 흘러가면 바다로 가는 것처럼 가만 놔둬도 바다로 가지 않습니까? 계속 열심히 가십시오.

부처님께서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한 번 체험을 해보십시오.

몸과 마음을 다 하면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출처:능인선원 홈페이지에서 옮김]

린포체─행복에 이르는 길

행복에 이르는 길

-라마 소파

린포체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세속적 관심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세속적 관심이란,

재물을 얻고자 하고 재물을 잃기 싫어하는 것, 행복하기를 원하고 불행을 피하고자 하는 것, 유쾌한 소리를 좋아하고 불쾌한 소리를 싫어하는 것, 칭찬받고자 하고 비판을 원치 않는 것의 여덟 가지를 말한다.

‘나’라고 불리는 것은 영원히 부정해야 할 대상이다.

한 중생일지라도, ‘남’이라고 불리는 것은 영원히 소중히 여겨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당신 인생은 남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다.

당신의 인생을 한 중생을 위해서라도 희생한다면, 가장 큰 기쁨과 가장 흥미 있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은 당신이 남들을 소중히 여길 때 시작된다.

사랑스런 친절함과 자비심을 가지고 남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당신의 삶을 그들을 위해 사는 것은행복으로 가는 길이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나를 돕고 지켜준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 일은 나를 돕고 유익하게 할 것이다.

삶의 환경이 좋은지 나쁜지는 해석에 달려 있다.

행복과 고통은 마음가짐과 선택에 달려있다.

그것은 외부환경이나 남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행복의 근원은 내마음에 있다.』

보경스님─배우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배우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

보경스님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배움이 적어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 배운 것은 적어도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 배운 것은 많은데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 배운 것도 많고 그 배움에서 이익도 얻는 사람이 있다.

배움이 적어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에 따른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배움이 적다.

그래서 그는 경전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르침에 따라서 살지 못한다.

배움이 적어도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에 따른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적지만 경전의 글자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간다.

배운 것은 많은데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가?

이익을 얻으려면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럴 때 지식이 지혜가 되고 지혜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의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폭넓게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운 것은 많더라도 경전의 글자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지 못한다.

배운 것도 많고 그 배움에서 이익도 얻는 사람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의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폭넓게 알고 있다.

그리고 배운 것도 많고 경전의 글자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간다.” (앙굿따라 니까야) 인간의 정신이 향상되는 길을 선종의 방식으로 설명 하자면 돈(頓).점(漸)이 된다.

깨달음의 깊이가 속도와 연관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논란도 또한 제공 했다.

그 핵심은 학습의 능력이다.

공부도 그렇지만, 수행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빠른 사람은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느린 사람은 절망하기 쉽다.

위에서 부처님은 네 종류 사람을 말씀하셨는데, 배움과 배움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배치하여 그 차이를 드러내셨다.

잘 배우면 이익이 있다는 것은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일 곤란한 사람이 배움이 적어 이익이 없는 사람이다.

하는 일마다 장애가 따르고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은 이 법문을 잘 헤아려봐야 한다.

많이 잘 배우고 이익도 얻는 사람은 복인이다.

이익을 얻으려면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 하다.

이럴 때 지식이 지혜가 되고 지혜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이 법문을 읽으면서 (논어) ‘계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 배움이 더딘 사람’〔生而知之 學而知之 困而學之〕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나에게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학이지지’를 꼽을 것이다.

물론 나면서부터 절로 안다면야 두말할 나위 없이 좋겠 지만, 욕심이 과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에 이정도로 부족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곤이학지’는 싫다.

배움이 더뎌서야 무슨 배움의 즐거움이 있겠는가.

아무리 둔한 근기의 소유자라도 배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참으로 친절하게 다가온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도서관장이 수도원장이 되는 코스였다고 한다.

지식은 허망하지 않아서 이생에 잘 배우면 다음생도 그만큼 밝게 시작할 수 있다.

배우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아름답고, 그 속에 삶의 즐거움이 있다.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