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스님─배우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배우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

보경스님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배움이 적어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 배운 것은 적어도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 배운 것은 많은데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 배운 것도 많고 그 배움에서 이익도 얻는 사람이 있다.

배움이 적어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에 따른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배움이 적다.

그래서 그는 경전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가르침에 따라서 살지 못한다.

배움이 적어도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는 사람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에 따른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적지만 경전의 글자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간다.

배운 것은 많은데 그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가?

이익을 얻으려면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럴 때 지식이 지혜가 되고 지혜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의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폭넓게 알고 있다.

그러나 배운 것은 많더라도 경전의 글자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지 못한다.

배운 것도 많고 그 배움에서 이익도 얻는 사람은 어떤가? 어떤 사람은 다양한 내용의 다양한 경전에 대하여 폭넓게 알고 있다.

그리고 배운 것도 많고 경전의 글자의 뜻이나 가르침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때문에 그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간다.” (앙굿따라 니까야) 인간의 정신이 향상되는 길을 선종의 방식으로 설명 하자면 돈(頓).점(漸)이 된다.

깨달음의 깊이가 속도와 연관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논란도 또한 제공 했다.

그 핵심은 학습의 능력이다.

공부도 그렇지만, 수행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빠른 사람은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느린 사람은 절망하기 쉽다.

위에서 부처님은 네 종류 사람을 말씀하셨는데, 배움과 배움에서 얻어지는 이익을 배치하여 그 차이를 드러내셨다.

잘 배우면 이익이 있다는 것은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일 곤란한 사람이 배움이 적어 이익이 없는 사람이다.

하는 일마다 장애가 따르고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은 이 법문을 잘 헤아려봐야 한다.

많이 잘 배우고 이익도 얻는 사람은 복인이다.

이익을 얻으려면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 하다.

이럴 때 지식이 지혜가 되고 지혜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

이 법문을 읽으면서 (논어) ‘계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 배워서 아는 사람, 배움이 더딘 사람’〔生而知之 學而知之 困而學之〕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다.

만약 나에게 어떤 것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학이지지’를 꼽을 것이다.

물론 나면서부터 절로 안다면야 두말할 나위 없이 좋겠 지만, 욕심이 과하면 일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에 이정도로 부족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곤이학지’는 싫다.

배움이 더뎌서야 무슨 배움의 즐거움이 있겠는가.

아무리 둔한 근기의 소유자라도 배움을 포기하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참으로 친절하게 다가온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도서관장이 수도원장이 되는 코스였다고 한다.

지식은 허망하지 않아서 이생에 잘 배우면 다음생도 그만큼 밝게 시작할 수 있다.

배우면 모든 것이 좋아지고, 아름답고, 그 속에 삶의 즐거움이 있다.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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