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말

미합중국 건국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으로 47살의 연방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Barak Obama)’가 당선되었다. 지구촌의 경찰국가로 화려하게 포장된 초강대국 미국이지만 인종갈등과 패권주의로 점철된 그들의 역사도 문제지만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럼화와 제국주의, 비인간적 폭력 등 이해하기 힘든 면이 더 많은 나라다.

그런 사회 속의 오바마 당선자 또한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2살 때 부모의 이혼, 6살 때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하여 4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고, 다시 청소년기를 하와이에서 보냈는가 하면, 컬럼비아대학과 하바드에서 정치와 법학을 공부하고는 시카고에 정착하여 사회복지활동을 하면서 주 상원의원 4선, 초선 연방상원의원으로 활약하다 일약 제 44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니 그의 말대로 상상을 뛰어넘은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 셈이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서브 프라임 사태로 비롯된 금융위기,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미국의 민심 반영’에다 워싱턴 정가에서 이 신인을 키운 것은 ‘8할이 명 연설’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가장 큰 요인은 지난 8년 간의 ‘오만과 독선과 무모함과 실패로 얼룩진 미국’이 오바마 당선의 일등 공신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요인들 가운데서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신화를 일구어 낼 수 있었던 데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뛰어난 연설이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워싱턴의 정치무대가 낯선 초선 상원의원으로서 당내 기반도 취약했던 정치 신인으로서는 내로라 하는 정치거물들과 대적하는 데는 최고의 무기가 ‘말’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알리는 중앙 정치무대 데뷔의 계기는 2004년 7월 보스턴 전당대회 연설이었다고 한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존 케리’의 배려로 기조연설을 맡은 오바마는 ‘희망의 담대함’이라는 명 연설로 진한 감동을 남긴 것이다. “진보적인 미국과 보수적인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계 미국, 아시아계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미합중국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이후 오바마는 그 해 11월 연방상원의원으로 진출했고, ‘변화와 통합, 이상과 희망’이라는 평범한 단어를 통해 미국의 가치와 미래를 강조하는 그의 열정적인 연설이 미국 유권자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 ‘오바마니아’를 양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린턴’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후 지난 8월 콜로라도 덴버에서 가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우리가 마주칠 도전들은 힘든 선택을 요구하는 것으로 공화당원 뿐 아니라 민주당원들도 낡은 사고방식과 과거의 정치를 던져버려야 합니다. 지난 8년 간 우리가 잃은 것은 임금 손실이나 무역손실의 증가 뿐 아닙니다. 우리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인식도 잃어버렸습니다. 이 목표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회복해야 우선 과제입니다.”라고 호소하며 미국인의 감성에 호소하였던 것이다. 대선 본선에서는 공화당의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가 자신의 구호인 ‘변화’를 들고 나오자 ‘돼지 립스틱’ 발언으로 오바마 답지 못하다는 평도 들었지만, 선거일 직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타계소식을 듣고는 “할머니는 전 미국의 조용한 영웅들 가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이름이 신문에 실리지는 않지만 그분들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눈물의 명 연설로 대중적 인기의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처럼 오바마의 연설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쉬운 말로 이어졌고, 일관된 주장과 ‘변화, 개혁, 통합, 이상, 희망’ 등의 어휘 위주였으며, 청취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고 그가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문화적ㆍ인종적 다양성을 체험하고 이를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강점의 소유자에다 탁월한 연설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무관심 계층에게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개혁적인 이미지를 확고히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으니, ‘변화, 개혁, 통합’의 정치를 하여 미국인의 자존심 회복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정치사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을 주길 기대할 뿐이다.

일찍이 부처님의 전도선언(傳道宣言)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문장이 훌륭한 법을 설하라”고 하셨으니 예나 지금이나 말이 인간사회에서 갖는 힘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香岩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 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8년 12월 제97호

각초+

중국 당대(唐代)의 사문 이름. *불공(不空)의 6대 제자 중 한 사람.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사람이 권세와 영예를 누리려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인 욕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잘나고 보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 인물가치를 평가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러나 잘났다는 것은 매우 속된 말일 수 있다. 남이 하는 짓이 못마땅해 비난을 할 때도 ‘너 참 잘났구나.’ 하고 핀잔을 주는 경우가 있듯이 잘났다고 말하는 것은 도덕적 허물을 두고 탓하는 말이 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잘났다는 것은 순수한 말 자체의 본래 의미로 볼 때는 남보다 뛰어났다는 뜻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쪽이 잘난 셈이 되니까 결국 못난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못난 것이 오히려 잘난 것이 되어버리는 역설적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당나라 때 명찬(明瓚)이란 스님이 있었다. 생몰연대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숭산보적(崇山普寂651~739)의 법을 이은 스님으로 되어 있다. 그가 형악(衡嶽)에 살 때 대중들이 운력(공동작업)을 할 때 그는 같이 일을 하지 않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 등 게으르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여 대중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천성이 게으른 그는 대중이 눈치를 주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양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었다. 대중들이 그를 게으른 스님이라 별명을 붙여 나찬(懶瓚) 혹은 나잔(懶殘)이라 불렀다. 나찬은 게을러 음식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는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런 스님이었으나 그가 가끔 말을 할 때 매우 뜻 깊은 말을 한마디씩 하곤 했으므로 어떤 이들은 그가 대단한 도인이라 생각했다. 그가 남악사에 있을 때 당시 조정에 있던 이비(李泌)가 모함을 받아 남악사에 와 잠시 은거하고 있었다. 이비가 스님의 행동을 관찰해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침내 밤중에 몰래 스님을 찾아 가르침을 청했다.

“말조심을 하시오. 10년 뒤에 재상이 될 것이오.” 이비가 가르침을 받고 감사를 드리고 물러났는데 명찬의 예언대로 10년 후에 재상이 되었다.

또 그가 남긴 일화에 나찬외우(懶瓚煨芋)의 이야기가 있다. 토란을 굽어 먹은 이야기다. 당시 국왕 덕종이 국사를 모실 스님을 물색하다 나찬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 궁궐로 초빙하였다. 형산의 석실에 은거하고 있을 때인데 사신이 찾아와 “천자께서 명령을 내렸으니 마땅히 그 은혜에 감사를 표하시오.” 하였다.

마침 나찬은 쇠똥을 모아 불을 피워 토란을 굽어 먹고 있었다. 입가가 시커멓게 검정색이 되었고 콧물을 길게 흘려 토란과 함께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신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먹는 데만 열중하고 있는 스님을 향해 사신들이 행장을 꾸리기를 재촉하면서 도와줄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라 했다. 이때 스님이 한 말이 “조금 비켜 서 주시오.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 라는 말이었다. 날씨가 추어 사신들의 그림자가 스님을 가렸던 모양이었다. 나찬을 끝내 국사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덕종은 나찬을 더욱 흠모하게 되었다 전해진다.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이 말은 고대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BC324)의 말과 우연히 일치된 말이었다.

인도 원정을 가던 희랍의 왕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만났다. 마침 디오게네스는 반라(半裸)의 몸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선생이 훌륭한 철인이라고들 말하던데 무척 가난한 모양이요. 내게 뭐 도움을 청할 것이 없소?” 이때 디오게네스는 일광욕 중이었으므로 알렉산더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왕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전쟁을 하러 인도로 가는 중이오.”

“전쟁을 해서 무엇 합니까?”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더 강하고 큰 나라로 만들 것이오.”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내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좀 쉬어야하지 않겠소.”

이때 디오게네스가 큰 소리로 웃었다.

“쉬려면 지금 당장 나처럼 이렇게 쉬면 되지 전쟁을 하고 나라를 키우고 나서 쉴게 뭐 있겠습니까? 대왕은 쉴 수 없을 것입니다.”

묘한 뉘앙스가 남는 말이다.

때로는 성공주의, 업적주의가 내 인생을 멍들게 하고 망하게 한다.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우리는 편안해지고 밝아져야 한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5월 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