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산 속의 집에

산당정야좌무언 山堂靜夜坐無言 고요한 밤 산 속의 집에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요요본자연 寂寂寥寥本自然 적막하기 짝이 없어 본래 그대로인데

하사서풍동임야 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저 바람은 잠든 숲을 흔드나

일성한안려장천 一聲寒雁戾長天 기러기 소리내며 장천을 날아가네

산 속의 적막한 가을 밤 풍경을 읊으면서 인간의 내면을 관조한 시다. 이 시는 너무나 많이 회자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애송시다. 인간의 본래 한 생각의 번뇌망상을 일으키기 전에는 고요한 적멸 뿐이었다. 아무 일이 없는 고요 그 자체로 존재의 의식마저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는 것도 없었고 너라는 것도 없었다. 주객이 나누어져 서기 이전의 경계, 곧 본성의 세계에는 무명의 바람이 부는 일이 없다. 법화경의 사구게(四句偈)에서도 “제법은 항상 고요할 뿐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이라고 하였다.

내가 살아가는 이 한 생에 있어서 언제부터 이토록 많은 근심과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는가? 인연이 닿아 관계가 맺어지기 전에는 무심할 뿐이었는데, 인연 이후에 이리도 그립고 초조하기만 하다. 서풍이 불어 숲을 흔든다는 것은 생멸심의 번뇌가 바람이 되어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을 말하고 기러기가 울며 하늘을 날아간다는 것은 우리들 존재의 고민이 현실에 부딪혀 물결처럼 일렁이고 있음을 뜻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내가 왜 이러는가?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희·노·애·락을 싣고 사는 인생. 이것이 바로 숲을 흔드는 바람이요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소리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10월 (제23호)

겨울동화

귀가 얼얼한 날

어머니는 새벽밥을 짓는 아궁이에

차돌멩이 두 개를 데워

창호지에 싸주시곤 하셨다

나는 그것을 무명장갑을 낀 양손에 나눠지고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찔러 넣었다

시오리 등굣길은

언제나 뜀박질로 시작되었다

나룻배가 있는 산모롱이를 돌 때면

강바람이 몹시 찼다

귀가 떨어져 나간다고 울먹이는

아랫집 순이의 두 귀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코에 코를 맞대고 비벼주면

순이는, 동산에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발그레 웃었다

오늘처럼, 귀가 얼얼하게 추운 날

매운 바람소리는 창밖에 세워두고

순이나 분이의 손 안에도 쏘옥 안기던

내 어머니의 차돌멩이같이

누구나의 마음에도 쏘옥 안기는

따뜻하고 정겨운 詩를 쓰고 싶다

文殊華 하영(시인) 글. 월간반야 2009년 1월 제98호

고산스님─“행복하려면 감사하고 미소 짓고 말 아껴라”

행복하려면 감사하고 미소 짓고 말 아껴라

조계종 전계대화상 고산스님

고산 스님께서 사자좌에 올랐다.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높이 한 번 들어보였다.

스님은 이미 주장자 법문을 마쳤는데, 주장자를 보는 이의 마음은 주장자를 떠나지 못한다.

달마대사는 (사행론)의 ‘시유관찰형색문(示諭觀察形色門)’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장자를 보고 주장자란 견해를 지으면 이는 주장자 상(相)을 보고 주장자 견해(見解)를 짓는 것이요, 마음으로 이 주장자를 보더라도 이는 주장자 상(相)이라.

법은 주장자도 없고 주장자 상도 없으니 이러한 까닭에 주장자를 봄으로 곧 주장자 법을 얻는 것이다.

일체 형색을 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고산 스님은 (유마경)을 펴서 한 구절을 독송하고 나서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 주셨다.

“중생들은 생사에 윤회합니다.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면 중생의 나고 죽는 곳에 들어가 두려움이 없어야 하며, 중생을 다 제도하고 나서야 열반에 듭니다.

보살은 죽고 태어나는 것이 자유자재하여 돼지를 제도하기 위해서는 돼지로 태어나고, 개를 제도하기 위해서는 개로 태어나며,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보살은 영화롭고 욕되는 일에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공부하는 이를 업신여기지도 않아요.

이 세상 만물에는 배울 것이 다 있어요.

그래서 이 세상 전체가 다 우리의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강은 강대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다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워야 해요.

바라밀은 미혹의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 모든 보살이 육바라밀에 의지해 행을 닦을 때는 바라밀을 부모님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데는 끝이 없어야 하며, 한량없는 보시를 행해야 합니다.

늘 용맹정진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의 공덕을 듣고 지혜의 보검으로 번뇌 도적을 베어내야 합니다.”

고산 스님께서는 매달 석왕사에서 약사재일을 맞이하여 법문을 하신다.

법문 때마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유마경)강의를 한품씩 해 주시는 것이다.

(유마경)강의를 끝낸 스님은 대중을 한 번 훑어보시고서는 다음 법문을 이어갔다.

“어떤 보살이 기도 잘하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는데, 뇌경색이라 의식이 없는 거여.

그래서 산소호흡기 꼽고 병원에 누워 있으니 그 치료비가 엄청난거라.

의식도 없이 누워있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야.

억지로 목숨 이우는 것도 그렇고 해서 자식들이 산소호흡기 빼줄라고 해도 병원에서 안 빼준다카데.

그래서 법원에 호소를 해도 1심, 2심, 3심 다 병원이 이긴다고 하데요.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그것이 다 병원이 돈 벌려고 그런다고 해요.

여러분들은 죽을 때 병원에서 호스 주렁주렁 달고 죽지 말고 그냥 집에서 편안하게 죽어요.

그것이 본인에게도 좋고, 죽고 나면 자손들에게 피해 안 끼치고 좋은 일이야.

오래 살려는 것도 다 헛된 욕심이지.

아무 소용없어.”

고산 스님은 법문을 통하여 육신의 무상함을 일깨워주시는 것이다.

육신의 공(空)함을 일깨워주는 소동파와 불인요원선사의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어느 날 홍주자사로 부임해 간 소동파는 명성이 자자한 불인요원 선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불인 선사의 방에는 앉을 의자조차 없었다.

선사는 소동파에게 말했다.

“마침 오늘 내 방의 의자를 누가 빌려갔으니 아무 데나 앉으십시오.”

소동파는 선사를 좀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한마디 하였다.

“의자가 없으면 스님의 몸뚱이를 좀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동파의 말에 불인 선사는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내가 문제를 하나 낼 테니 맞추면 자사의 의자가 되어드리겠지만,

만약 그대가 틀린다면 옥대(玉帶)를 풀어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대는 원래 공(空)한 것인데 자사는 어디에 앉으려 합니까?”

‘사대는 원래 공하다’는 한 마디에 말문이 막힌 소동파는 불인 선사에게 옥대를 풀어주고는 가르침을 청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저 염불 열심히 하여 자기 갈 날을 준비해야지.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죽는 것을 모르고 자꾸 욕심부리지.

어리석음, 탐욕, 세상에 대한 분노를 놓아버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마지막 가는 준비 잘 하는 것이지.

탐진치 만큼 무서운 것이 없어요.

그리고 빨리 성불하고 싶으면 교만한 마음이 없어야 되요.

상대방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낫다 싶으면 상대방을 얕보고 그래.

남을 업신여기면 염불, 간경, 기도 등 무엇을 해도 성불하기 어려워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전생에 상불경보살로 살 때 돼지보고도 부처가 될 것이라 했고, 거리에 있는 무엇을 보고도 다 부처가 될 것이라 하면서 공경했어요.

우리는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내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공경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것이 바로 성불하는 길이고 부처 되는 길이지.

요즈음 우체국이다 하고 전화해서 돈 다 빼가지고 가는 그런 사기단이 있다고 하데.

보살들이 피해를 당하고 나서는 ‘스님 어쩌까에?’ 하는데 내가 뭐 판검사가 어찌 아노.

자신이 잘 해야지.

그리고 요즈음 뉴스 보니까 부모에게 몹쓸 짓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짓이 부모에게 불효하는 거야.

열 달 동안 뱃속에서 힘들게 키웠고 세상에 내 보낸다고 힘들었고 또 키운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 은덕을 모르고 불효를 해.

타인을 해치는 것보다 부모를 해하는 것이 더 나빠요.

지금 말법시대라 하지만 부처님 시대나 지금 시대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요.

단지 부처님 재세에는 착한 사람이 많고 나쁜 사람이 적었을 것이고, 말법 시대에는 착한 사람이 적고 나쁜 사람이 많은 것이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고민을 안고 고산 스님을 찾아온다.

그럴 때면 고산 스님은 사람들에게 분별심을 버리라고 한다.

좋은 날을 택해달라는 이에게는 비가 오면 촉촉이 와서 좋고, 맑은 날은 맑아서 좋고, 바람이 부는 날은 선선해서 좋고, 구름이 낀 날은 끼어서 좋으니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일러준다.

좋은 방위를 찾는 이에게는 불교는 무남무북무동무서(無南無北無東無西)라, 우주는 갓이 없기 때문에 동서남북이 본래 없으며 중앙이 본래 없는데 어디에서 중심을 잡아서 동서남북을 정할 것이며 방위를 정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 한단다.

기도 염불을 해도 부자가 안 된다고 하는 이에게는 남에게 베풀어 복덕종자를 심으라 한다.

스님은 삿된 법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정법을 간곡히 일러주신다.

그래서 스님은 세납이 칠십이 훨씬 넘었건만 법문을 청하는 이가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달려가 바른 법을 들려주신다.

“부처님 말씀에 첫 번째 생각할 때 종자가 마련되고, 두 번째 그 생각을 거듭할 때 싹이 틔고 세 번째 생각을 하면 스스로 열매를 거둔다고 했어.

그러니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배운 사람은 함부로 나쁜 생각, 잡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은 함부로 모든 생각을 일으켜서 많은 종자를 심어서 그 열매를 거두는 거지.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사람들은 분주하게 끝없이 업을 짓고 과보를 받아요.”

고산 스님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요, 둘째는 항상 미소를 지을 것이요, 셋째는 말을 아끼라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일체만유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몽을 깨우쳐주시니 감사한 것이요, 부모님이 나를 낳아 키워주시니 감사하지요, 나를 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입 아프게 꾸짖어주는 것이 감사하지요, 나를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손 아프게 채찍질해 주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말을 아껴야 합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 항상 침묵하고 말을 조심하면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인데, 들은 대로 본 대로 말을 쏟아낸다면 날마다 시시비비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니 행복할 수가 없지요.”

고산 스님은 출가 이후 64년 동안 수행과 포교, 불사로 일관된 실천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논어), (맹자), (중용), (대학)등 사서를 배웠을 정도로 머리가 뛰어났다.

초등학교 때 뒷동산에서 친구랑 한시(漢詩)를 주고받으며 놀았을 정도이다.

일찍 너무나 갑작스럽게 어머니를 여윈 고산 스님은 출가하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출가를 결심했던 분이다.

꿈에는 더러 어머니를 만나기도 했겠지만,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면 100일 관음기도를 모시기도 여러 차례였다.

1000일 관음기도를 올리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조석 예불 끝에 삼십분간 관음 정근과 발원문은 빠진 적이 없다.

스님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라 한다.

고산 스님이 범어사에서 동안거 결제를 했을 때이다.

이때 가행정진까지 너끈히 해내었다.

입승스님이 죽비를 들고 돌아다니다 졸고 있는 고산 스님의 어깨를 힘껏 세 번을 내리쳤다.

그 죽비에 맞는 순간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한 생각이 번쩍 하고 일어났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진짜 나를 치지 못하고 송장만 치는 구나”하고 큰소리로 외쳤더니 입승 스님이 할을 했다.

입승스님의 할이 끝나기가 무섭게 ”역부여시 도봉타월(亦復如是 掉棒打月, 또한 그와 같은 할은 방망이를 잡아 달을 치는 격이라는 뜻)이라 했다.

그랬더니 조실스님께서 ‘니우끽철봉 석인유혈루(泥牛喫鐵棒 石人流血淚, 진흙소가 쇠망이를 맞으니 돌사람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뜻)이라 했다.

고산 스님은 조실 스님의 그 말씀을 듣고 순간 뇌리에 번개처럼 한 생각이 지나가서 큰소리로 “알겠습니다”라고 했단다.

고산 스님은 은사 스님이신 동산 스님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동산 스님은 대중이 차고 넘쳐도 방부를 받지 않는 일이 없었으며, 대중과 함께 예불과 도량청소도 하셨어.

은사 스님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 지금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프거나 슬프거나 상관없이 예불에 빠지는 일은 없어요.”

고산 스님은 비구계를 받은 후부터 경(經), 율(律), 론(論) 삼장을 꾸준히 익혔다.

28살이 되던 1961년 직지사에서 고봉 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을 받았다.

그때 학업을 증장시키기 위하여 고봉 스님을 모시고 김천 청암사 극락전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고봉 스님의 명성이 자자한 터라 청암사에 비구 비구니 학인들이 오십 명 가량 모여들었다.

청암사에서 고산 스님은 강사로 임명되어 자신의 공부를 더욱 증강시킬 수 있었다.

고산 스님은 1966년 고봉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새벽 예불 후 좌선 중에 홀연히 한 경계가 있어 게송을 지었다.

심행일장몽(心行一場夢) 마음 작용은 한 바탕 꿈이요 식심즉시각(息心卽是覺) 한 마음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라.

몽각일여중(夢覺一如中) 꿈과 잠깸이 한결같은 가운데 심광조대천(心光照大千) 마음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도다.

고산 스님은 게송을 읊고 나서 “이 우주에 오직 나 하나뿐이라”고 했다.

그러자 고봉스님은 “이제 되었다.

앞으로 매이지 말라”면서 인가하셨다.

스님은 강사, 율사, 선사로서 어느 한 분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여 여쭈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용력가중배 사력십중배(用力加重倍 死力十重倍)라는 말이 있어요.

힘을 쓰면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이 나오고, 죽을 힘을 다하면 평소보다 열배의 힘이 나온다는 말이지.

사람이 신심을 내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

고산 스님은 살아가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초발심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학생이 입학할 때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우등생으로 졸업 못할 사람이 없고, 결혼할 때의 마음으로 산다면 싸울 일이 없고 이혼할 일이 없을 것이며, 회사원이 입사할 때 마음으로 근무한다면 회사도 발전시키고 진급도 할 것이란다.

하는 일이 시들하게 느껴질 때면 ‘첫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볼 일이다.

첫 마음으로 잘 살고 있는지 점검한다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기에 우리는 날마다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약력

1945년 범어사에서 동산화상을 은사로 득도.

48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56년에 동산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수지.

1954년부터 1970년까지 20여 안거 성취.

강원에서 삼장(三藏)을 연구하였고, 61년 직지사에서 고봉호상를 법사로 건당 및 전강을 받음.

72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석암화상으로부터 전계를 받음.

조계사, 은혜사, 쌍계사 주지를 역임.

98년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

2008년 조계종 전계대화상으로 추대.

저서로는 (우리말 불자 수지독송경), (반야심경 강의), (대승기신론 강의), (사람이 사람에게 가는 길), (지옥에서 극락으로의 여행) (지리산의 무쇠소) 등 다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