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선사의 깨달음 근대 한국 선불교의 선각자,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선사가 24살 나던 해인 1872년(高宗 9년) 대중들의 바램으로 동학사에서 개강하자 사방의 학인들이 마치 물이 동쪽으로 흐르듯이 몰려왔다. 선사는 31살 되던 해 1879년(高宗 16년) 여름, 어린 시절의 스승인 계허화상을 찾아뵙기 위해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났다가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민가의 추녀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경허선사의 깨달음 계속 읽기
[월:] 2015년 03월
돈하고도 이별한 지 이미 오래 되었소
나는 돈하고도 이별한 지 이미 오래 되었소 경허선사가 구한말의 불교교단을 이끌고 있던 월초스님(1858~1934)이주지로 계시던 광릉 봉선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불교교육기관인 명진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한월초스님은 경허선사를 반가히 맞으며 말했다. “오늘 스님들에게 법문을 해주신다면 곡차를 실컷 대접하겠습니다.” 경허선사는 이미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는 표정으로 나직히 대답했다. “나는 곡차를 못마실 지언정 법문은 못하겠습니다. 법문이라는 법문은 모두 흐르는… 돈하고도 이별한 지 이미 오래 되었소 계속 읽기
극락 왕생한 수산 큰스님
대구 염불선원에 주석 하셨던 수산 큰스님은 법도 있는 불교 집안의 후손인 부친 안주원씨의 3남 중 차남으로 1906년 2월 20일에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였다. 15세 때부터 불교에 뜻을 두고 출가할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때는 이루지 못하고 한문 서예학습에 전념하면서 한의학을 배워 32년부터 한의원을 개업하였다. 51년에 드디어 경남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스님을 은사로 출가득도 하였으며 54년도에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극락 왕생한 수산 큰스님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