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스님의 용궁설법 석 보양(釋寶壤) 의 전기에는 그의 향리(鄕里)와 씨족을 싣지 않았다. 청도(淸道) 군청의 문적(文籍)을 살펴보면 이렇게 실려 있다. 천복(天福) 8년 계모[943]― 고려 태조 즉위 제 26년이다. ― 정월 일의 청도군(界里) 심사(審使) 순영(順英) 대내말수문(大乃末水文) 등의 주첩(柱貼)공문에 운문산 선원(雲門山禪院) 장생표(長生慓)는 남쪽은 아니점(阿尼岾), 동쪽은 가서현(嘉西峴) ― 운운(云云)했다.―하며 사원의 삼강(三綱)의 전주인(典主人)은 보양화상(宝壤和尙)이요, 원주(阮主)에 현량상좌(玄兩上座) 직세(直歲)에 신원선사(信元禪師) ― 위의 공문은… 보양스님의 용궁설법 계속 읽기
[월:] 2015년 02월
혜통스님이 용의 항복을 받다
혜통스님이 용의 항복을 받다 혜통(惠通)은 그 씨족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속인으로 있을 때, 그의 집은 남산(南山)의 서쪽 기슭 은천동(銀天洞)의 동구(洞ㅁ) – 지금의 남산사(南澗寺) 동리(東里)이다-에 있었다. 하루는 집 동쪽 시내위에서 놀다가 한 마리의 수달을 잡아 죽여 그 뼈를 동산 안에 버렸다. 그 이튿날 새벽에 그 뼈가 없어졌으므로 핏자국을 따라 찾아가 보았더니 뼈가 예전에 살던 구멍으로… 혜통스님이 용의 항복을 받다 계속 읽기
부처님의 그림자가 독룡과 나찰의 항복을 받다
부처님의 그림자가 독룡과 나찰의 항복을 받다 고기에 이런 기록이 있다. 만어산(萬魚山)은 옛날의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인데, 그 옆에 가라국(呵曝國)이 있었다. 옛날 하늘에서 알이 바닷가로 내려와 사람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으니, 곧 수로왕이었다. 이때 그 영토 안에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그 못 안에 독한 용이 살고 있었다. 만어산(萬魚山)에 다섯 나찰녀(羅刹女)가 있었다. 그 독한 용과 서로 오가며 사귀였다. 그러므로 때때로… 부처님의 그림자가 독룡과 나찰의 항복을 받다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