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그가 뛰어난 학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문에는 “그가 일체의 도리를 모두 다 통달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은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송고승전』의 저자 찬녕(贊寧)은 학승으로서의 원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원효는 진리의 성을 용감하게 공격하고, 문진(文陣)에서 종횡무진 당당히 분투해서, 나아갈 뿐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삼학(三學)에 두루 통하여 그 나라에서는… 원효의 학문적(學問的) 성과(成果) 계속 읽기
[카테고리:] 원효대사법문
원효의 생애(生涯) Ⅱ
원효는 44세이던 문무왕 원년(661년)에 다시 도당유학의 길을 나섰습니다. 물론 이 때도 의상과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남양만이 멀지 않은 직산의 어느 옛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송고승전』의 ‘의상전’에 전하는 원효의 오도(悟道)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효와 의상은 중도에 심한 폭우를 만나 길 옆의 토감(土龕) 사이에 몸을 숨겨 회오리바람과 습기를 피했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 보니, 해골이 있는 옛무덤이었다.… 원효의 생애(生涯) Ⅱ 계속 읽기
원효의 생애(生涯) I
원효는 삼국간의 전쟁과 통일이 있었던 격변의 7세기에 살았습니다. 경산에서 태어나 15세경에 출가해 수행과 교학에 매진하는 젊은 시절을 보냈고, 40세 전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무렵 그는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薛聰)을 얻고 환속하여 소승거사(小性居士)로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가무(歌舞)로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누비며 대중을 교화했고, 밤을 지새우며 교학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686년(신문왕 6)에 70생애를 혈사(穴寺)에서 마감했습니다. 원효는 해방자였고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온갖… 원효의 생애(生涯) I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