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하추리 기린산에 자리한 용화사 법보선원. 1월27일. 쌩쌩 거리며 날아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청계교(淸溪橋)를 건너니 저 멀리 선원이 보인다. 일주문에서 다리 입구까지도 추운데, 다리를 건너니 더 차갑다. 얼얼한 차가움은 마치 생사를 걸고 정진하는 선객의 기백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000년 하안거 때부터 정식 개원된 인제 용화사 법보선원. 큰방 대중 23명, 외호대중 1명 등 총 24명의 납자들이 지금 밤낮으로 눈을 밝히고 있다. 한주(閑主)소임을 맡고 있는 한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선원장 송담스님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는 의심(疑心)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듯, 닭이 알을 품듯 철저히 의심할 것을 납자들에게 제일 강조합니다. 깨달음도, 견성도 생각하지 말고 의심에 모든 것을 집중하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오직 의심만 가득 차도록 하라. 이것이 선원장 스님의 가르침입니다.”
의심은 분심(憤心).신심(信心)과 함께 ‘간화선의 삼요(三要. 세 가지 요긴한 것)’ 가운데 하나. 많은 스님들이 의심을 강조했지만 중국의 박산무이(博山無異. 1575∼1630) 선사는 〈참선경어〉에서 특히 ‘의심’을 강조했다. “참선하는 데는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아! 옛날 큰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닫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달으며, 의심하지 않으면 아예 깨닫지 못한다’고.”
선원장 송담스님이 강조하는 또 하나는 알음알이를 내지 마라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보다 우직한 사람을 송담스님을 더 믿음직스럽게 생각합니다. 우스개 말이지만 가위로 혀를 잘라 버릴 정도로 알음알이 내는 사람을 싫어합니다”고 한주(閑主)스님은 설명했다. 노자(老子)의 말처럼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知者不言),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言者不知).” 〈무문관〉에 나오는 ‘동산삼돈(洞山三頓)’은 이와 관련해 주목된다. “동산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사도에서 왔습니다.’ 운문스님이 다시 물었다. ‘이번 여름은 어디에서 보냈나.’ ‘호남의 보자사에 있었습니다.’ 운문스님이 세 번째로 물었다. ‘언제 거길 떠났지.’ 동산스님은 ‘8월25일입니다’고 답했다. 이에 운문스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세 차례나 두들겨 팰 걸 참는 것이니 물러가게.’ 다음날 아침. 동산스님은 운문스님에게 문안드리며 물었다. ‘어제 세 차례나 맞을 짓을 했다는데 대체 제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운문스님이 말했다. ‘그런 식으로 강서와 호남을 돌아다녔더냐. 이놈!’ 동산스님은 이 말에 크게 깨달았다.”
화두에 나오는 운문스님(雲門文偃. 864∼949)은 운문종의 개창자이고, 동산스님은 동산양개(洞山良介. 807∼869)가 아닌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스님. 우직한 동산스님이 진득하게 물었기에 마침내 ‘무서운 절벽의 공포와 고통을 거쳐 천지간에 자유로운 사람’이 됐다.
문득 ‘법보선원 바깥 공기만 찬 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주스님의 설명을 듣고 이것저것 따져보니 선원 안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새끼를 절벽에 떨어뜨려 강하게 키우는 사자처럼, 활연대오(豁然大悟)를 위해 선사들도 매정하게 제자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린다. 그것이 진정 스승의 정이요, 가르침이리라.
법보선원만의 특징은 또 있다. 납자들은 전강스님(1898~1975)의 ‘육성법문’을 매일 아침 1시간 정도 듣는다. 세수 33살의 나이에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됐던 전강스님은 법(法)에선 은사도 제자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지금의 법보선원 선원장 송담스님은 전강스님이 광주의 한 시장에서 가게를 하며 키운 제자. 온갖 뒷바라지를 해온 송담스님이 10년 간 묵언(일체 말하지 않음)정진을 끝내고도 ‘한 소식’을 전하지 못하자, 전강스님은 아끼던 그를 사정없이 내쳤다고 한다.
속깊고 매서운 스승의 제자사랑에
‘고양이가 쥐 잡듯, 닭이 알 품듯’
24명 납자들 밤낮도 없이 눈 밝혀
그런 스님의 법을 이은 송담스님은 스승이 입적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조실 자리’를 거부하고, 전강스님의 법신(法身)을 조실로 모시고 수좌들을 지도한다. 전강스님의 육성법문(=법신)이 법보선원에서 매일 납자들을 지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강스님은 특히 ‘의심’을 강조한다. “참다운 선을 하려면 일체 선악 경계에 분별이 없고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아니해야 하며 반드시 간화선을 해야 한다. 화두를 참구하는 데는 들어서 알 수 없고 생각해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화두를 용맹스럽게 꼭 잡고 의심을 놓치지 말아야 필경에는 그 의심이 잡혀 들어와 뚜렷하게 나타나며, 그 의심 전체가 한 덩어리 되어 내외가 없고 동서가 없으며, 또한 백만인 중에 있더라도 한 사람도 있는 줄을 모른다. 이렇게 의단이 차면 언하(言下)에 대오하여 해탈락을 얻게 된다.
그리고 급히 스승을 찾지 않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최상승법을 깨달은 선지식을 찾아 바른 길을 지시받아야 한다. 스승을 잘못 만나면 외도소견만 듣고 그것을 말하기까지 하게 된다. 이 몸을 잃은 후에는 정법을 만나기 어려우니, 육신을 가진 이 기회에 용맹정진 하여 기어코 본래면목을 깨달아야 한다. 금일 내가 참선법을 닦는 정법학자에게 권하노니, 평시에 구두선(口頭禪)만 익혀서 도를 통달한 것처럼 말하나 경계를 당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홀연 죽음이 닥치면 무엇으로 생사를 대적하겠는가. 다만 남을 속여 왔으니 이 때를 당하여 어찌 자기마저 속일 수 있으랴.(전강스님 법어 중에서).”
법보선원을 나왔다. 차가운 것은 여전했지만 들어올 때와는 뭔지 모르게 다른 것 같았다. 지난 1978년 법련사 불교학생회 초청법회에서 송담스님이 했다는 법문이 차가운 바람 사이로 들려왔다. “여러분에게 ‘참나’를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얘기해 드릴 수 있지만 깨달음 그 자체는 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님도 여러분에게 깨달음을 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실천을 통해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