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송담 두 선지식 사제지간의 정

전강-송담 두 선지식의 사제지간의 정은 .
피와 살을 나눈 부모보다도 더 깊은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
23세 때 전남 곡성 태안사에서 깨달음을 얻고 33세의 나이로 .
통도사 보광선원의 조실로 추대될 정도로 선풍을 드날렸던.
전강 선사는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거듭할 때도 .
제자의 수행을 돕기 위해 실로 눈물겨운 행적을 보였다. .
행여 제자인 송담에게 해가 올 것을 걱정하여 집 천장에 숨겨두고.
스스로 구멍가게를 열어 제자를 도운 일화는 .
두고두고 사표가 되고 있다.그러한 전강선사의 예측대로 .
송담스님은 오늘날 한국 선종의 선맥을 이끌어 가는 거목이 되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정휴스님이 <전강평전>(우리출판사)에서.
서술한 것처럼 “10년 벙어리로 오도하지 못하면 다시 10년간 .
눈까지 감아버리려고 했다”는.치열한 구도와 스승의 배려에 힘입어 .
스님은 홀연히 생사의 대의를 깨쳤으니,10년 묵언수행을 깨고 .
진여 대도에 이르는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읊었다.

黃梅山庭春雪下
寒雁 天向北飛
何事十年枉費力
月下蟾津大江流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을 울며 북을 향하여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간 헛되이 힘을 낭비하였는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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