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 묽은 불교신문 1997년8월 26일자 하안거 해제 법문 무상무념의
도리를 읽어보고 그때 당시 초등학교 일년차 교사인 딸이 방학을 한 때라
생전 처음 1박2일 일정으로 용화사 일요법회를 참석하러 갔다
토요일 저녁은 그 곳에서 쉬고 다음날 새벽예불을 보고
화사하게 밝아지는 여명을 우리 모녀는 가슴으로 안았다
드디어 2시는 닥아오고 우리 모녀는 아니 나는 환희와 설레임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뵙고 싶어 법좌 가까이 자리를 잡았다
딸은 긴장한 나를보고 엄마 그렇게 좋아요
나는 곧 너무 잘 온 것같다 너무 행복하다 더욱이 딸이 옆에 있어
너무 좋다라고 하며 손을 잡아 주었다
송담 선원장 스님께서는 법좌에 오르시기 전에 삼보예경을 올리시고
전강 은사님(조실스님)의 법문을 이십여분 들으시며 흐트림 없이
조실스님 진영을 응시 하시었다 이어 법좌에 오르시니 나의 안목에는
한떨기 고고하고 순결한 목련과 같았다
법회를 마치고 나의 아쉬움은 퇴장하시는 스님 뒤를 슬슬 따라 나갔다
그리고 조실스님 사리탑을 잠시 예경하려는데 갑자기 폭우가
무섭도록 내려서 우리 모녀는 법당밑 어느 방문곁으로 비를 피했는데
스님의 시중을 드시든 스님 한분이 나오시어 갑자기 웬비야, 하시며
우리보고 어디서 왔느냐 물으시었다 대구에서 왔습니다 하니까
비가 너무 많이오니 잠시 스님방으로 들어오라 하시고 친절히 도와 주시었다
그분이 그 당시 큰스님 시자스님 이셨고 비를 피한 곳이 스님방 곁이었다
스님방으로 안내한 시자스님은 이것도 귀한 인연이니 큰스님께
친견의 인연을 주십사 청해보겠다 하시고 원래 출,재가,공부자들에게
엄격하시어 친견을 안하시지만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으니
청이나 드려보자 하시었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살짝 맺히었다
잠시후 시자스님께서 삼배만 드리고 나와야 된다고 하시고
조심스레 일러주시며 선원장스님 방안으로 안내해 주셨다
우리 모녀는 삼배를 공손히 올리자 앉기를 권하시고 잠시 침묵하시고
딸에게 어디서 왔느냐 대구에서 왔습니다
니가 따라 왔느냐 니가 모시고 왔느냐 물으시니
제가 따라 왔습니다 그래 잘했다
이뭣고,! 하는 이 길 밖에 없어 잘모시고 가거라
이것이 스님과 그 어려운 친견의 짧은 모녀와의 대화
전부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날씨는 거짓말 같이
햇살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고,,,짧은 순간의 친견은
착시를 일으켰던 실지로 스님의 법상이 방광을 하셨든 우리
모녀는 알수없지만 우리 모녀의 눈에는 동시적으로
선원장스님의 법신에서 법광명을 보았다 놀라운 법신에서 방광이,!
집으로 돌아오는중 기차를 타고 딸과의 대화에서 *어머니도
그렇게 보이셨어요 라고 하는 딸에게, 엄마가 눈을 몇번이나
깜짝거려 보았으나 틀림없는 청정의 법광명이었다 라고 하였다
그 이후 두번의 친견은 있었으나 한 말씀도 남겨주시지 않으셨지만
이뭣고,! 하는 이 길 밖에 없어 이 뭐고,! 이 세글자 아마
눈감는 날까지도 길이 함께 가야할 나의 자유를 찾는 동행자요
살얼음을 걷는듯 추호도 함부로 할수없는 세글자의 정신,
이 더이상의 음식을 달리하시거나 누구누구 근기를 따라
달리 처방하신적이 없으신분 오직 하나 금생의 한가지 음식
이뭣고,! 아마 송담스님께서 굳이 다른 음식을 섭취 하시게
될일이 생긴다면 결정코 중생들도 그 음식을 맛보게 되겠지만
그럴리는 만무하실 것같다 나는 십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선원장스님은 나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법이
변하지 않는한 금생에 달리 새로운 선지식의 인연은 끝이 아닌가 한다…()
송담스님 게송중에 특별히 남는 게송이다
생사의 진로를 믿되 해탈을 한다는 것은 큰 일이다
화두를 챙겨서 활구하여 용맹정진 해야 할 것이다
한바탕 추위가 뼈골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어찌 매화꽃 향기의 사무침을 얻을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