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 형제 여러분,
오늘은 부처님 출가재일이어서 아마 제대로 하는 예식에서는 예참 때 부처님의 팔상도를 일일이 되뇌이면서 예경을 올리고 공야을 올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 모두가 그 뜻을 함께 하고 있을 것을 믿으면서 오늘은 관례대로 그냥 진행을 했습니다.
부처님, 일찍이 이미 이루신 부처님,
머나먼, 다시 헤아릴 수 없고 생가할 수 없는 머나먼 과거겁에 이미 이루신 부처님, 구원실성(久遠實成) 석가모니불이라고 그러십니다.
부처님께서 대자비의 구름을 일으키시어 감로의 물줄기를 이 땅에 내리시어서 중생들의 눈을 열고 그 생명을 가꾸어 진실생명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대비의 걸음, 이 땅에 오신 그 자취가 바로 팔상성도(八相成道)의 자취인 것입니다.
도솔천에서 강림하시고, 룸비니에서 탄생하시며, 사문을 돌아보시고, 성을 넘어 출가하시고, 보리수 하에서 마군을 항복 받으시고,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을 시현하시던 그 사이 그 하나하나가 부처님의 지극하신 자비이시고 지극하신 지혜이시고 지극하신 은혜의 물줄이이십니다.
오늘 부처님의 출가재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의 감격이 다시 새롭습니다. 격한 감동 억누를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석가모니 세존께서 이 땅에 오셔서 법을 설하시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성도(成道)에 있습니다.
성도, 성도를 가져온 직접적 계기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출가입니다.
출가, 이 세상 삶들이 그처럼 즐기고 달게 여기고 애착으로 붙들고 있었던 그 세간 그 모두를 버리시고 진리를 향해서, 무상법을 향해서 그 모두를 버리시고 나아가셨습니다.
팔상성도에서는 사문을 돌아보셨다고 하십니다마는 어쨌든 이세간을 두루 돌아보시고 이 세간 모두가 불 붙은 집이라는 것을 보셨습니다. 불 붙은 집. 잠시도 쉬지 않고 불길이 맹렬히 솟아오느는 그 속에 철 모르는 어린 아기들이 거기서 놀고 있는 것을, 장난감에 정신 팔리고 있는 것을 부처님은 지켜보셨습니다.
이 땅 범부들이 하루하루 죽음의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고, 모두가 늙고 병들고 죽음을 향해서 한결같이 달려가고 있건만 모두가 태연스럽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에 눈을 뜨신 것입니다.
모든 중생이 죽음의 길을, 세간적인 종말의 길이 눈 앞에 닥쳐있는 것을 보지 않고 애착으로써 거기에 빠져서, 혹은 망각의 수렁에 빠지고 혹은 자기 기만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거기에 빠져들고, 혹은 그릇된 사상에 물들어서 거기에 또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범부들을 보신 것입니다.
이들 죽음의 길을 향해서 순간의 쉼도 없이 달려가고 있는 이 범부들, 이것을 건지기 위하여 부처님이 출가하신 것입니다.
출가는 죽음에 대한 도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불난 집에 집이 불타듯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죽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눈감고 지나갔고, 망각으로 혹은 자기 기만으로, 혹은 그릇된 사상에 물들어서 망연하게 지나갔지마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것을 바르게 보시고 죽음에 항거하고 죽음에 도전해서 죽음을 극복할 용기를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출가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궁극적인 대도를 성취하셔서 진리의 길, 생명의 영원한 진리생명, 모든 중생이 진실한 법성진여, 그 영원히 멸하지 않는 진리광명인 것을 보아내셨습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성도는 죽음에 대한승리요, 부처님의 설법은 일체 중생 모두가 죽음을 이겨냈다 하는 일체 중생 승리의 노래라고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도 죽음을 대항하려고 눈뜬 사람이 없고, 아무도 죽음을 대항해서 이긴 사람이 없고, 이겨서 이 과실을 온 중생에게 나누어준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세존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그 일을 해내셨습니다. 혹 어떤 형제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셨다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으로 부처님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부처님은 진리의 몸이십니다. 법이 몸이시며, 항상 머무는 몸이시며, 멸하는 몸이 아니시며 변하는 몸이 아니시며, 불가괴신(不可壞身)이라 결코 허물어지는 몸이 아니시며, 비잡식신(非雜食身)이라 음식을 먹어서 지탱하는 몸이 아니시며, 금강신이며, 허물어지지 않는 견고한 몸이시며, 부처님은 법의 몸이시라 법신입니다.
이 부처님의 불멸의 몸을 보는 사람이 바로 부처님의 몸이 일체 중생의 몸인 것을 또한 함께 보는 것입니다. 우리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도가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깊이 생각합니다. 크신 은혜 이와 같이 이 땅에 부어지고 참으로 한없는 감로와, 죽음이 없는 감로가 끊임없이 이 땅 위에 부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오늘 2월 8일 세존 출가재일입니다.
흔히들 집을 나와 머리 깎고, 온갖 몸꾸밈을 버리고, 모든 아름다움을 뭉개버리는 재색의 옷을 입고, 도를 닦으시는 스님들처럼 생활하는 것을 출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들 겉모습만 보고 한 출가지요. 그래서 그것을 몸출가라고 합니다. 몸, 몸은 세간집에서 나왔고, 몸은 세간의 그 아름다운 꾸밈 그 모두를 버려서 회색으로 물들였으며, 머리 깎고 수염 깎고 일체 몸다듬을 모두 버리고 수행에 몸바치는 것을 몸출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면적인 출가가 있습니다. 출가자인 스님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애착을 버리는 것이요, 탐욕을 버리는 것이요, 번뇌의 불집에서 나오는 것이라. 번뇌의 불집, 거기서 뛰어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탐욕을 버리고 욕망을 버리고 번뇌의 불집에서 나온 이것을 마음의 출가가 합니다. 우리 스님들은 모두가 몸출가 마음출가를 배워서 닦으신다 하지만 우리 재가형제들은 그렇 수가 없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마음출가 몸출가 그 모두에 못지 않는 결정적인 출가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외아들 라훌라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을 때 비야리성에 있었던 이야기가 『유마경』에 나옵니다. 성내에 있는 장자의 아들들이 모여서 라훌라에게 말을 겁니다.
“당신은 왕자로서 장차 임금이 되실 사람인데 그 자리를 버리고 출가했으니 출가해서 얻은 이익이 무엇이오? 무슨 공덕이 있소?”하고 묻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라훌라는 세밀하게 이와 같은 공덕(이익)이 있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 자리에 유마 거사가 나와서 “출가는 그런 이익을 타산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하고 출가의 본의를 설명하시고 거기 모였던 동료들한테 묻습니다.
“왜 당신들은 출가하지 않는가?”
동료들은 대단합니다.
“저희들이 듣기에는 부모님이 허락하셔야 출가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때 유마 거사가 대답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거 이것이 진출가입니다. 그것으로 구족합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완전한 출가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 것 이것이 진출가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발보리심 출가라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형제들 어떠합니까? 모두가 무상보리심을 발하셔서 이 자리에 모이셨다면 우리 형제들 모두가 출가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발보리심 출가자는 어떠한가? 먼저 그 마음에서 무상의 대도, 부처님의 깨달음, 우리의 진실생명을 자신 가운데서 실현하고, 자신 가운데서 확인하겠다고 결정신을 일으킵니다.
두 번째 그러한 진실한 생명, 진실한 진리생명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 일체행, 일체시에 그 모두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바로 보현행입니다. 반야바라밀로 진실한 생명을 끊임없이 비추고, 보현행으로 끊임없이 진리의 행을 전개해간다는 것, 이것이 발보리심 출가한 사람들의 행입니다. 이 점은 우리 형제들 발보리심 출가자로서의 부끄러움이 없으리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만약 스스로 돌이켜보아 부족함이 있다면 다시 생각을 돌이켜서 ‘우리는 비록 재가이지만 마음출가를 한 사람이다. 발보리심 출가한 불자다. 바라밀 행자다.’ 이렇게 다짐하면서 우리의 행을 돌이켜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되도록 우리 스스로를 깊이 돌이켜 본다면 오늘 뜻있는 출가재일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출가에 있어서 부처님께서 남기신 저때의 말씀은 우리에게 출가인은 어떤 생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에서 나오시던 그날 밤 부처님 스스로 읊조리신 대목이 있습니다.
“내 마땅히 일체 중생 가운데 구호가 없는 자에게 구호자가 되고, 양육을 받지 못하는 자에게 양육사가 되고, 집이 없는 자에게 집에 되어 그의 의지함이 되리라.”
“일체 중생을 위해서 무상대법을 깨달아서 그에게 끝없는 위신력을 부어 주시리라.” 하는 것을 마음 속에 깊이 다짐하고 계십니다. 집을 나오셔서 출가하시던 그 날 새벽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 전날 부처님은 아버님에게 말씀드립니다.
“소자는 일체 중생에게 광명이 되고자 합니다. 생사를 극복해서 중생들에게 생사 없는 땅, 안락의 땅을 열어주고자 합니다. 부왕께서는 허락하소서.” 하고 아버지이신 정반 왕에게 말씀드린 대목이 있습니다. 여기 무상대도를 위해서 몸바치고, 몸바친 성과를 일체 중생에게 베풀겠다 하는 큰 뜻이 거기에 계십니다. 출가의 의지 내면에 이런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 성을 넘으시기 전에 말을 끌어왔을 때 말을 붙들고 스스로 마음 속을 다지는 것입니다.
“내 무상법을 깨달으리라. 내 무상도를 깨달으리라. 내 무상도를 이루리라.” 하고 자기 마음 속에 굳게굳게 다짐합니다.
견고한 신념, 당신의 마음 속에는 반석같이 들어앉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출가자의 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그 다음에 성문 밖을 나가실 때 마왕 파순이가 와서 속삭입니다.
“태자여 한 이레(일주일) 기다리시오. 이레가 지나면 하늘의 윤보가 당신에게 내리시니 윤보를 굴려서 천하를 평정(통치)하여 대 전륜왕이 되리라. 그러니까 이레만 기다리시오.”하고 길을 막습니다.
태자는 거기서 “마왕이여 물러가.”하고 그를 뿌리치며 나섭니다. 나서자 마지막에 말을 끌고 왔던 찬타카와 헤어지면서 부처님께서 가서 부왕에게 말씀드려 달라고 하면서 마지막 말을 드립니다.
“차익이여 가거든 부왕에게 이 말씀을 아뢰어 주오. 내 위없는 대법을 이루어서 큰 법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일체 중생을 구하기 전에는 내 이 길을 멈추지 아니하리라. 설사 죽음을 당하고 불구더이에 던져지고 혹은 칼로 몸을 베이고, 혹 높은 벼랑에서 내려 굴림을 당해서 죽음이 닥쳐오는 일을 당하더라도 큰 도를 이루기 전에는 내 결코 돌아가지 않으리라.”
이것이 세간에 마지막 남긴 부처님의 출가의 변입니다. 얼마나 큰 자비심 넘치는 출가의 의지였던가. 얼마나 용맹스런 출가였던가. 얼마나 지혜스런 출가였던가. 얼마나 넓고 넓은 큰 마음의 출가였던가. 얼마나 견고하고 견고하고 비할 데 없이 견고한 용맹심이 충마하였던가. 출가를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제 여러분! 발보리심 출가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출가, 몸출가, 마음출가를 함께 스님들을 받들어서 설사 허물이 있고 부족함이 있다 하더라도 장점을 발견해서 항상 존경하고 출가한 공덕을 찬탄하고 서로 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재가불자 모두가 참으로 발보리심한 출가자라는 것을 생각해서 끊임없이 “나는 발보리심 출가자.” 하고 그렇게 비추어봐서 우리의 행 하나하나가 발보리심 출가자답게 손상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정진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光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