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워야 한다.
불도하는 마음조차도 속에 차 있으면 불도로 인해 다른 것들이 들어오지 못한다. 지혜없이 불도공부만 하면 공부를 하여도 모래알을 쪄서 밥을 짓는 것처럼 헛일을 하게 된다.
그러니 비우는 일부터 공부하여야 한다.
나이가 많다고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늙으면 고집이 생겨 까다롭기는 하지만 한두 개 남은 이를 빼듯 고집을 빼려 하면 더욱 쉽게 뺄 수 있다.
그래서 『금강경』에 “4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버려야 보살이 된다”하고,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니 약견제상이 비상하면 즉견여래라”하지 않았는가?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인데 무엇에 집착할 것인가?
위험을 느끼면 보험 들면 된다. 자동차를 끌고 가다가 사고가 나면 보험에 든 사람은 걱정 없이 모든 것이 처리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걱정이 많아진다.
불도를 믿는 사람은 불도보험에 들기만 하면 이 몸의 차가 망가지더라도 걱정할 것 없이 새 차로 바꿔 타게 된다.
그러면 불도에는 무슨 보험이 있는가?
염불보험도 있고, 참선보험도 있고, 진언보험도 있고, 간경(看經)보험도 있다. 사고가 나서 내생에만 좋은 게 아니라 현실에서 바로 평화의 보험을 타게 된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핵무기다. 핵무기를 감축하자, 없애자하는 말은 벌써 수십년 전부터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다. 없어지려면 그 핵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과 국내에서 근본을 찾아내야 한다.
무엇 때문에 핵무기를 만들었는가?
어디다 핵무기를 쓸 것인가?
그것을 쓰고 나면 어떤 이익이 생길 것인가?
결과적으로 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요즘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책자들이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 피상적인 처방이다. 근본은 망상을 놓아버려야 한다.
인류가 최초에 이 지구상에서 생겨났을 때는 동물들에게 잡혀먹어 고난을 겪었다. 그래서 서로 사람을 보면 아끼고 사랑하고 돕고 공경하였다.
그런데 지금 인구가 한 40억쯤 되니 모두 천해져서 귀한 것이 없어져 버렸다.
짐승과 대결하는 마음, 짐승을 잡아먹는 야수성이 발달하면서 사람은 포악하여졌고, 또 사람들에게 잡아먹힌 짐승들은 죽으면서 원망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복수하려고 그의 자손들로 태어난다.
원수가 태어났으니 좋은 결과를 가져올 리가 없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어떤 공무원이 하루의 일과를 잘 치르고 테니스하고, 저녁 먹고 자다가 갑자기 밤중에 일어나 총을 들고 그의 세 아이와 부인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였다.
멍청한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병폐라 하지만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보업(報業)이다.
짐승들일수록 생각이 단순하여 화도 잘 내고 따르기도 잘한다. 강아지를 발로 차면 금방 “앙”하고 달려들지만 고양이는 쓰다듬어 주면 품안에 들어와서도 물지 않는다. 호랑이·곰·침팬지도 그렇고 심지어는 구렁이까지도 주인을 알아보지 않는가?
옛날 어떤 집에서 닭을 길렀는데 정오가 되면 암탉이 꼬꼬댁하고 나오면서 알을 낳아 놓곤 하였다. 그러면 주인 할머니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한 번씩 찾아가서 그것을 갖다 먹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그 시간에 나가면 닭은 분명 나왔는데 알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자세히 창구멍을 뚫어놓고 보니 큰 구렁이가 와서 그것을 주워먹고 가서는 기둥나무에 몸을 감아 알을 깨어 소화를 시켰다.
“요, 괘씸한 놈, 네가 내 알을 먹어”하고 할머니는 참나무를 깎아 알처럼 만들어서 그 시간에 맞추어 계란과 바꾸어 놨다. 닭이 알을 낳고 2, 3분 있다 구렁이가 오더니 여지없이 그 나무알을 삼켜버렸다.
먹고 나서는 여느 때와 같이 기둥나무에 몸을 감고 알을 터트리려 하였으나 그게 잘 터트려지지 않으니 밑으로 내려와 풀밭에 들어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좌선을 하였다.
한참 있더니 풀잎을 뜯어 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또 한참 똬리를 틀고 있다가 한일자(一字)로 쭈욱 몸을 펴고 몸을 크게 움츠렸다 펴니 토막토막 알이 쪼개져 나왔다.
너무나도 신기하여 그걸 보고 있다가, “짐승도 제 살 궁리는 제가 하는데 사람이 이렇게 미련해서야”하고 혀를 차고 일어났다.
사람 같으면 의사를 부른다, 침을 맞는다, 약을 먹는다, 체를 낸다 야단법석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홀로 조용히 참선을 하여 그것을 그 작은 똥구멍으로 쏟아내어 버리니 어찌 뱀이 불성이 없다고 하겠느냐 말이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아니땐 굴뚝에서는 연기 나지 않는다.”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
많은 생물들을 제 생각대로 잡아먹어 그들 원수가 아들 딸로 태어나니 말도 잘 듣지 않고 포악한 짓만 하고 다닌다.
“이 개새끼!”
“저 뱀새끼!”
“소새끼, 말새끼!”
사람들의 말이 이렇게 동물화되고 야수화된다. 동물들의 피가 속에 흐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자식이 부모를 쏘아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밟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마가 들려면 쥐·개미 같은 것들도 이사를 할 줄 아는데 어찌 영식이 없겠는가?
더욱이 서양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남의 고기만 먹으며 살고 있으니 포악하지 않을 수 없다. 주식이 그것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밥을 중심으로 사니 짜증은 잘 내도 자비심은 서양에 못지 않다.
부부생활도 꼭 짐승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심지어는 개·돼지하고도 사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세계평화를 가져오려면 호오심(好惡心)·간택심부터 버려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알아야 한다. 물론 상대방이 잘못 생각하고 정견(正見)·정행(正行)이 없으면 바로잡아야지. 허나 같은 식구끼리 화낼 것까지야 뭐 있겠는가?
백년을 살 것인가, 천 년을 살 것인가?
미국이라고 가서 보니 물자 풍부하고 기후 좋고, 일거리 많고, 사람 살기는 좋으나 너무 바쁘고 정신 없어 살기 힘든 곳이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인정이라고는 쇠털만큼도 없다. 여자고 남자고 똑같이 일터에 나가서 종일토록 일을 하다 보니 여자들이 지쳐서 짜증을 낸다.
그래도 집에서는 관념이 있는지라, 아이들도 들어오면 “엄마, 밥줘!”하고 남편도 “양말”한다. 그러면 짜증이 나서 “손이 없어, 발이 없어?”하고 화를 낸다. 남편도 화를 낸다.
“저것이? 언제부터 미국 사람 되었다구.”
“여기가 미국이 아니고 뭐예요?”
“그래, 미국이라고 코가 커졌냐 흰둥이가 됐냐.”
서로 이렇게 주고받다가는 속이 상하면 “이혼해요”하고 도장을 찍고 말아버린다.
이래서 인심이 각박해지고 독신이 많아지면 고독하게 된다. 그래서 모두가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崇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