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염불(實相念佛), 참선(參禪), 삼매(三昧) IV

사종삼매(四種三昧)

그 다음에 사종삼매(四種三昧)라, 선(禪)이라는 말과 삼매(三昧)라는 말을 우리는 꼭 외워 두어야 합니다.

불교를 말할 때는 꼭 삼매라는 말과 선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또 앞으로 두고두고 문제가 많이 될 것입니다.

삼매(三昧)라는 말은 저 인도의 힌두교나 다른 종교에서도 많이 말씀을 합니다.

삼매는 삼마디히(Samadhi)라 하는 말인데 보통 삼마제(三摩提)라고 한문 음을 붙여서 말합니다만 간추려서 삼매(三昧)라고 합니다.

삼매는 플어서 말하면 정(定)이라, 선정(禪定)이란 뜻입니다.

우리 마음을 한 곳에 딱 머물러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잡념이 없이 하나의 것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우리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해서 산란스러운 마음이 없게 하는 것이 삼매입니다.

보다 더 확실히 말하면 우리 마음을 정법(正法) 즉, 바른 법에 머물게 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삼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선(參禪) 할 때의 선(禪)이나 삼매(三昧)나 거의 같은 뜻입니다.

분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누어서 이런저런 말을 합니다만, 내나 거의 같은 뜻입니다.

그 다음은 정수(正受)라, 모든 사물을 바르게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바로 감수를 못합니다.

자기 업장에 따라서, 업에 여과(濾過)되어서 즉, 업에 걸려서 감수(感受)합니다.

따라서 판단을 바르게 못 합니다.

우리 마음이 맑으면 만상(萬象)을 바로 다 비추어 볼 것인데, 마음이 맑지 못하고 흐려놔서 만상을 바로 비추어 보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을 왜곡(歪曲)시켜서 만상을 수용(受用)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수용하는 것이 정수(正受)입니다.

또 한 가지는 조직정(調直定)이라, 우리 마음을 조화시키고 구부러진 마음을 곧게 하는 공부가 삼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정심행처(正心行處)라, 앞서 말씀한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을 바른 정법에 딱 머물게 한다는 말입니다.

또 식려응심(息慮凝心)이라, 잡다한 생각을 쉬고서 우리 마음을 한 군데 머물러 엉기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삼매의 뜻 풀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삼매에는 어떠한 삼매가 있는가?

상좌삼매(常坐三昧)라, 항상 앉아서 하는 삼매입니다.

우리가 선방에서 하는 것은 주로 상좌삼매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삼매는 앉아서 하는 것만이 삼매는 아닙니다.

사람의 행습이나 습관이 다르고 개성이 달라놔서 어떤 사람은 앉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걷기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부처님 이름 외우기를 좋아하고, 그와 같이 차이가 많이 있어놔서 한 가지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하는 기본적인 것은 역시 앉아서 하는 삼매입니다.

그 다음은 상행삼매(常行三昧)라, 항상 서서 하는 삼매입니다.

도량이나 부처님 주위를 뱅뱅 돌면서 하는 삼매입니다.

우리는 절에 가면 탑돌이 같은 것을 합니다.

또한 법당에서도 이따금 부처님 주위를 뱅뱅 돌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상행삼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앉기만 하면 다리도 아플 것이고 또 앉는 버릇을 못 붙인 분은 잘 안됩니다.

그런 분들은 산책하면서 합장하고 부처님 이름을 외워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상행삼매를 다른 이름으로 반주삼매(般舟三昧)라고도 말합니다.

반주삼매라는 말은 또 불립삼매(佛立三昧)라, 부처가 앞에 서서 나타나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법은 어떻게 하는고 하면, 일주일 동안을 한계를 두고서 하는데, 옷도 하루에 한번 이상 갈아입고, 목욕도 하루에 한번 이상하고, 누구하고 말도 전혀 않고, 음식도 하루에 오전에 한번만 먹고, 간식도 안 먹고 이렇게 하면서 자지 않고 눕지 않고 부처님 주위나 도량 주위를 이레 동안 안 쉬고서 돌면서 염불을 하는 것입니다.

찰나도 틈도 없이 이렇게 하면은, 웬만한 사람 같으면 7일만에 반드시 부처님이 척 보인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이시는 것은 사람 모양을 한 모습만으로는 아니겠지요.

부처님의 무량광명이 보인다는 말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해 보십시요.

그런 때에는 ‘보보성성염념 유재아미타불(步步聲聲念念 唯在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 오직 걸음걸음, 소리소리, 생각생각에 아미탈불이요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입니다.

걸음 걸을 때 한 걸음도 놓치지 않고서 염불하는 마음, 또 소리마다 염불하는 소리,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이 없이 염불하는 생각, 이와 같이 오직 아미타불만 왼다는 말입니다.

아미타불 대신에 관세음보살도 무방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려면 적어도 이렇게 한번씩은 해봐야 합니다.

중국의 선도(善導 613∼681) 스님은 승려가 된 뒤에 평생 동안을 한 달에 7일씩 꼭 이렇게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평소에 앉으면 극락세계가 훤히 보였다는 것입니다.

참선공부 하려면 꼭 이와 같은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나 우리가 용맹정진하는 그 뜻도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이란 경에 의거해서 우리도 한번 해본다는 의미로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기가 약하니까 관용해서 여러 가지로 합니다만 원칙은 아까 말씀한바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 허망합니다.

허망한 인간인 우리가 기왕 성불하려면 이와 같이 힘든 고비는 몇 번이나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항상 앉고, 항시 걷기가 어려운 사람은 또 근기에 맞추어서 반행반좌(半行半坐)라, 반쯤은 걷기도 하고 반쯤은 앉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도 하기 어려운 사람은 자기 마음 따라서 더러는 걷기도 하고 더러는 앉기도 하는 비행비좌(非行非坐)라, 걷는 것도 아니고 앉는 것도 아니면서 삼매 공부를 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공부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꼭 어느 것이 옳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화두하는 참선이나, 묵조선이나, 일행삼매나, 모두가 다 어떤 하나만이 옳다고 고집하면 벌써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불법은 모든 것을, 모두를 다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이슬람식이나 또는 기독교식이나 다 포함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만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한테 맞는 것을 골라서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골라서 하되, 아까 말씀마따나, 반주삼매 또는 불립삼매라, 부처가 눈앞에 나타나는, 그런 정도의 삼매를 한번 용맹스럽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삼동(三冬)은 안 자고 안 눕는 것도 겨우 끝에 가서 이틀만 하기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용맹정진 기간 중에는 시설도 좀 더 잘 꾸며서 꼭 이와 같이 반주삼매를 모범 삼아서 한다고 생각할 때는 틀림없이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는 많은 분들이 나오시리라고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말씀 마칩니다.

淸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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